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부비에 뜬 곽재용감독과의 인터뷰랍니다(여친소관련, 긴 스크롤과, 인터뷰 내용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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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용 감독이 앞에 앉아있다. 두근거린다. 당신의 영화를 보려고 신사동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줄을 섰던 때가 중학교 2학년. 내가 처음 영화를 내 돈 내고 직접 가서 보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나는 다짜고짜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신문 한 장을 꺼냈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2> 포스터가 전면에 실린 그 당시 신문이다. 싸인을 받았다. 곽감독은 기꺼이 싸인을 해준다. 나는 난생 처음 싸인이라는 걸 받았다.

곽재용 감독이 앞에 앉아있다. 프린트한 종이가 놓여 있었다. 대번에 뭔지 알아보겠다. 맥스무비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리뷰이다. 내가 썼다. 악수를 먼저 청하고 내 이름을 먼저 챙겨 부른다.

그런 두 사람이 인터뷰하겠다고 마주 앉았다.

사진촬영이며 녹음기며 챙겨주고 게다가 늘 인터뷰 직전 패닉상태가 되는 내 짜증을 받아주며 동행했던 유정은 기자가 그랬다. 인터뷰라기보다는 토크쇼 같았다고. 내가 “이거 맞죠?” 하면 곽감독이 “예, 맞아요” 하면서 마치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자기네들끼리만 하듯 서로 토크쇼를 하더란다.

1시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1시간 40분이 되버렸다. 그래도 서로 아쉬웠다.

그런 분위기였다.

곽감독에게 약속한 바도, 곽감독에게 메일로 질문을 한 네티즌과 회원들에게도 약속했던 바도, 우리가 추구하는 인터뷰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 100분 인터뷰를 텍스트로 그대로 옮겨놓는다. 옮겨놓고 보니 그때 뉘앙스가 완전히 사라진다. 서로 좋아서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그 분위기. 동영상 인터뷰를 싫어하는 내가 이번만큼은 이렇게나 아쉽고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 인터뷰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기도 한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인터뷰일까? 상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터뷰일까? 텍스트를 다시 읽어본다. 나는, ‘우리’를 대신해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를 대신해서 곽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닭살을 뛰어넘는 대화마저도 잘라내지 않고 서슴없이 그대로 나열해놓았다. <여친소>를 사랑하는 ‘우리’에게 바친다. 다음은 ‘우리’를 대신해 기꺼이 즐거웠던 100분의 결과이다.



김형호 기자 일단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것부터 질문하자면, PPL 이야기부터.

곽재용 감독 그쵸.(웃음) 그게 참, 저는 만들 때는 PPL이 많이 들어와서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클래식> 찍을 때 제작비는 모자라는데 PPL로 충당하려해도 협찬이 안 되는 거 있죠? 그래서 통닭 한 마리 출연시키고 700만원 받았는데 소품비로 잘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사정이 달라지더라구요. 대신 이게 이렇게까지 말이 많을 줄이야.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순수성에 대한 의심을 받는 거죠. 감정선은 <클래식>때나 이번이나 똑같은데 그때는 상대적으로 순수했다고 인정해준 반면, 이번에는 PPL이 눈에 더 들어오니까 상업적으로만 보는 거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이 서울’도 PPL로 들어가 있고 사실 저는 외국에도 개봉하니까 드라마를 해치지 않으면 노출한다는 차원에서 많이 나오면 좋지 않나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크게 보일 지는 전혀 몰랐어요. 지현이는 많이 꺼려했어요. 자기가 직접 출연한 광고인데 그렇다고 하면서. 그래서 단추로 가리기도 하고 그랬어요. 비요뜨 장면에서는 제가 한번 들어주라 했어요.

김형호 기자 왜?

곽재용 감독 그게 <클래식>때 그나마 PPL 하나 받은 게 있는데 편집에서 짤리면서 문제가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가 겁을 먹고 “지현아 한번 들어줘라” 했던 거죠. 그 애드벌룬도, 처음에 모니터로 봤을 때 마케팅팀에서는 글씨가 너무 작지 않냐며 걱정했던 건데 한번 그렇다고 소문이 나니까 그게 이제 너무 크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PPL이 너무 눈에 들어오다보니 순수성에 대한 의심을 받는 것 같아요.

