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에 대한 정신분석
제프리다머는 왜 연쇄살인마가 되었으며, 시체와 성 행위를 즐기고, 사람 고기를 먹으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에 구멍을 뚫는 반사회적인 괴물이 되었을까? 과연 그는 우리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혹시 유전자가 문제일까? 아니면 형편없는 부모가 원흉일까?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 때문에 또라이가 된 것일까? 궁금한 것은 많지만, 불행하게도 납득이 갈만한 해답은 별로 없다.
연쇄살인마에 관한 이론은 수도 없이 많다. 대개의 경우, 단순히 어렸을 때 당한 성 폭행의 영향, 형편없는 부모, 예민하기 그지없는 머리의 부상, 태아 시절 산모의 알콜 혹은 마약 중독 등이 주된 이유로 지목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약간의 도움(?)이 됐을지는 몰라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지배적 학설이고, 최소한 제프리 다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부모와 함께
다머의 아버지 Lionel Dahmer는 아버지의 변이라는 책을 집필 했는데, 그 책은 아들이 어쩌다가 그런 괴물로 자라나게 되었는지, 그 의문점에 관한 필사적인 탐구 정신으로 가득차 있으며, 노력은 백방으로 했지만, 아들은 결국 자기만 세계에 틀어박혀서 전혀 자신의 노력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물론 모든 부모에게 제프리 다머 같은 아들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정도는 다르다 하더라도, 이미 수 많은 아이들이 술이나 마약, 혹은 끔찍한 범죄에 휘말리고 있으며, 학교나 집에 정을 붙이지 못 하고 가출 내지는 자살을 하고 있는데, 부모들은 전혀 속수무책이다.
물론 다머의 부모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꽤 솔직하게 자기가 아들에게 미친 부정적 측면을 인식하고 있었고, 어머니 역시 여러가지 크고 작은 문제점을 안고있는 사람이었는데, 남편의 알콜중독 때문에 쉽지 않은 세월을 보낸 다머의 어머니는 성격이 급하고 흥분을 잘 했다.
1960년 5월 21일에 태어난 다머는 사랑받는 아이였고, 남과 똑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으며, 개도 한 마리 데려다 길렀다. 귀와 목의 병이 보통 아이들보다 좀 잦긴 했지만, 다머는 제대로 잘 자라났고, 부모와 함께 다친 새를 보살펴 낫게 해 준 다음 다시 숲에 놓아주기도 했다.
Dahmer의 애견
그런데 네살 때, 집 근처에서 다머의 아버지가 우연히 죽은 동물의 뼈를 파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다머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으며 손으로 만질 때 마다 뼈가 부딛히며 내는 소릴 무척 좋아했었다고 한다. 다머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이제와서 생각하니 벌써 그때부터 뭔가 어둡고 사악한 그늘이 아들의 몸 안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아이오아 주립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게됐고, 다머의 가족은 모두 아버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다. 화학과 박사 학위 과정에 있던 다머의 아버지는 집안이 시끄럽다는 이유를 들어 필요 이상으로 집을 비우고 공부에만 몰두했고, 다머는 6살 때 탈장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다머는 수술 이후에 감정의 폭발이 잦아졌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파묻혀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Dahmer의 유일한 친구 Lee
1966년 아버니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실험실에 취직했고 어머니는 동생 데이빗을 임신했는데, 다머는 이때부터 더욱 심한 성격의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자신감이 없었으며, 학교가기를 싫어했고, 변화를 두려워해서 항상 같은 환경에만 있고 싶어했고, 수줍음을 많이 타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말수가 아주 적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단순히 낯선 곳으로의 이사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역시 어렸을 때 수줍음을 많이 타고 혼자 있길 좋아했기 때문에, 다머도 자라면서 그런 면을 극복하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머의 증상은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소년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심한 것이었고, 다머는 완전히 고립되어 거의 자기만의 세계에만 푹 빠져있었다.
