[소리샘]‘없음’을 비웃는 듯한 티켓
49만5천원짜리 티켓이 등장했다. 일본이나 유럽 혹은 미국의 얘기가 아니다.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8~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의 공연.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VIP석의 ‘놀라운’ 가격이다. “싼 자리에서 보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그야말로 순진하다는 놀림을 받기 십상이다. 최고 가격은 당연히 최저 가격의 상승을 부르는 법. 이 ‘팔등신 미녀’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공연을 관람하려면 최소한 13만2천원(S석)이 필요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옛말’이 있다. 이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고가(高價)는 당연히 저가(低價)를 구축한다. 불과 3년 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5만원짜리 티켓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그것은 꽤나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제 10만원을 넘어가는 공연 티켓은 흔해 빠진 것이 된지 오래다. 특히 뮤지컬과 오페라의 R석은 20만원을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최근 잠실의 올림픽경기장에서 막을 올렸던 오페라 ‘카르멘’은 그라운드석 전체를 30만원짜리 R석과 20만원짜리 S석으로 채웠다. 결국 3년 전에 ‘일시적’ 충격을 던졌던 ‘오페라의 유령’은 입장권 가격의 ‘고공행진’을 부채질하는 일종의 촉매제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 등장한 49만5천원짜리 티켓의 존재가 적잖이 우려스럽다.
결국 ‘예술’은 부자들의 것인가. 각종 공연을 예고하는 전단과 포스터의 턱없는 가격들은 “용용 죽겠지?” 하면서 가난한 서민들을 비웃는 듯하다. 그러나 거기에 정작 ‘예술’이 존재하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문제다.
1주일 전쯤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에반스’라는 작은 바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입장료는 단돈 1만원. 음료수 한잔까지 포함된 ‘행복한’ 가격이었다. 조윤성은 미국 보스턴에서 활약하는 이제 갓 서른의 젊은 연주자. 그는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별로 꿀릴 것 없는 빼어난 연주를 펼쳤고, 40평 남짓한 홀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은 낡은 삼익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연주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1만원의 가치는 컸다. 그 조그마한 바에는 연주자와 청중의 예술적 ‘소통’이 생생하게 숨쉬고 있었다.
잠실운동장의 20만~30만원짜리 그라운드석에 앉아 보이지도 않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스피커로 들으면서 두어 시간을 버티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소통’이라기보다 오히려 ‘소외’에 가깝다.
3년 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 열리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쇼’도 전반적 공연 관람료의 상승을 또 한번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높은 입장권을 발행하는 ‘상인’들에게 “자제하라”고 충고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 폭등하는 관람료 수익을 챙기는 이들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상인’들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오는 잘 나가는 ‘예술가’ 혹은 ‘연예인’들이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어쩔 수 없이 ‘손님’의 몫으로 남는다. 메뉴판에는 50만원부터 1만원까지,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무엇을 고르겠는가. 신문과 잡지, 방송 등 온갖 매체의 정보들이 마치 레스토랑의 점원처럼 채근한다. “손님, 어서 주문하시지요.”〈문학수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