김형호 기자 후반부를 보고 지루하고 유치하다고 하는 관객들이 너무 많던데.

곽재용 감독 저도 극장에서 몇 번 관객들하고 봤는데 이런 느낌이었어요. 남자, 여자가 같이 왔는데 여자가 울면 명우가 죽은 장면부터 남자들이 신발끈 매고 괜히 핸드폰 보고 자꾸 감정의 거리 두기를 하더라구요. 여자들은 거기에 젖어서 울더라도 감정을 쫓아가는데 남자들은 점점 어수선해지는 거예요. 명우 죽은 데서부터 감정을 안 쫓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는 너무 세련된 감정들이 원초적인 감정들을 눌러놓고 피해가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또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이 있는 거죠. 특히 남자 관객들이 우는 걸 창피하게 느끼고. 나 같은 경우 그렇게 피해가는 방식이 너무 싫어서 아예 울려면 확 울고 싶게 만드는 건데 일부관객들은 그게 또 유치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거죠.(웃음)

김형호 기자 저는 그런 생각들을 했거든요. 앞부분은 웃기고 뒷부분은 슬프고. <클래식> 때도 <엽기적인 그녀> 때도 그랬어요. 그런데 <엽기적인 그녀>때도 안 운 사람들이 있었어요. 유치하다고. <클래식> 때는 더더욱. 그때는 되게 극단적이었잖아요.

곽재용 감독 이건 너무 ‘신파’다.(웃음)

김형호 기자 그쵸. 그때는 신파라는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왔죠.(웃음) <봄날은 간다> 같은 경우는 정말 차갑게 절제하고, 절제를 넘어서 꾹꾹 누르고 반대로 <클래식>,<여친소>는 확확 터트리고

곽재용 감독 이렇게 감정을 터트리면서 가려는 감독이 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김형호 기자 전 그 부분, 그러니까 이렇게 적극적인 안티가 있는 게 오히려 전지현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지지자들을 전지현 환타지에 빠진 사람들 정도로 평가하고 안티들은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이게 오히려 전지현의 힘인 것 같아요.

곽재용 감독 <여친소> 만들 때만 해도 우리는 주변에서 이렇게 기대감이 클지 몰랐어요.

김형호 기자 <여친소>가 그렇게 마케팅을 했어요. 어마어마하게 했는걸요. 인지도는 이미 개봉 두 달 전부터 최상위권이었을 정도니까.

곽재용 감독 그건 아마도 이런 걸 거예요. 하다보니 기대감이 더 커지고 그러니까 더 공격적으로 진행하게 되고. 공격하는 사람은 어떤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공격한다는 것이죠.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만든 사람들의 두려움이 공격적 마케팅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혹시 잘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여러 가지 걱정들이 사실 마케팅을 더욱 공격적으로 하게 만들었다고 보는데 그 평가 자체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홍보는 많이 됐는데 정확하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흡수하고 영화를 설명하는 것이 잘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마찬가지로 안티들의 <여친소>에 대한 공격도 어떤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업 영화가 어떤 예술성을 져버린 상업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이게 관객들이 많이 보고 젖어버린다면 한국의 아트필름들은 사라지고 앞으로는 이런 영화만 판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그정도 영화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수성에 대해서 의심받고 있다는 거죠.

김형호 기자 홍콩 프리미어 시사회까지는 감독님이 여유 있었다고 하던데.