1967년 새 집으로 이사한 다머는 많이 나아지는 듯 했고, Lee라는 친구도 사귀었으며 한 여선생을 아주 따랐다. 하루는 다머가 직접 잡은 올챙이를 여선생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여선생은 그걸 리에게 주어버렸다. 후에 그런 사실을 알게된 다머는 몰래 리의 집에 숨어들어가 올챙이가 담겨져 있는 물에 엔진 오일을 섞어서 다 죽여버렸다고 한다.
14살 때의 Dahmer
10살 부터 15살 까지, 다머는 많은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게다가 수줍음은 더더욱 심해졌고, 사람만 만나면 늘상 초긴장 상태가 되었으며,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은 채 하루종일 멍하니 TV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다머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아이처럼 보였다. 하나뿐인 친구는 열 다섯 살 때 이사를 가버렸고, 외롭게 혼자 남은 다머는 그후 혼자 쓰레기 봉지를 들고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차에 치어죽은 동물 시체를 모았고, 살을 벗겨내고 뼈를 갉아냈다. 자기만의 공동묘지를 만들어 거기에 뼈를 묻기도했고, 나무 창에 죽은 개의 목을 꽂아놓기도 하는 등, 죽은 동물의 시체에 지독하리 만치 집착하고 있었다. 죽은 것은 말을 걸어 당황하게 만들지도 않고, 또 자기를 버리고 떠날 리가 없을테니까.
다머는 더욱 수동적이 되어갔고 고립되었다. 물어보지 않으면 말을 안 했고, 대답을 할 때도 들릴듯 말듯 한마디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성적인 충동이 일었고, 그러한 성적인 감정은 죽어서 미동도 하지 않는 동물의 시체와 연계되었고, 게다가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괴하고 절망적인 상태는 발산되지 않은 채, 그의 안에서 굳어져 갔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같은 나이의 다른 학생들은 취직하거나 대학에 갈 생각에 골몰했지만, 다머는 전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인간 사회에 속한 사람 같지도 않았고 속하고 싶어하지도 않았으며, 머리 속은 죽음에 관한 환상들만 가득했지만, 전혀 정신질환증세는 보이지 않았다. 부모한테 대드는 법도 없었고 것은 누구와 말싸움을 하는 법도 없었으니, 알아낼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머가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위해 쌓은 벽을 날로 높아만 갔고 또 두꺼워졌다.
그후 다머의 부모는 그가 18살 때 이혼했고, 재혼한 다머의 아버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다머는 그 당시 이미 알콜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양 엄마인 쉐리는 곧 그러한 사실을 알아챘고, 남편과 상의를 했다. 다머의 부모는 부랴부랴 대학 진학을 권유했고, 1978년 다머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다머는 한 학기 내내 술만 마시다가 F를 받고 자퇴해 버렸다.
그렇다면 부모의 이혼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이혼은 다반사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들이 연쇄살인마에 시체강간범이 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맘때 쯤엔 알콜중독이 이미 심한 상태였지만, 다머는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취직을 하거나 군에 입대하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취직도 않고 거의 내내 술에 취해있자, 1979년 1월 참다못한 아버지는 다머를 차에 태우고 군대를 찾아가 자원입대 시켜버렸다.
그때부터 1991년 체포될 때 까지, 다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군대에서 잘 지내고 있나 했더니 알콜중독때문에 강제로 제대를 해야만 했고, 할머니 집으로 옮겨 취직을 하나 했더니 술을 먹고 난동을 부려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잦았다. 그동안 아버지는 매번 변호사를 사서 아들을 빼내 주었지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공공장소에서 치부를 드러내더니, 어린아이 성폭행에 마침내는 연쇄살인까지...
1989년 아들이 유아성폭행으로 재판을 받게되자, 아버지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만다.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아들은 여전히 알콜중독에 거짓말쟁이, 도둑, 유아 성폭행범에 노출증 환자라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아들은 양심이 죽어버렸거나 아예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보스턴 노스이스턴 대학의 범죄학박사인 제임스 폭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연쇄살인마를 미리 지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제프리 다머의 경우, 부모의 이혼이 문제였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프로이드 이후 우리는 툭하면 부모 탓을 하는 병에 걸려버렸다. 죄인은 다머이지 그의 부모가 아니다.
