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베이비 복스 사건에 대한 비평글
대학시절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가 공개한 하나의 재미있는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남자선배는 여자 선배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느닷없이 키스를 했다. 놀란 여자 후배가 묻자, 그 선배는 "일탈하고 싶었어"이런 답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훗날 운동사회 내에서 성추행 사건으로 규정되었지만, 그보다는 90년대 대학문화의 천박성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적 성격이 더 강하다. 90년대 대학의 일탈과 저항은 딱 이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체제에 저항하고 일탈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체제를 완성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사실 상 기존 권력과 권위에 기생하며, 끊임없이 그것을 닮아가지만 겉으로는 '저항'이라는 포장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사람들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관계에서 현재까지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후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양아치 수준의 욕설과 폭력을 일삼으면서, 마치 자신들이야말로 숭고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착각하고 있는 DJ DOC의 이하늘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여성댄스그룹 베이비복스가 미국의 전설적인 래퍼 2pac의 랩을 차용한 것을 이하늘이 맹비난하면서 연예계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이하늘이 M·net의 ‘힙합 더 바이브’ 코너에 출연해 "베이비복스가 전설적인 힙합 아티스트 투팩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이는 투팩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베이비복스를 만나면 혼내주겠다"고 비난하면서 사건은 촉발되었다.
그 뒤 베이비복스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플로스피는 “베이비복스 음악에 최선을 다했는데 하늘씨의 음악성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DJ DOC의 랩도 그저 미국 랩을 빌려 쓰는 정도에 그쳤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남의 것을 가져다 활용하면서 ‘다른 사람의 것은 아니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공인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해 갈등이 커졌다.
이에 이하늘은 "내가 볼 때 플러스 피가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지는 않고 '미아리복스' 회사가 플러스 피를 이용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 미아리복스가 직접 나서면 나중에 나나 우리 디오시한테 디스당하거나 테러(야무지게 빠따)당할 것을 우려해 3자를 끌어들인 거겠지"라며 포문을 가했다. 이어 "랩 좀 가르쳐 달라 안무 좀 가르쳐 달라 ×나 부탁하더만 이 ××이 좀 뜨니까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라며 폭언이 담긴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했다.
재미있는 것은 2pac을 두 번 죽였다고 길길히 날뛰던 이하늘이, 정작 2pac과 긴밀한 활동을 펼쳤던 플러스 피에 대해서는 반론 한번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하늘은 플러스피는 안중에도 없는 듯 끝까지 베이비복스만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각종 연예저널리즘에서는 양측의 의견을 중계방송해주는데 그치고 있다. 스포츠서울만이 플러스피의 의견에 무게를 실으면서 간접적으로 이하늘을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한국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계에서 저항과 일탈을 내세우는 힙합 가수들의 정체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힙합의 정신을 자신들의 삶에 투영한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하고 있냐는 것이다.
195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는 1-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기존의 고급예술의 권위를 성찰하고 부정하는 새로운 예술사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고급예술의 권위와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발상의 기저에는 그토록 고매하고 지고지순하다는 고급예술이 인류의 대참사 앞에서 과연 무슨 역할을 했느냐는 반성도 있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급격히 성장하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받아들인 점도 있다.
특히 미국 쪽에서는 '팝아트'라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접목된 지점을 찾는 예술이 붐을 이루기도 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를린먼로 등의 연속그림으로 유명한 앤디워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 당시 팝아트에서는 마네와 모네 등 근대 이전의 순수회화를 마치 포르노 도색 사진처럼 패러디하여 찌라시처럼 뿌려대는 것도 있었을 정도였다.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처럼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감동만 주면 그만이지, 예술적 권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문제의식이었다.
흔히 예술의 권위 파괴의 상징적 사건으로 알려져있는 마스셀 뒤샹의 변기 전시회 때,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오히려 순수한 아이들은 '와 우리집 변기와 똑같다'라며 즐거웠다는 일화도 이와 연속되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일련의 저항과 일탈을 통해 예술은 닫힌 개념에서 열린 개념으로 현재 진행 중으로 변해간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90년대 들어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등 다양한 고전음악들이 대중음악에 차용될 수 있었던 것도 앞선 세대의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어떤 고전음악가의 음악을 차용해도, 이를 가지고 모독이니 상업화니 비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 동안 고급문화의 권위 앞에 날라리 양아치 취급을 받아왔던 대중음악인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우상을 세워놓고 마치 신성처럼 받들어 모시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런 조짐은 서태지의 이재수 패러디 고소고발 사건이었다. 그때 서태지가 들고나왔던 논리 역시 상업주의였다. 그리고 이번에 이하늘이 들고 나온 깃발에도 '상업주의'라고 적혀있다. 모든 대중문화가 산업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산업의 관점에서 음반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상업주의'라는 칼로 동료를 내려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하늘과 함께 한국에서 이상한 예술적 귄위의 벽을 쌓고 있던 랩퍼 김진표도 거들고 나왔다. 김진표 역시 그의 홈페이지에 "나 같았으면 2pac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샘플링하지 않았을 것"이란다. 김진표는 콘서트에서 일탈과 저항의 코드가 담긴 음악을 선보인 뒤, 뮤지션을 소개할 때 "형님"을 연발하여 역시 권위타파에 일가견이 있는 한양대 사회학과 임지현 교수를 당황케 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였기에 2pac이라는 권위를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96년 DJ DOC는 <대한민국 만세>라는 음반에서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차용해서 논란이 되었다. '애국가'의 음절 자체를 바꿨기 때문에 보수적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도 열린 예술의 개념을 갖고 있던 평론가들은 대부분 DJ DOC를 옹호했다. 음악은 즐겁게 들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애국가라고 해서 보물단지 모시든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런 DJ DOC가 지금 2pac의 음악에 대해서는 베이비복스가 절대 차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안익태 선생의 음악을 차용하면 보다 업그레이드시킨 예술이고, 베이비복수가 2pac의 음악을 차용하면 저질 상업주의란 말인가? 세상에 이런 쓰레기 같은 논리가 어디 있는가?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면 자신들은 절대 기존 음반 생산 및 판매 시스템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DJ DOC도 방송활동 할 것 다하고, 기존 시스템에 포섭되어 있고, 돈 벌 것 다 벌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DJ DOC가 베이비복스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뭐가 있냐는 말이다. DJ DOC도 데뷔시절 온갖 예능오락프로그램에 나와서 광대 노릇 할 것 다하지 않았나?