곽재용 감독 아니에요, 여유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 영화는 사실 한국 영화라고만 하기 그렇고 중국, 한국, 홍콩 동시 개봉하는 초국적인 프로젝트인데 나, 전지현, 장혁 전부 한국에서만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다 보니까 홍콩에서 너무 너무 초조한 거예요. 어떤 반응이 한국에서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 초조했기 때문에 홍콩에서 여유가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인터뷰할 때도 내가 너무 표정이 굳어가지고 기자들하고 나중에 끝나고 식사를 하는데 왜 이렇게 굳어 있느냐 건방져 보인다 그러는 거예요. 건방진 게 아니라 사실은 그 당시 반응들은 좋은데 속으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니까 사실은 쫄아있었지.(웃음)

사실 촬영할 때부터 개봉할 때까지 여유는 한번도 없었어요. 지금은 좀 여유가 있어요. 이제 좀 마음속에서 버렸으니까. 그저께 무대인사 끝나고 마지막 식사를 하는데 내가 혁이하고 지현이한테 이제 이 영화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막 슬프더라고요. 너무 애정이 많은 영화였었는데.



김형호 기자 진짜 멜로는 마지막 작품이세요?

곽재용 감독 멜로드라마 3부작, 그래서 이번에 끝내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영화에 드러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형호 기자 저는 그 얘기를 리뷰 쓰고 나서 인터뷰하겠다고 연락 드린 다음에 자료 챙기면서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만 그냥 봐도 앞에 다른 영화들하고는 달랐어요. 진짜 총집합이었거든요.

곽재용 감독 욕심도 많이 부렸고 연기자들한테는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말아라 항상 그랬는데.(웃음) 홍콩프리미어 시사 전에 빌콩씨의 에드코필름 시사실에서 필름 체크하느라 혼자 본 적이 있어요. 맘 편하게 혼자서 마지막으로 본 거죠. 그때 나는 혼자 막 울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영화에 너무 힘을 주고 있구나, 배우들한테는 힘을 빼라고 해놓고는 내가 힘을 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김형호 기자 울면서 보셨다고 하니까 말씀드리지요. 각색 작업하면서 많이 우셨죠?

곽재용 감독 (웃음) 맞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김형호 기자 사실은 영화 같이 본 사람이 전지현이 장혁 떠난 이후에 혼자 바람 부는 방안에 있는 장면이 유치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니다, 저 장면은 아마 울면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림으로 보니까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글로 보면 유치한 장면이 아니다. 그 느낌 그대로를 장면에 실으니까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감정이 실컷 나온 장면이다. 오프닝 장면 그러니까 전지현이 빌딩 위에 서 있을 때 장면이랑 또 전지현이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에서도 아마 감독이 글 쓰면서 막 울면서 썼을 것”이라고. 어떠셨어요?(웃음)

곽재용 감독 (웃음) 맞아요. 콘티할 때도 시나리오 쓰면서 실제로 울면서 썼고 그 시나리오 울면서 봤고 그랬어요. 전에 봉준호 감독이 <클래식>을 보고 나한테 하는 얘기가 자기랑 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도 이 영화를 보니까 “감독님이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울기 위해서 만든 것 같다, 자기도 <살인의 추억>을 쓰면서 실제도 범인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썼다”고.

정말로 그래요. 관객을 울리고 싶은 것보다는 내가 울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영화 내내 만들다 보면 그 감정이 점점 떨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초반부에 그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 많이 했어요. 그래도 이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떠나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형호 기자 그런데 왜 항상 여름이에요?

곽재용 감독 ‘비’를 출연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영화는 마치 비가 오는 거리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빗속에 뛰어들어 흠뻑 젖듯이 영화 속에서 감정의 빗줄기를 맞는다면 마치 명우와 경진처럼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지만, 그냥 처마 밑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낯설게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관객들 모두에게 억지로 비를 맞으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전지현과 장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가 요구하지 않아도 그들이 물장난을 놀고 있는 빗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전 그렇게 감정의 빗줄기 속으로 뛰어들어줄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듭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웃고 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겠죠. 하지만 그들을 위한 영화도 있을 테니까. 이번 작품은 특별히 제 영화를 조금이라도 알고, 전에 제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보아서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좋아할 사람들하고 호흡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김형호 기자 그런데 바람하고 비가 항상 두 개가 같이 나와요. 이 영화에서는 어차피 주인공이 바람이니까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앞에 두 영화에서도 여름에 부는 그 시원한 바람에 여주인공 머리가 휘날리는 장면이 멋져요.