비록 다른 연쇄살인마들 처럼 환상의 지배를 받았고, 또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인을 지질렀지만, 다머는 아주 특이한 연쇄살인마다. 대부분의 경우, 연쇄살인마들은 희생자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우월감과 쾌감을 느끼고, 자신의 권능에 매료되어 한껏 지배욕구를 채우지만 희생자가 죽으면 그 모든 것은 끝이 나고, 마치 성행위 뒤의 소강상태 처럼 한동안 허탈상태에 빠져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다머의 경우엔 다르다. 진짜 놀이는 희생자가 죽은 다음에야 시작된다. 시체를 강간하고, 토막낸 후 살을 도려내어 요리를 해 먹고, 뼈를 추려내어 기념품으로 삼고... 물론 가끔가다가 좀비 (강시)라는 인간 노예를 만들기 위해 산 사람 머리에 구멍을 뚫고 약물을 투여하기도 했지만, 진짜 재미있는 놀이는 항상 희생자들이 죽은 다음에야 시작되었다.
왜 누군가가 갑자기 연쇄 살인마가 되는지에 관한 최근의 학설은 모르긴해도 유전학쪽으로 굳어질 전망이다. 특히 제프리 다머의 경우, 더더욱 유전학이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코네락 (14)
14살 먹은 동양계 소년 코네락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렸다. 처음보는 금발청년에게 깜빡 속아 악취가 진동하는 악마의 소굴인 그의 아파트로 같이 간 후 멋모르고 약물까지 복용하여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마침 금발청년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소년은 죽을 힘을 다해서 몸을 일으켜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약에 취해서 자기가 완전히 벌거벗었다는 생각 조차도 하지 못 했다. 기회는 단 한번, 순전히 본능에만 의존하여 길로 나온 소년은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새벽 2시가 조금 안 됐을 무렵, 샌드라 스미스는 911로 위급상황을 신고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발가벗은 채로 대로 상을 달리고 있었는데, 공포에 질려 있었으며 또 다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응급처치반이 먼저 도착했고, 벌거벗은 몸에 담요만 걸쳐준 후, 약에 취한 듯한 동양계 소년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으려했지만, 횡설수설 알아듣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신고를 했던 샌드라 (18)와 사촌 니콜 (18)이 옆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있을 때 문제의 금발청년이 나타났고, 그후에야 경찰이 나타났는데, 이때 샌드라 일행과 금발청년, 그리고 경찰 사이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키가 큰 금발청년은, 코네락이 19살이며 자기 동성애 애인이라고 하면서, 술에 취해서 그 모양이라고 했는데, 보통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코네락은 약 기운 때문에 이 금발청년의 말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도리가 없었고, 게다가 금발청년은 경찰에게 자기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의 이름은 제프리 다머였다.
샌드라와 니콜은 몹시 참견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경찰이 나타나기 전 까지만해도 소년은 금발청년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고 피하려 하는 가색이 역력했으며, 전체적으로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소년과 신고자를 무시한 채 금발청년의 얘기만을 듣고 었었다.
증인의 반대도 있고하여, 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경찰은 소년을 데리고 다머의 아파트로 같이 갔다. 악취가 나는듯도 했지만, 방은 꽤 잘 정돈되어 있었다. 소년의 옷은 잘 개어져서 소파에 놓여있었고, 군데군데 속옷만 입은 소년의 사진까지 놓여있었다.
한편 코네락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다머가 경찰에게 해명하는걸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약기운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머는 경찰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여간 경찰은 다머의 말을 굳게 믿었으며 또한 단순히 동성 연애자이기 때문에 과하게 행동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소년을 거기 남겨놓은 채 그 아파트를 나왔다.
