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트로이 잡담
어제 <트로이>를 두번째 봤습니다.
지난번에 봤을 땐 조조에 극장안이 한산해서 게다가 아는 동생이랑 같이 보며
나름대로 열광하며 봤는데
어젠 낮 1시 20분, 끼리끼리 커플로 온 사람들을 신경쓰는데다
가끔 뒷좌석의 누군가가 의자를 발로 차고
오른편의 옆옆자리 사람 둘은 아무리 봐도 불륜남녀같은 분위기라
관람분위기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두번째 보는 거다보니 첫번 봤을 땐 무심코 지나간 장면도 짚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화 첫장면은 썰렁한 해안 모래사막(?) 이었는데
처음 볼때 왜 저렇게 썰렁하게 시작할까... 왜 공중에서 잡았을까 하며 의아해했는데
그 장면에 역시 썰렁하게 깔리는 아킬레스의 독백을 들으니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몇천년 지난 시점에서 유령 아킬레스의 독백이라고 생각되더군요.
게다가 아킬레스의 독백에서 이런 말이 있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
흔히 여성전용액션영화라 불리는 <트로이>에서 전쟁뿐 아니라
미남미녀들의 로맨스(아가멤논말을 빌자면 연애질)가 들끓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스파르타 장면에서 두번째 봐도 웃기는 것은,
연회에서 메넬라오스의 일장연설이 있고 난 뒤
그게 화답하기 위해 헥토르와 파리스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파리스와 헬렌은 눈빛 주고받느라 과연 일어나는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헥토르가 일어나면서 슬쩍 파리스를 건드립니다.
눈치 빠른 헥토르는 파리스와 헬렌의 행각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헬렌이 위층으로 올라간 뒤 따라 올라가는 파리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안 내려오는 파리스땜시 애간장녹는 헥토르.
동생 뒤치다꺼리를 도맡을 수 밖에 없는 큰형아의 비애를 눈빛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앞뒤안맞는 캐릭터 헬렌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파리스가 꼬신다고 앞뒤 안가리고 따라갔으면서도 막상 트로이에 도착하니
굉장히 생각많은 면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당신은 메넬라오스를 몰라요... 이러면서 불타는 병사의 시체, 과부들의 울음소리...
괴로워하는데 "그렇게 생각이 깊다면 아예 따라오지를 말던가..." -_-;;
메넬라오스가 아가멤논 형한테 SOS하러 갔을 때
아가멤논이 메넬라오스를 꽉 끌어안으면서 보여준 표정은...의외였습니다.
난 이 사람이 헬렌 핑계로 트로이 칠 생각에 씨-익! 하고 웃을 줄 알았는데
동생의 불행(또는 대망신) 앞에선 그런 표정은 자제하고
<내 동생 눈에 피눈물 나오게 한 두 연놈 다 죽었쓰!!! (덤으로 트로이까지 먹겠어!)>라고
보여집니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스를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어들이기로 했을 때,
<그렇다면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야!>라고 하죠.
그리고 바로 뒤가 아킬레스와 그의 사촌의 연무장면인데
사이에 한 장면이 빠졌다고 봅니다.
바로 오딧세우스의 소개장면이죠.
그(아킬레스)를 설득한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누군지 관객이 궁금한 시점에서
바로 아킬레스를 비춘다는 건, 만화책으로 치면 두장 정도를 찢어낸 거라고 보여집니다.
별로 안궁금한 사람도 있겠지만 제 경우엔 툭 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딧세우스가 "실리"를 위해 아가멤논한테 숙이고 들어가는 것을
명예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아킬레스한테 오딧세우스가 그러죠.
"언젠가 너도 알게될 거야"
나중에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프리아모스가 적인 자신에게
몸을 숙인 것을 보고 아킬레스는 그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작의 소개장면 빠진 것도 아쉽구요.
어느 분이 올려준 삭제장면 시나리오를 보니, 아이작의 소개장면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큰 키에 도끼로 말까지 찍어내면서 용맹하게 싸우다
헥토르한테 여러번 찔리고 했으면서도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의 용맹과 맷집은 마지막의 아킬레스와 연결됩니다.
둘다 칼(화살) 한두방으로는 안 죽는 사람이었죠.
처음 트로이로 진입할때 인상적인 대사를 날려줍니다.
"우리 아군이 죽어가고 있잖아!!" ====> 완전 2차세계대전풍의 대사...;;;
직접 노까지 저어주시면서...진작 당신이 저었다면 아킬레스와 함께 진입했을텐데...
헥토르의 협정위반(메넬라오스를 죽이는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파리스라면 몰라도 설마 헥토르가 협정을 위반할 줄은
파리스도 메넬라오스도 생각못했을 겁니다. 아가멤논까지도 경악을 하더군요.
가장 놀란 건 아마 본인 헥토르였겠지만요.