곽재용 감독 비에 대한 것은 저도 의식적인 부분이 있는데 바람은 무의식적으로 많이 들어갔더라구요. <여친소>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클래식> DVD 코멘터리 작업을 하는데 내 스스로 다시 발견한 것이 그 바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바람에 대해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여친소>죠.



김형호 기자 남자 주인공들은 다들 조금씩 달라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강석현 캐릭터는 남동생이 누나한테 하듯 칭얼거리는 캐릭터였어요.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과 <여친소>의 장혁을 비교하면 차태현은 받아주는 거고 장혁은 챙겨주는 거고 그렇게 봤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이 사람들은 다 짝사랑하거나 연애하기 직전의 상황들인데 <클래식> 때 조승우나 조인성은 굉장히 설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남자주인공들이 시간분배상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캐릭터에 따라 여자주인공들 성격이 결정되고 영화의 느낌도 그렇게 가요. 실제로 감독의 의도인지 아니면 제 개인적인 느낌인지?

곽재용 감독 이번에 끝나고 나서 얼마 전에 지현이는 명우가 나 같다고 하고 혁이가 내 옆에 있을수록 감독님이 더욱 명우처럼 느껴진다면서 “감독님이 진짜 명우같아요”라고 하더라구요.(웃음) 우리 어머니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이 너 같다”고 얘기를 해요.(웃음) 남자주인공들이 나 같은 면들이 있는데, 음, 뭐라고 그래야하나 <클래식>할 때 승우한테 한 얘기를 이번에 혁이한테도 했어요. 뭐냐면 평소에 여자를 올려다봐야 한다, 너는 계단 아래에 있다, 계단 위에 항상 여자가 있다 라고 얘기를 했어요. 상징적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표현을 했고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올려다보는 장면으로 묘사했고.

김형호 기자 그 주문에 대해 장혁은 어땠나요?

곽재용 감독 혁이는 기본적으로는 그런 자세가 되어 있는 애예요.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지현이보다 자기가 오빠인데도 올려다볼 자세가 되어있는 거예요. 지현이가 저기서 악 소리가 났다고 하면 팽~하고 뛰어가요. 그리고 손 다쳤을 때도 괜찮다고 하는데도 붕대 감아주고 약 발라주고 하는 이런. 오빠지만 지현이가 한마디 딱 하면 어느 순간 말하다가도 딱 다물어버리는. (옆에 스탶을 보며) 홍콩에서 인터뷰 할 때도 그랬잖아.(웃음) 홍콩에서 인터뷰할 때 예를 들면 어느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보니까 혁이가 “자기가 죽는 장면 찍을 때 그 날이 생일이었다. 생일날 미역국 먹고 가서 죽는 장면 찍었다” 얘기를 하니까 지현이가 “그럼 관객들한테 내용 가르쳐주는 거잖아.”하니까 입 딱 다물고.(웃음)

혁이가 연기한 캐릭터는 내적으로는 굉장히 강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런 캐릭터예요. 그런 성격이 처음에 총 들이대는 장면에서 한번 툭 들어나고 나중에는 죽어서까지 계속 끊임없이 이 여자를 돌봐주려는 그런 굉장히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죠. 또 다른 남자한테 소개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강한 성격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혁이는 그러더라고요.(웃음) “나는 죽어서도 내 여자 친구를 소개 못한다”고. 그래서 “나는 소개하거든?” 했죠.(웃음) 그런 게 더 강한 게 아닌가?(웃음)

김형호 기자 <여친소>에서 장혁의 비중이 너무 작다고 하지만 오히려 영화 본 사람들은 다 좋아해요. 안 좋아했던 사람들까지도. 영화가 재미없다고 한 사람들조차도 장혁에 대해서는 다 좋게 말하잖아요. 그것도 그거지만 영화 딱 보고 있으면 전지현 빼고는 나머지는 다 장혁이거든요. 전지현이 혼자 잡히는 장면에서도 가운데에 있을 뿐이고 나머지, 그러니까 주변상황이든 배경이든 뭐든 장혁이 직접 나타나지만 않지 그 모든 게 장혁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곽재용 감독 모든 시점도 그렇고 이야기하는 나래이터 자체가 혁이고 그래서 비신에서도 지현이 주변을 바람개비처럼 돌라고. 그게 나중에 바람이 되는 것도 미리 암시하는 것이고.