하지만 경찰이 몰랐던건, 다머의 침실엔 토니 휴즈의 시체가 누워있었고 죽은지 이미 사흘이 넘었기 때문에 악취가 진동했다. 경찰이 나가자마자 다머는 소년을 목졸라 죽인 후 시체를 강간했다. 그리고 다머는 곧 소년의 시체를 토막내기 시작했고, 두개골을 말끔히 씻어서 기념품으로 간직했다. 경찰이 또 한가지 실수한 것은, 만일 다머의 신분증을 단 한번만이라도 조회해 보았던들, 즉시 다머가 유아성폭행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으며, 보호감찰 대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클리블랜드 부인
하지만 얘기는 점입가경, 경찰의 명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가보다. 사건을 신고했던 소녀의 어머니 클리블랜드 부인은 다머의 아파트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역에 살고있었는데, 딸의 얘기를 듣고 곧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부인이 그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묻자, 경찰은 다머의 얘기를 그대로 반복해서 전했다. 어이가 없어진 부인이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경찰은 자기들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며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로부터 며칠 후 조간 신문에서 동양계 소년이 돌연 실종됐다는 기사를 읽은 그녀는 실종 소년의 생김새가 그날밤의 그 소년과 흡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즉시 경찰에 다시 신고를 하고 수사를 촉구했지만, 경찰은 어이없게도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몇 달이 지난 1991년 7월 22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살인마 Jefferey Dahmer의 이름은 전세계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옛날 얘기들 중엔 이런 것들이 있다.
주인공이 오래된 성이나 폐가가 된 저택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비밀문을 발견하여 열고 들어가보니, 방안 가득 참혹하게 죽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1991년 미국에서 발생했다. (하기사 황당한 사건은 모두 미국에서 발생하니까...) 하지만 거대한 저택이나 뱀파이어의 고향이라고 알려져있는 Transylvania의 오래된 성에서가 아니라,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였다.
생존자 Stacy Edwards
7월 22일 밤 겁에 질린 젊은 흑인 남자 하나가 수갑을 찬 채 밀워키 경찰서로 달려들어와서, 웬 또라이가 자길 죽이려 했다고 신고를 했고, 즉시 출동한 경찰은 제프리 다머의 현관문을 노크했다.
그 안에서 경찰이 발견한 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잔혹의 현장이었는데, 사람 머리가 냉장고 안은 물론 옷장 안에도 있었고, 파란 쓰레기통엔 토막난 시체가 가득했으며, 어항엔 반쯤 부패한 사람 손이 잠겨있었고, 골판지 상자엔 사람 뼈가 가득했다.
냉장고 안엔 사람 머리 외에도 간, 창자, 허파, 콩팥 등의 내장도 가득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방안엔 폴라로이드 사진도 있었는데, 황산에 부식된 젊은 남자의 가슴을 찍어 놓은 것도 있었다.
이 끔찍한 지옥도의 주인공은 유순하고 말투가 부드러운 제프리 다머 (Jeffrey Dahmer)라는 젊은 남자였는데, 경찰이 현장을 덮쳤음에도 불구하고, 기겁을 하면서 끔찍하기그지없는 증거를 숨기기는 커녕 벼로 동요하는 기색도 없었다고 한다.
다머는 흑인 소년/청년 열 일곱을 죽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주로 동성연애자 클럽에서 대상을 물색했다고 한다. 약을 먹여서 정신을 잃게한 후, 목을 졸라 죽인 다음에, 전기톱으로 시체를 토막냈을 뿐 아니라, 시체를 요리해서 먹기도 했으며, 시체와 성 행위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고백했다.
또 몇 차례에 걸쳐서, 멀쩡히 살아있는 남자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고, 뇌에 일종의 염산을 주입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좀비 (Zombie), 쉽게 말하면, 자기 마음대로로 주무를 수 있는 일종의 성 노예 (sex slave)를 만들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다머의 이런 기괴 취향은 어렸을 때 부터 유명했다고 하는데, 길에서 사고로 죽은 동물들을 주워다가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들여다보는 꽤 특이한 취미가 있었으며, 고양이나 개구리를 잡아서 뒷집 나무에 못박아놓았다고도 하는데, 한번은 개의 목을 잘라서 나무 창에 꿰어 땅에 꽂아놓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머가 첫 살인을 한 것은 18살 때, 히치하이크를 하는 젊은이를 태워 집으로 데려와서 (분명 강제로) 성 행위를 한 다음, 망치로 머리를 때려 죽인 다음에 시체를 토막내서 숲에 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이 시체를 파내서 뼈를 망치로 빻아 가루를 내서 여기저기에 뿌렸다고 한다.