9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찰이 따라주지 못했다. 그것은 비단 제도권이라 불리는 메이저 제작사 쪽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스스로 언더그라운드라 자청하는 뮤지션 역시 그냥 외국에서 불러대는 음악을 그대로 베껴와서는 마치 대단한 저항과 일탈인 듯 포장하기 바빴다. 그 극단의 지점에서, DJ DOC는 수준 이하의 욕설과 폭력을 일삼으며 마치 저항의 기수로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DJ DOC가 한때 대학가의 대동제 때 단골로 초청받았으니, 대중문화의 수준이나 대학문화의 수준이나 오십보 백보는 마찬가지이다.
요즘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힙합의 전설 A-YO>라는 새로운 코너를 선보였다. 복장부터 가사까지 미국 힙합의 겉모습만 따라하는 한팀과,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서민 주부를 상징하는 다른 한 팀을 대조시켜놓은 것이다. 미국팀이 "A-YO"하고 외치면 서민팀은 "애울어요"를 외친다. 이 작은 코너 하나가 한국 대중문화의 사대주의와 천박성을 그대로 짚었다고 생각한다. 대중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은 바로 그 음악을 듣고 부르는 곳의 사람들의 삶이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 어떤 음악의 대가라 하더라도 그는 진정한 음악가는 아니다. 그 점에서 플러스피의 생각에 100% 동의한다.
"랩에는 그 시대, 그 나라, 일반 대중의 사상과 생각이 깃들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 한국의 힙합그룹의 랩에는‘한국의 사상’이 없어 보인다. 그저 베끼고 본다. 머리나 빨갛게 물들이고 약간 반항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힙합그룹인가? 차라리 솔직히 자신의 음악성을 말하고 거기에 맞게 음악을 하는 것이 훨씬 진실돼 보인다.
투팩도 생전에 베이비복스 같은 여성그룹과 음악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베이비복스와 함께 음악을 했을 것. 한국의 댄스음악을 전 아시아권에 알리고 있는 베이비복스야말로 진짜 한국인들이 존경해줘야 할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안에서 기행이나 일삼으며 10대 청소년들의 코 묻은 돈이나 벌어가는 일부 가수보다는 훨씬 낳다"
안익태 선생이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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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우연히 본 거라서 작성자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이하늘의 언행에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도 이 글에서 문제된 저작권 관련 시비는 단순히 '표현의 자유'나 '권위파괴'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복잡미묘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조성모의 '가시나무'에 대해서 원작자인 하덕규씨가 고소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보통 가수들이 리메이크 곡을 발효할 때 기획사 측에선 명곡을 남긴 원작자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로서 했다고 발표를 하는데 실제로는 원작자 몰래(그러니까 원작자에겐 저작권 한 푼도 안 주고)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한 모양이더라구요.
물론 비판적 풍자가 담긴 패러디라면 굳이 원작자의 허락까지 받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외형상 비판적 풍자의 형태를 띄고 있는 패러디의 경우도 처음에는 '원작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서 재미있게 바꿔봤다'라고 했다가 나중에 원작자가 "존경의 표시로 했다는데 어떻게 원작자가 모를 수 있냐"라고 항의하면 '원작자의 권위에 조롱하는 의미의 패러디였다'라고 말을 바꾼다는 거죠.
즉 권위를 조롱하는 듯한 패러디 마저도 처음에는 원작자의 권위에 기생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수 건 같은 경우도 차라리 노브레인처럼 처음부터 안티 서태지를 표방했다면 오히려 흠을 덜 잡혔을지도 모르죠. 사실 표현 강도로만 따지면 서태지 인형의 배를 가르는 퍼포먼스를 펼친 노브레인이 심하지만 이 경우는 서태지도 알면서 그냥 넘어갔거든요.
물론 최근의 경우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과도하게 적용되어 돈벌이로 악용되는 측면도 있지만(사후 저작권 시한을 늘리려는 디즈니 측의 시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저작물 이용을 무조건 자유로 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저작물이 생각치도 않은 정치인의 선거유세에 쓰인다거나 하는 일 도 일어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제한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투팩 같은 경우도 투팩의 음원을 갖고 있는 저작권자가 유족의 의사를 물어 본 후 결정한 일이라면 베이비 복스 곡에 쓰이든 베이비 바케스 곡에 쓰이든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우선은 이게 어떠한 경로로 이루어진 일인지는 분명히 밝혀져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