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월 31일 일요일, 그날 데리에서는...
[오마이뉴스 2004-06-19 11:09]
[오마이뉴스 김성수 기자]'블러디 선데이', 데리의 비극
<블러디 선데이>는 영국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약칭해서 데리)시에서 1972년 1월 31일 일요일에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재구성한 논픽션 영화이다.
영화는 30일 자정 제리와 헤스더가 마지막 키스를 하고 난 시점으로부터, 31일 자정 지역 하원의원인 아이반 쿠퍼가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 24시간을 다룬다.
아일랜드가 독립한 이후, 영국에 편입된 북아일랜드는 혼란이 누적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데리시 시민권협회의 대표이기도한 쿠퍼 의원은 IRA(Irish Republican Army)의 무력투쟁에 반대하며 비폭력 평화행진을 주도한다. 한편, 중앙정부는 북아일랜드 지역의 모든 집회를 불법행위로 간주한다.
영국중앙정부에 대한 북아일랜드인들의 적개심이 축적되어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데리의 비극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돌을 던지며 흥분하는 청년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공수부대 사이의 대치는 결국 긴장한 일부 군인들이 군중들을 향해 실탄조준사격을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파국을 만들어낸다.

▲ 평화행진을 주도하는 아이반 쿠퍼 의원
ⓒ2002 블러디 선데이
공수부대원들의 사격에 의해 민간인 십여 명이 부상했고 13명이 사망했던 이 참사를 영국중앙정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만 해석하다가, 1998년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정밀 재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한 결과는 2005년에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북아일랜드, 영국 식민지 정책의 산물
외견상 광주민주화운동의 모습과 유사한 이 영화의 내용은 사실 좀 다른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이것은 영국이란 나라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라는 네 지역의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다. 그 중, 북아일랜드는 근세 영국 식민지 정책의 산물이다.
16세기부터 영국은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를 탐내기 시작하였는데, 17세기 중반에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고 안정화를 위해 본토 개신교인들의 이주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이로부터 약 300년 후, 아일랜드는 독립(1921년)하게 되지만, 영국과 아일랜드는 신교도들이 많이 거주하는 북아일랜드 지역은 제외하기로 협정(1920년)을 맺는다.
이에 북아일랜드는 두 파로 나뉘게 되었다. 구교도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nationalist)는 영국으로부터 분리운동을 벌이고, 신교도를 중심으로 한 충성주의자(loyalist)들은 영국 잔류를 희망한다.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 상황이 함께 맞물리는 북아일랜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독립 및 재통일을 위해 구교도를 중심으로 결성된 IRA의 무장투쟁도 시작되고, 신교도들은 얼스터 민병대를 조직해서 IRA의 투쟁에 맞선다. 더 나아가 1972년에 영국중앙정부가 북아일랜드 정부의 자치권을 몰수하면서부터 양측의 충돌과 영국 본토 내 IRA의 테러는 더욱 거세어지게 된다.
데리의 비극은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한...
그러나 영화는 이런 배경지식이 없이도 일단 관객들에게 데리의 비극적인 실화를 충분히 실감나게 전달한다.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쓰는 페이드인(화면이 밝아지는)과 페이드아웃(어두워지는 효과) 기법과 현장에 있는 듯 흔들리는 느낌을 주는 핸드 헬드(카메라 들고 찍기) 기법이 주로 사용된 탓이다.

▲ 시위대를 진압하는 군인들
ⓒ2002 블러디 선데이
관객들에게 극도의 사실감을 전달하기 위해 영화의 배경음악 사용은 고의적으로 배제된 듯하며, 클로즈업 장면들은 르포물과 유사한 형태로 구성되었다. 그 결과 <블러디 선데이>는 주류영화와는 많이 다른 영화가 되었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고다르의 최근 영화들 분위기와 비슷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군중들의 대부분은 실제 현재의 데리 시민들이며, 군인들의 대부분도 그 당시에 있었던 군인들과 북아일랜드에서 근무했던 군인들이라고 한다. 또한, 15살 때 행진에 직접 참여했던 데리 출신의 작가 돈 뮬란이 당시 상황을 영화로 재구성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처럼 영화는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온갖 공을 들였으며,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점을 추구한 결과로 인해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한 예술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는 현재까지도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이 사건을 일반인들에게도 알리려는 취지 하에 영국과 아일랜드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시위대와 진압군인들, 그리고 현재의 북아일랜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는 2002년 제52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공동으로 금곰상을 수상했다. 더 나아가 평화시위대와 진압군인들이 만들어낸 긴장감과 그 분위기를 영화로 담은 사실감은 그 해 선댄스 영화제 관객 인기투표 1위의 영예를 차지하게 하였다.
영화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비극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단순히 그 상황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나 전달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중앙정부에 대한 북아일랜드인들의 분노, 구교도 진압을 위해 영국 본토에서 투입된 공수부대의 모습들, IRA 무장투쟁의 이유에 대한 설명들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위 전개에 따른 시위대와 진압군인들의 모습을 정교하게 비교하는 교차 편집은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양측의 접근과 입장을 훌륭하게 잘 표현해 내고 있다.

▲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시의 현재 모습
ⓒ2004 Derry City
데리 사건 이후, 계속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북아일랜드의 충돌은 1997년 IRA의 휴전 선언과 1998년 부활절 무렵에 체결된 구교측 신페인당과 신교측 얼스터 연합당간의 성금요일(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변화의 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북아일랜드 지방정부는 자치권을 갖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IRA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인 2000년 초에 IRA 산하 조직에 의한 폭발사건이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의 교외 한 호텔에서 발생한다. 그 후, 영국중앙정부는 북아일랜드 자치권에 대한 계획을 유보시켰다. 북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데리에서 일어난 상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김성수 기자 (onomato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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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현재, 영국의 공식 국명은 '대브리튼 연합왕국과 북아일랜드(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입니다.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주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derryvisitor.com/derry/photolib/photolib.asp
http://www.derrycity.gov.uk/index.htm
이 글은 영화연대(http://www.yhyd.org)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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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에 씨네큐브에서 보고 온 영화입니다.
이 영화관은 개봉영화 관련 기사들을 항상 곱게 스크랩해서 전시해두어서 맘에 드는데 오늘 거기서 본 기사 중에는 북 아일랜드가 2001년에 자치권을 찾았다고 나와 있어서 흐뭇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는데 이 기사를 보니 제가 봤던 그 기사가 잘못된 기사인 모양이네요. 어느 신문에 나온 기사인지는 까먹었습니다. -_-;
영화 초반에는 제리 역으로 나온 청년의 꽃미모에 감탄하며 '영화에 데리 시민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 실제 그곳 시민들이라는데 아일랜드가 원래 얼짱들이 많은가? 글고 보니 엔야, 시네이드 오코너, 콜린 패럴, 조나단 리 메이어스도 아일랜드 출신이잖아' 했는데 다 보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반 쿠퍼라는 인물이었어요. 구교도와 신교도와의 사랑이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신교도로서 구교도 출신 여인과의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 그리고 그 사랑을 계기로 북아일랜드인들의 화합과 권리회복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아름다웠거든요.
특히 총격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부상자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저런 공직자를 가진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결국 이 사람이 조직한 평화시위는 실패로 끝났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요.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과는 소원대로 잘 이루어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