재판에서 제프리 다머는 무기징역을 15개나 선고받았는데, 그 형량을 햇수로 환산하면 936년이나 된다.
그러나 아깝게도 제프리 다머는 미처 그 기나긴 형기를 채 마치지 못 하고, 1994년의 어느 날 감옥에서 동료 죄수에게 몰매 맞아 죽고 말았다.
체포된 다머는 13년에 걸친 연쇄 살인 행각에 관해 털어놓았다. 14살 때 부터 시체와 성 행위를 하고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아무런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8년 6월, 그때까지 부모와 함께 오하이오주 배스의 고급 주택가에 살고있었던 다머는 히치하이크를 하려는 스티븐 힉스를 차에 태운 다음, 그와 성관계를 갖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힉스가 곧 떠날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심한 강박관념을 느낀 나머지, 다머는 둔기로 그의 머리를 쳐서 숨지게 한 후, 시체를 토막내서 플래스틱 쓰레기 봉지에 담아서 집 뒤에 있는 숲에 묻었다.
그해 가을, 한 학기 동안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 적을 두긴 했지만, 학기 내내 술만 마시고 만취상태로 있다가 F를 받고,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군대에 입대하여 독일로 갔다. 거기서도 살인에 연루되어 독일 경찰에게 상당히 시달렸지만, 증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실제로 이땐 사람을 안 죽였을지도 모른다.
2년 후 다머는 알콜 중독이 문제가 되어 불명예 제대를 하고, 아주 잠깐 플로리다에 머문 후 다시 오하이오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다머는 이미 다 썩어버린 힉스의 시체를 파내어 망치로 잘게 빻아 뼈를 가루로 만든 뒤, 숲 여기저기에 나누어 뿌렸다.
1981년 10월 술에 취해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동을 하고 경찰에 체포된 몇 달 후, 다머의 아버지는 위스콘신주 웨스트 알리에 사는 할머니 집으로 다머를 보내 버린다. 그후 좀 조용히 사나싶더니, 다머는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벗고 치부를 드러내어 다시 체포되는데, 다머는 그후에도 술은 계속 마셨지만 더 이상의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4년을 버틴다. 그러나 1986년 9월 또 다시 두 소년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체포됐고, 1년간 보호감찰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두번째 희생자인 스티븐 타우미를 죽인 것은 1987년 어느 호텔에서였다. 둘은 근처에서 잘 알려진 게이 바에서 술을 마셨는데, 만취 상태였는지, 다머는 어떻게 죽였는지 기억을 못 한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내는 죽어있었고, 입에 피가 고여 있었다. 집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가져다가 타우미의 시체를 넣어 할머니 집 지하실로 가져가서, 시체와 성 행위를 한 다음, 자위행위 까지 마치고, 토막을 내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다머는 게이 바에서 14살난 미국 인디언계의 제이미 독타도어를 유혹하는데, 이때부터 범행 패턴은 늘 이런 식으로 고정된다. 게이 바에서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여 모델을 서주면 돈을 좀 주겠다고 하거나, 그냥 단순히 맥주를 마시면서 같이 비디오나 보자고 꼬드겨서 집으로 데려온 다음, 약에 취하게 한 후에 목을 졸라 죽인다. 시체를 강간하고 시체 위에다 자위 행위를 하는 일종의 관례적인 행위를 거친 다음엔 토막을 내서 버리는데, 물론 가끔은 두개골이나 다른 신체의 일부를 기념품으로 간직하기도 한다.