(이 장면은 트로이로 귀환할때 파리스의 대사와 연결됩니다.
"형보고 대신 싸워달라고 안할 테니까 염려마!" 그랬으면서
급해지니 형 다리 붙잡고 늘어지죠. 물귀신 파리스...)
처음엔 얼결에 자기 상대가 아닌 메넬라오스를 죽이고
두번째는 상대를 착각해서 파틀로쿠스를 죽이죠.
메넬라오스를 죽이는 시점에서 헥토르는 관뚜껑이 열렸다고 봅니다.
파틀로쿠스를 죽였을 땐 저승사자(아킬레스)를 피할 수 없었구요.
영화를 두번 보니 아킬레스의 부관, 유도러스의 짝사랑이 여실히 보입니다.
트로이에서 첫 전투가 있고난 뒤, "오늘 잘 싸웠어!"란 칭찬의 말을 들으니
기뻐 어쩔 줄 모르죠. 아마 평소에 아킬레스는 이런 말 안할 겁니다.
이 사람의 "MY LORD!!"란 대사는 얼마나 애틋한지...
마지막까지 아킬레스과 있고 싶었지만 아킬레스는 자신의 부대를 귀환시킵니다.
트로이성 함락장면을 보면 이미 이건 전쟁이 아니라
약탈과 습격이죠. 고대의 전쟁은 그런 모습이었다면 할 말 없지만
군인 대 군인의, 전쟁터에서의 전투가 아니라
이런 -비겁한- 야습의 경우 자신의 부하 손에까지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트로이와 그리스군의 첫번째 전투에서 엄청난 수의 그리스군의 모습을 보고
트로이인들의 (헥토르, 파리스, 헬렌, 안드로마케, 프리아모스) 각각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주는데 그리스군의 숫자에 압도된 각각의 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헥토르조차도 놀란 그리스군인데도
프리아모스왕의 여전히 거만한 또는 아무생각없는 듯한 표정...
전날 케이블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방송했는데
이분, 놀랄 정도로 젊은 시절 이목구비를 갖고 계시더군요.
브리세이스의 놀란 토끼 표정, 귀여웠습니다.
마지막에 아폴로 신상 앞에서 기도할 때의 표정,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촌이 옆에 있는 데도 파리스가 안반했었다니...
두번 보니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일대일 결투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까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렵한 발놀림, 균형미있는 자세...
아킬레스의 특기는 점프해서 내려찍기더군요.
점프하면 헛점이 보일텐데 워낙 재빨라서 상대방이 눈치를 못채는 걸까요?
작은 동작이긴 한데 헥토르가 창으로 찔렀을 때 발을 피하는 거, 보셨습니까?
<날랜 아킬레스>를 표현하는,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헥토르가 죽었을 때 솔직히 자기때문에 죽는 건데도
파리스 전혀 죄책감을 못느끼고 아킬레스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는 군요.
<트로이>에서는 神에 관한 부분은 다 빼버렸다고 하지만
신이 관여하지 않고선 설명이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아킬레스가 부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신상을 베어버렸고
그뒤 파리스는 화살쏘기 연습을 하고 하필 그 화살이 아킬레스의 뒤꿈치를 맞춰버립니다.
프리아모스와 파리스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신전은 아마 아프로디테의 것일거구요.
(그래, 사랑이야...란 대화...)
<트로이>에서 가장 부지런했을 신이었을 겁니다.
그리스군에서 장군이나 왕의 장례식에서 땔감으로 사용되던 통나무는 어디서 갖고 온 걸까요?
아주 멀리까지 모래사막(해안)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설마 그리스에서까지 갖고오지는 않았을테고 나무의 모양으로 봐서는
재제소에서 예쁘게 통으로 깎은 거 같던데 임시제재소라도 급조했던 건지...
어쨌거나 트로이 해안 근처의 숲은 엄청난 훼손을 입었을 겁니다.
반대로 목마는 통나무도 통나무지만
그리스군의 배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끌어다붙이는 나무의 모양을 보니 얼추 배모양이 나오더군요.
사람도 많이 죽어나갔으니 임자없는 배도 몇척 나왔겠죠.
마지막의 아킬레스의 독백을 들으니,
다시 한번 이건 "유령" 아킬레스의 자뻑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식스센스>에 맞먹는 반전이죠.
아킬레스는 유령이다!!!
덧붙임.
배우들의 누드가 자주 나오는데,
시대도 시대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유럽출신(비미국)이 많은 것도 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누드에 관한 한 유럽이 관대한 것 같으니까요.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봤을 때 여주인공의 누드가 나왔을 때 많이 놀랬거든요.
워낙 누드에 관해 별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라 브래드 피트도 과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 반, 제작자 반(돈을 댔으니 흥행을 해야 한다)의 마음도 있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