김형호 기자 <여친소>의 에피소드 스타일도 저는 망자의 회상으로 봤거든요. 사실 감독님 영화들이 에피소드 스타일인데도 그게 이 영화에서는 되게 도드라지는데 오히려 이 영화에서 저는 그게 좋았어요. 어제 영화사 사람이랑 식사하다가 <여친소>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전지현 CF 같다고 하기에 서로 실랑이를 벌였어요. 저는 “이건 남자애들의 회상이다. 그러니까 에피소드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기억은 정말 전지현의 CF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극단적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오는 게 맞다” 그랬거든요.

곽재용 감독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대사만 빼고 경진이를 소개하는 얘기잖아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말 나오고 그 다음 것들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한테 자기 여자 친구를 소개하는 내용이고 항상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고 <엽기적인 그녀> 때 인터넷 소설에서 뚝뚝 떨어지는 이야기처럼 이것도 마찬가지 에피소드라 생각하거든요. 이번에는 조금 더 실험적이었다면 중간 감정을 없애자라고 생각했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 영화와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아는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었고 그런 믿음에서 과감히 중간 감정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잘 받아들인 사람은 잘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약간 실패했다고 봐요. 어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간에 약간 쉬었다 가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번에는 그 감정과 감정 사이를 없애버리고 싶었어요. 막판에 편집기사님과 편집하면서 중간 감정들을 들어내버리고 음악으로 배치하면서 전체가 뮤직 비디오 같은 느낌으로 가보자고 하고 감정을 바로 공격적으로 가져갔어요. <클래식> 때 한 기자가 유머나 슬픔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거 아니냐 그러더라고요. 난 점점 더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슬픈 감정과 기쁜 감정의 사이를 없애고 싶고 중간에 그걸 준비하는 과정 없이 가보고 싶고 그래서 이번에 득득득득 다 붙여봤는데.

김형호 기자 맞아요. 너무 아닌 척 한대니까요. 웃다가 울다가 정말로 안면 바꾸고 딱딱딱 가요.

곽재용 감독 약간 정신병적인 뭔가가 있는 것처럼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형호 기자 만화 좋아하세요?

곽재용 감독 네, 좋아해요.

김형호 기자 아다치 미치루 만화 좋아하세요? <러프>나 H2, 이런 만화.

곽재용 감독 흠, 모르겠는데요.

김형호 기자 나중에 꼭 보세요. 그 사람이 그리는 만화랑 어떤 면에서 비슷하거든요. 그 사람 만화에도 중간중간 간지들이 있어요. 두 번 보고 세 번 보면 더 웃기거나 슬픈 것들이 있거든요. 감독님 영화에도 사이사이에 더 울리는 장면이 있고 더 웃기는 장면이 있거든요. 일부러 숨겨놓은 것처럼.(웃음) 어쨌든 전 좋아할 거라고 예상하고 질문을 준비한 건데 모르신다고 하니 전혀 엉뚱한 질문이 되버렸네요.(웃음)

곽재용 감독 제목,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세요. 찾아봐야겠네. (제목 적고 나서) 저는 <이나중 탁구부>를 좋아해요. 크레딧 자막에 나오는 “감사합니다” 거기 제일 앞에 <이나중 탁구부> 작가 미노루 후루를 넣었어요. 항상 그 사람 대사를 하나 훔쳐오거나 뭔가 표정을 따오거나 하거든요. 저는 제가 가끔 <이나중 탁구부>의 마에노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김형호 기자 <이나중 탁구부>요? 어떤 부분을 좋아하세요? 저는 그 작가는 처음에는 되게 코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오는 <두더지> 같은 건 진짜 독하게 시니컬하다, 싶더라구요.