88년 3월, 다머는 멕시코계의 청소년 리처드 게레로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썼다. 하지만 다머는 게이 바에서 만났다고 주장한 반면, 가족들은 자기 아들은 절대 게이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의견이 엇갈렸다. 하여튼 그 해 여름이 끝날 무렵까지 다머는 4명을 살해했고, 같이 살고있던 할머니는 모든 일이 자기 집 지하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전혀 감도 잡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머의 시끄러운 술 버릇과 너무 자주 들락거리는 친구들을 못마땅해 하기는 했다.
88년 9월 25일 다머는 밀워키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13살 먹은 라오스계의 동양 소년에게 모델을 서주면 50달러를 주겠다고 해서 집으로 데리고 온 다음, 약을 먹여 몸 여기저기를 만지긴 했지만, 폭력을 행사하거나 강제로 성행위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91년 5월, 그러니까 3년 후에 다머는 바로 이 소년의 동생을 죽이게 되는데, 물론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행동이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소년의 부모들이 소년을 병원으로 데려갔고, 병원측은 경찰에 신고했으며, 다머는 즉시 체포되었다. 물론 아이 나이가 훨씬 많은줄 알았었다고 변명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다머는 89년 1월 30일 죄를 시인한다.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서 형 언도를 기다리는 동안, 다머는 게이 바에서 흑인 동성연애자인 앤토니 시어즈를 만나는데, 모델을 서면 돈을 준다고 꼬드겨서 할머니 집 지하실로 데려간 뒤 약을 먹이고 목을 졸라 죽인 뒤 시간(屍姦)을 하고 토막을 내었다. 하지만 시체를 다 버리지 않고, 다머는 머리만은 남겨두었다. 깔끔한 기념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끓는 물에 삶은 후 살을 모두 제거하고, 혹시 누가 보면 의대생들이 사용하는 플래스틱 모형으로 오인하게끔 회색 페인트를 칠했다. 다머는 그 해골을 2년 이상 보관했고,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난 7월 23일 경찰에 의해 압류되었다. 다머는 그 해골 앞에서 수시로 자위행위를 해왔다고 자백했다.
어쨌거나, 열성적인 변호사의 도움과 자신의 달변 덕에, 다머는 실형을 살지않고 집행유예 / 보호감찰 대상으로 5년을 선고받았다. 아침에는 직장에 출근했다가 저녁에만 돌아가는 묘한 양상의 형무소에서 1년을 보내도록 판결이 났지만, 담당판사가 의외로 다머의 조기 출감을 허락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이 당시에 다머의 아버지가 판사에게 편지를 써서 아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기 전에는 절대 출감시키지 말아달라고 간청을 했다는 점이다. 경찰에 못지 않게 판사의 명성 역시 동서고금을 통해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잠시 할머니 집에 머물렀던 다머는, 90년 5월 14일에 다시 아파트를 얻어 나가는데, 여기가 바로 지옥도의 현장, 밀워키 25번가 북 924번지, 아파트 213호였다.
이때부터 15개월 동안 다머는 무려 12명을 살해하는데, 91년 5월에서 7월 사이에는 살인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일주일에 한 명 꼴로 살인을 저질렀고, 결국 경찰에 잡히고 만다. 희생자들은 셋만 빼고 모두 흑인이었고, 하나는 백인, 하나는 라오스계의 동양인, 나머지 하나는 남미계였는데, 모두 동성연애자거나 양성연애자였다. 가장 어린 희생자는 14살 먹은 소년 코네락이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서른 한살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전과가 있었으며, 그중 몇몇은 방화나 강간, 폭행 등의 전과가 있는 강력범들이었다.
범행 방법은 항상 동일했다.
집에 데려와 약을 먹여서 목을 졸라 죽인 다음, 시간을 하고 시체에 대고 자위행위하고 토막내서 버리고... 하지만 다머는 항상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이 모든 것을 찍어 기록을 남겼는데, 나중에 살해 행위 하나 하나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음미하기 위함이었다.
