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영화를 찾아요. 하도 오래전 기억이고 남아있는 자료도 없어서 이렇게 해도 찾아질지 모르겠습니만, 시간이 더 흘러가면 이 기억들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요.
어렸을 때 <학생중앙>이란 잡지를 얼마간 본 적이 있어요. 구독했다기 보다는 뭔가를 사서 함께 딸려온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군요. 이 잡지에는 여름 특집 별책부록으로 추억의 영화인가, 영화 속의 명장면인가 이런 제목의 글을 있었어요. 유치하고 감상이 철철 넘치는 글이었지만(제생각으론 암만 해도 일본 잡지를 슬쩍 빼긴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 쉽게 그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틈만 나면 그 부록을 보면서 그 영화들을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폈답니다.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그땐 TV에서 해주는 영화가 다였던지라, 찾아보기 힘든 영화들이 잔뜩 있었답니다.) 나중에 직접 영화를 보고 실망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 목록들은 꽤 괜찮았죠. 꿀맛, 제7의 천국, 무도회의 수첩, 내 청춘 마리안느, 밀회, 생각나는 것들이 이런 영화들.. 애정 영화 특선이었나..봅니다. 나중에 EBS에서도 이런 고전 영화들을 꽤 방영해서 나름대로 다 찾아서 보았는데, 유독 생각나는 이 영화는 아직도 못찾았어요. 책에서 몇 줄 읽어 본 영화 내용이 다라 영화 제목도 몰라요. 물론 잡지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메데이아, 그리스 신화의 최대의 악녀로 불리우죠. 이아손을 위해서 조국을 배신하지만 그가 변심하여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자 복수에 눈이 멀어 그녀와 그 아버지인 코린트왕을 죽이고 급기야 자신의 아들 둘마저 죽게하는 비정한 여인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통념적인 인식과는 달리 독립적이고 오만한 메데이아의 존재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기서 명 장면은 이렇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메데이아가 홀로 신전에 서 있습니다. 신들은 그녀의 독선과 자만이 화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묻습니다. "메데이아, 너에게 무엇이 남아있느냐,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그러자 이 오만한 여인은 대답하죠, "저에게 아무것도 없다니요, 이렇게 제가 여기 서 있지 않습니까."
메데이아는 가혹한 운명의 신에게 항변이라도 하듯이 두손을 쥐고 ..영화는 이렇게 끝납니다. 신에 맞서서 자존을 지키려는 여인, ... 이렇게 쓰여있었죠. 모든 것이 희미하고 오래된 기억이라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몇년전에 파졸리니 회고전이 열렸을 때 목록에 메데아가 있어서 혹시 그 영활까했더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마리아 칼라스가 메데이아로 분한 그 영화는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파졸리니가 재해석한 영화였는데 고대(야만?)와 그리스(문명?)의 충돌로 그렸더군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나온 메데이아, 혹시 보신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