곽재용 감독 <그린 힐>만해도 덜한데 <두더지> 보니까 이 작가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나중 탁구부>의 소년 시절로 남아주었으면 했는데. 일본 가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못 만났어요. 일본에서 <이나중 탁구부>를 영화로 하자고 제의가 있는데 저는 <이나중 탁구부>보다는 <크레이지 군단> 같은 걸 영화화하고 싶거든요. <크레이지 군단>의 라스트 음악까지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웃음) 미노루 후루야는 <이나중 탁구부>의 소년 시절에 머물러서 <이나중 탁구부>는 끝없이 나오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두더지> 보니까 막 당혹스러운 거예요. 저는 나이먹지 말고 아직까지는 <이나중 탁구부> 속에서 놀자 하고 있어요. <이나중 탁구부>의 라스트가 굉장히 감동적인데 이나중 탁구부 애들이 처음 탁구부에 온 날이 맨 마지막에 끝나잖아요. 그때 서로가 서먹했을 때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끝나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찡하고.

김형호 기자 혹시 여자 선배 좋아하셨어요? 사춘기때.

곽재용 감독 (놀래며)사춘기때?

김형호 기자 감독님은 아는 누나를 굉장히 짝사랑했을 것 같은데요. 또래 친구도 아니고.

곽재용 감독 그런데 그건 어떻게 유추한 거예요?

김형호 기자 영화 보고 있으면 영화의 감정이 남자애가 누나 좋아하는 딱 그 감정이더라구요. 이건 또래를 좋아하거나 연하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거든요.

곽재용 감독 (웃음) 이번에 충격 고백을 할까요? 내가 다음 영화 시나리오 쓰려고 하는 게 사춘기 시절에 누나를 좋아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김형호 기자 맞죠? 강한 경험 있으시다니까.(웃음)

곽재용 감독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때는 사실 동생으로 바꾼 거예요. 우리 아버지하고 연관된 회사에서 근무하던 누나였는데 결혼 실패해서 우리 집에 와서 살고. 첫 장편 시나리오가 누나를 좋아하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진짜 느낌으로 안 거예요?

김형호 기자 이건 여자들은 절대 모를걸요? 그 감정을 따라가는 남자들은 딱 알죠. 이거는 동갑내기 좋아하는 그 감정이 아니에요. 연애했던 감정은 절대 아니고.

곽재용 감독 그렇죠. 조금 숭배에 가까운.

김형호 기자 <비 오는 날의 수채화>부터 <엽기적인 그녀>의 그 감정도 그렇고 여기까지 쭉 이어지는 게 그랬어요. 아마 그 시절에 혼자서 상상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들을 다 생각하셨을 걸요?

곽재용 감독 (웃음)맞아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왜 비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이번에는 비가 딱 한번 내리는데(웃음) 왜 비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김형호 기자 그 감정선 따라가니까 <여친소> 보면서 영화에 전지현이나 장혁이 보이는 게 아니라 감독이라는 또 다른 배우가 보이는 거예요. ‘이 감독이 시나리오 쓸 때 똑같은 음악 줄기차게 들어가며 울면서 줄줄이 썼을 것이야’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곽재용 감독 자세하게는 쓰지 마시고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했었다 정도로만.(웃음) 우리 와이프하고 친구들하고 <클래식> 보고나서 그랬대요. 혹시 너네 남편 저런 경험 있는 거 아니냐고.(웃음) 와이프도 우리 남편이 속에 슬픈 감정이 있는 사람이구나 했다더라구요. 평상시에 그런 게 별로 안 나타나니까.

김형호 기자 쌍둥이 에피소드 나오는데 그냥 영화만 따라 가다보면 되게 튀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받아들였냐면 이건 경진이라는 사람이 보이쉬한데 뭔가 슬픔이 있을 거야 하는 남자들의 상상을 구체화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어, 설명이 잘 안되네요.