다머는 특히 배를 갈라서 내장을 들여다보는걸 즐겼다고 하는데, 내장의 색깔을 보면 몹시 흥분했고, 막 배를 가른 시체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것도 다머를 성적으로 상당히 흥분시켰다. 시체를 토막내면서도 계속해서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다시 보고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시체를 말끔하게 녹여서 시꺼멓고 악취가 풍기는 액체 찌꺼기로 만들어 하수구에 버리기 위해서 다머는 화학 약품을 수도 없이 실험했다. 항상 머리나 성기는 기념품으로 보관했는데, 머리는 아까 설명했던 방식으로 만들었고, 성기는 액체 방부제에 넣어 보관했다고 한다.
시체와 성 행위를 하는 변태들이 식인 습관이 있는건 흔한 일이다. 다머 역시 사람 고기를 먹었는데, 희생자들이 자기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다만 그런 이유 때문에 갖은 양념을 넣어 정성들여 요리를 하고, 고기를 연하게 하는 소스까지 사서 고기 뿌려 재어놓고, 마치 우리가 소고기 얼려놓듯 냉장고를 가득 사람 고기로 채워놓았다는건 좀 우습다. 다머의 말에 의하면 사람고기를 먹으면 바로 성기가 발기했다고 한다. 피도 마셔보았지만, 피는 영 자기 입맛엔 맞지 않더란다.
다머에게 있어 희생자를 통제하는 것은 큰 숙제였다. 자기 말을 잘 듣는 노예같은 좀비(Zombie)를 가지고 싶어한 나머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일종의 염산을 주사했는데, 이때 희생자는 대부분 바로 죽어버린다. 그러나 몇몇은 바로 죽지않고 며칠동안 거의 시체같은 상태로 숨이 붙어있는데, 다머는 여자보다는 남자를, 그것도 이렇게 완전하게 의지력을 상실한 섹스 파트너를 더 선호했나보다.
물론 이런 얘기에 악마교 (Satanism)가 빠질 순 없다. 다머는 기념품으로 간직해 둔 모든 두개골과 성기를 진열해 놓고 훗날 일종의 악마숭배의식을 치루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만일 악마적인 권능을 얻을 수만 있다면 사람을 죽여서 혹은 거의 죽은 상태로 만들어서 즐길 필요 없이, 손가락 하나만 튕기면 충실하고 헌신적인 섹스 노예 역할을 해 줄 애인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테니까.
어쨋건 인간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건은 파워에의 목마름에 기인하고,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결정짓는 파워 게임은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이 조금씩 다를지는 몰라도 다 똑같은 목적 때문에 저질러진다. 파워를 가진 승자가 규칙을 정해서 피지배자들을 구속하고, 지배자는 언제나 그 규칙 밖에 있다. (사실 규칙이란 것이 권력 계층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제프리 다머는 사람을 참 많이도 죽였다. 하지만 우리가 다머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꼭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악"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다머가 저르른 종류는 우리들을 햇갈리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악"은 "신"이나 "정의" 혹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라는 대의명분 하에 행해진다. 전쟁을 한번 생각해 보자. 다머의 살인 행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에는 적아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권력이 썩어있을 때, 세상이 뒤집어지는 엄청난 혁명이 불가피할 때, 기득권 세력은 전쟁을 선호한다. 돈을 챙겨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돌아오면 되니까. 게다가 전쟁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다급해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다루기도 쉽다. 2차대전 당시 스위스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체 어떤 사람들이 돈을 들고 스위스로 피신했을까? 필요하지 않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그 필요라는 것이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의 필요라는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는 참 좋은 것이다. 의회 정치도 참 좋은 발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든 의회정치든, 정치가들이 권력의 주인인 국민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렸다면, 그것은 수호할 가치가 없다. 대의명분이 "신"이건 "정의"건 "민주주의"건 "나라"건, 우리는 꼭 한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한 마디에 진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자고로 50명 이상 목숨을 잃었던 역사적인 사건치고, 신이나 정의 혹은 다수의 이익을 들먹이지 않았던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