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속의 호모포비아

  • Q
  • 06-19
  • 2,104 회
  • 0 건
저는 리플이아닌 포스팅은 DJUNA님리뷰에대한 코멘트만 하려고 작심하고 있었는데, 밑의 민노당간부의 동성애관계 발언에 대한 논의를 보고 제 경험을 참고삼아 올리려고 합니다.    제 글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용서를 빕니다...

저는 386 세대이긴 하지만, 제 경험을 빌미삼아 그 시대의 한국사람들의 생각이나 경향성에대해 일반화해서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제가 한 짓, 그리고 느낀바를 생각나는대로 적을테니까요.  미국에서 겪은일이지만 현재의 한국에서도 더이상 남의나라 일이라고 그냥 넘어갈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죠.

제가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해서 몇년됐을때 일입니다.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군요.  뉴욕에있는 어느 유명한 대학원 (C대학이라고 해둡시다) 에서 멜런 학술기금에서 재정지원을 받은 저의 전공분야에 관한학술회의가 열렸더랬읍니다.  대학원생이 조직하고 발표도 대학원생만 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아주 성대하게 열려서 미 전국의 여러학교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참가했었습니다.    발표가 모두 끝나고 친목회가 열렸지요.    남녀학생들이 모여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와중, 칵테일이 들은 펀치보울하고 크랙커주위를 어정거리고 있던 저한테 주최자중 하나였던 C 대학의 B 군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읍니다.  아 회의가 아주 fantastic 하게 잘 치뤄졌다… 논문 주제는 뭘로 정했냐… 등등의 담소를 나누다가, B 군옆으로 (B군은 키는 별로 크지않고, 윤기나는 갈색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지니고, 아주 진지하고 약간 숨이 가쁘게 말을 하는 서양인친구였습니다) 한 호리호리한 동양남자 (우리 둘보다 나이가 확실히 어린) 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한국이름으로 저에게 소개했습니다.   바로 그때 B군이 그 한국친구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저한테 말하기를:

B 군: K군은 내 보이프렌드야.
본인:  … (무슨말인지 못알아들음)  하하하하.
B군과 K군:  하하하하.
본인: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네.
B군: (웃음을 멈추고 씁쓸한얼굴이 됨)  

이 순간 갑자기 상황파악이 된 저는 말로 표현할수없는 어색함때문에 그 자리에 더 있지못하고 땡땡이를 까고 말았읍니다.   숙소로 돌아온 다음에도 저는 계속 고민했읍니다.  처음에는 물론  “아니 참내,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앞에서 (새빨간 거짓말이었죠 ^ ^ )… 그것도 한국애를 데리고…보이프렌드는 무슨…” 하면서 혼자 툴툴거리고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나는 무식했다.  나는 동성연애자인줄도 몰랐다.   그래서 말실수 좀 한건데, 뭘.  저쪽이 날 이해해줘야지.   그렇게 말이죠.  

그렇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자 어쩔수없이 저의 생각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착이되었습니다.   저는 B군을 모욕한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동성애자에 대한 직접적경험이 없었다한들,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고 틈만나면 한국정치를 씹고 공화당을 씹는 잘난 “예비 지식인” 으로써, 한심한 이율배반적 행위를 저는 저지른거였죠.  어떻게 해야하나?   저는 일단 그냥 넘어가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겠지뭐…  학교도 다른데…    결국 저는 당시 저랑 가장친한 여자친구 (지금의 저의 바깥사람입니다) 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떡하지?   제 친구의 조언은 명쾌했습니다.   B 라는 친구 전화번호 아니?   알지, 주최자니까.   나하고 전화끊고 곧바로 통화해서 사과해라.  … 뭐, 뭐라고?   뭐라고라니, 니가 호모포빅한 바보였다고 사과해야지.    

호모포브… homophobe… 나는 호모포브 아닌데… 나는 열린 사람인데…  호모포브는 뭐 저런 나이많은 남부의 백인같은 사람들… 무식하고 교양없는 사람들… 난 아닌데…

그 다음날 저는 B 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결국 “I am sorry” 란 말은 끝까지 못하고 횡설수설, 너무 신경쓰시지 마시기를, 좀 헷갈려서 그랬다는둥, 되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B 군은 이해한다, 걱정말라, (이런 상황을 사실 저같은 인간들에게서 한두번 당해봤겠습니까?)  너그러이 기분을 풀어주고 통화를 끝냈습니다.  

그 사건은 별일도 아니라면 별일도 아닌 일이었지만, 저 스스로 내부의, 본인이 전혀 깨닫지못하는  차별의식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밑의 민노당간부시라는 분도, 요번 발언의 여파를 통해서  “당하는 사람” 의 입장에서 한번더 자신의 의식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빕니다… 이미 잘 하고 계시겠지만… 진보라는 딱지가 중요한게 아니고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요즘은 “진보” “보수” 라는 한국말 자체에 아주 두드러기가 납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는게 필요한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결국 B 군한테 정식 사과도 못한 비겁한 인간이지만, 민노당간부시라는 분은 “잘 몰라서 그랬다.  좀더 공부하겠다” 정도의 어정쩡한 사과라도 하시길 기대합니다.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569 질문, 질문, 질문. 안셀 아담스, 신발, 요리스 이벤스. mithrandir 911 06-19
1568 써도 될련지... 책 몇권 찾고 있습니다. jxk160 1,055 06-19
1567 이모티콘 없는 중고생용 로맨스 시장? 휘오나 1,587 06-19
1566 안시 페스티벌을 봤습니다. 。º▶ 。... 675 06-19
1565 저도 음악 하나. blackmore 568 06-19
1564 진보 vs 보수, 좌파 vs 우파 다니엘 933 06-19
1563 토요일 긴 퇴근 길 유성관 1,265 06-19
1562 몇 가지 잡담... DJUNA 2,021 06-19
열람 내마음속의 호모포비아 Q 2,105 06-19
1560 무슨무슨 연구소라는 곳.. need2dye 850 06-19
1559 틀린 것과 나쁜 것? 뮤뮤 1,629 06-19
1558 프렌즈....그냥 소감 Pastorale 1,159 06-19
1557 '동성애는 자본주의의 파행적 현상'이라는 인식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인가요? 와토 1,665 06-19
1556 그레이트 후렛샤 1,2,3,4 웨이브장 805 06-19
1555 버피 3x15 Consequences 리뷰 오타 신고 vogelgarten 498 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