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긴 퇴근 길

  • 유성관
  •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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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 전에 알아본 바로는 강변 CGV에서 [령]이 오후 3시 15분 상영이라더군요. 하도 오래전부터 이
영화가 엉망이네 말이 많아서 개봉한지 꽤 된줄 알았더니 이번 주 개봉이었나봐요? 일단 [령]을 찜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페이스]를 보려고 했습니다. 요즘 개봉한 영화를 전혀 보지 못했답니다. 뭘 하나 보
고 집에 들어가려고 했죠. 그런 와중에 찍은게 왜 하필 DJUNA님이 별 하나 반을 준, 보고나서 "만만치 않
더군요" 로 평가를 일축한 그런 영화들이냐고요?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전 최악을 맘 편하게 즐기는 악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친구는 최악의 페티쉬라고 하더군요.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아시겠찌만, 중의적인
뜻이 있죠?)

몸도 피곤하고, 갑자기 단 것도 먹고 싶고, 요즘 맛있는 케이크를 먹어본지도 꽤 되었다는 생각에 퇴근 후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 가서 티라미스를 먹었습니다. 언젠가 거기 갔을 때 티라미스를 추천 받았었는데, 당
시는 먹지 않았었죠. 아무튼 오늘은 강하고 단게 먹고 싶었으니 티라미스가 제격. 당분을 쭉쭉 온 몸에 흡
수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쇼케이스에서 뉴욕 치즈 케이크가 매혹적으로 절 유혹했지만 대담하게 티라미
스를 골랐죠. 오랜만에 먹어선가, 아주 맛있는 티라미스던데요.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케이크였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그렇게 우아 떨며 접시 위의 케이크를 먹어치우고 강변으로 향했습니다.
여유도 만만하게.

막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극장을 찾아간, 서울주말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전 위풍도 당당
하게 '그냥' 갔습니다. 그냥 가면 저를 위한 표가 하나쯤은 준비되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죠. 정말입니
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거나 아니면 얼마전까지 쉬었으므로, 평일 낮 시간대에 극장
을 찾거나 했었죠. 예매를 했으니 표가 없을리 없고, 평일 낮 시간대에는 언제나 저를 위한 표가 대기중이
었답니다. 과정은 염두치 않고 항상 결과는 같으리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주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 강
변 CGV를 갔더랬습니다. (그 동안 너무 많이 쉰게죠.)

세상에. 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건지. 번호표를 뽑는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뽑아놓고 보니 200번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더군요. 은행에서도 50번이 최고였는데... 이건 정말 쇼크! 그리고 친절하게도 전광
판이 말해줍니다. 지금 뽑은 당신! 27분 대기하셔야 합니다. 게다가 이미 [령]은 매진이었어요. 결국 전 미
련없이 인간들의 체온으로 10도는 온도가 더 높아졌을 그 곳을 바로 빠져나왔습니다. 음. 그렇다고 한 번
뽑은 칼. 뭐라도 썰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생각했죠. 구리로 가면 되겠군.

언제나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그 한가했던 극장. 구리씨네. 집으로 가는 길이겠다. 강변에서 구리로 가는
버스를 탔죠. 네. 그런데 잘못 탔습니다. 가긴 가는데 구리의 모든 아파트들을 주루룩 훑으며 가더군요.
아... 멀미가 날 지경. 한참만에 내리니 체력 소진에 배도 출출. 조각 케이크 하나로 될리가 없죠. 허름한
분식집에서 라면 하나 먹고 (밖에서 먹는 라면은 왜 이리 맛있는건지.) 여전히 정신 못차린 전 역시 위풍
당당하고 여유롭게 구리씨네로 갔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거기도 매진. 티켓부스 앞에 애들이 떼로 바글바글바글바글. 그간 내가 토요일에 극장을
간 적이 없나? 를 심각하게 되뇌이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그 동안은 제가 현명하게도 언제나 예매를 했
던 모양입니다.

결국 토요일 오후. 제 정신 세계에 도움이 될 영화 감상은 포기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옆
백화점에서 빵이나 좀 사고... 그냥 갔으면 앉아서 편하게 갔을 버스를 서서 갔네요. 결국은 빵 하나 사들
고 온, 아무것도 하지 않은 토요일 퇴근길이었는데 집에 오니 1000회 특집 가족오락관이 시작되는 찰나더
군요. 이 장황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은 저 보다 즐거운 토요일 오후가 되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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