곽재용 감독 아, 그래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맞아요. 자기가 들어갈 구석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냥 누구를 좋아할 때는 받아주면 되지만 전지현처럼 완벽해 보이는 여자일수록 들어갈 구석이 없잖아요? 자기가 채워줄 구석이 없잖아요. 그 채워줄 구석이라는 게 그런 아픔이죠. 남자들은 스무살 시절에 상상하는 게 내가 좋아했던 여자가 극단적으로 창녀가 되서 돌아와도 내가 받아주겠다는 상상을 하잖아요. 그게 바로 <기쁜 우리 젊은 날>이고. 아주 완벽한 여자가 나중에 불쌍하게 되서 왔을 때 받아주는 게 배창호 감독이 소년 시절에 가졌던 환상이 아닌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걸 영화로 현실화시킨 건데 아주 소년답다는 생각 때문에 전 좋아해요. 황신혜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아름다움도 다 사라지고 받아주는 남자가 소년 시절의 상상이거든요. 우리 어머니 모시고 간 영화가 지금까지 그 한 편이예요.


김형호 기자 개봉 직후에는 기자나 평론가들 리뷰 잘 안 읽으시죠? GQ 1월호에 하셨던 영화평론에 대한 인터뷰 보니까 그러실 것 같던데.

곽재용 감독 내가 보는 관점이 있는데 그 사람들 통해서 더 알게 있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고.(웃음) 소설이나 다른 영화나 만화 보는 거 좋아하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내하고 산에 갔다가 돌아오다가 와이프가 왜 그렇게 사람들이 쓰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한 때 평론가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고 글을 쓰면 그렇게 되더라, 라고 했어요. 그런 것들이 관점을 너무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게 아닌가 하기도 하는데 또 그렇다고 해서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김형호 기자 제 리뷰는 왜 읽으셨어요?(웃음)

곽재용 감독 (웃음)와이프가 이런 게 있다고 보라고 하더라구요. 요즘 지쳐있으니까 좋은 글 있다고.(웃음) 읽고나서 내가 조감독한테 그랬지, 이 글 모든 사이트에 다 뿌려.(웃음)

김형호 기자 (웃음)저는 그 리뷰 쓰고 나서 재미있었어요. 쓸 때도 감정에 북받쳐서 즐겁게 썼고 올리고 나서 네티즌 반응도 재미있었고. <클래식> 때도 그랬고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 특히나 동지들이 막 몰려들어요. 반대로 아무나 요즘은 기자되나보다고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많았고.

곽재용 감독 논란이 심하다 보니까 적과 동지가 분명하잖아요. 서로 외로워요. 적은 적대로 외롭고 동지는 동지대로 외로워서 뭉치게 되는데. <클래식> 때 매니아들이 생기고 지금까지 글 계속 올리고 그래요. <클래식>은 상업적으로 많이 성공하지 못했고 좋아하니까 뭉치게 되었는데 제 영화는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슬펐어’ 라는 감정을 혼자 갖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느꼈던 감정이 창피하기도 하고 슬픈 감정에 젖어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는 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좀 창피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김형호 기자 그쵸. 제가 영화 재미있게 본 다른 사람들이랑 수다 떨면서 트래킹샷은 바람이라고 설명해주면 서로 소름 쫘악 하면서 막 전율하고 감동하고.(웃음) 그런데 정작 애인이나 식구들한테는 또 그 설명을 하는 게 좀 그렇고.(웃음) 그런데 제 생각처럼 정말 바람으로 표현하신 거 맞나요? 그거 꼭 확인하고 오라던데.

곽재용 감독 (웃음)예, 맞아요. 혁이가 바람이 되는 거니까 암시로 그렇게 사용한 거예요. 그런 것처럼 사실 재미있게 보려면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감정을 너무 중요시하다 보니까 다른 점들이 손해를 보는 게 있는데 <엽기적인 그녀> 때도 그랬고 <클래식> 때도 그랬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영화를 보는 시간이 굉장히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또 영화 속에 다른 영화를 숨겨놓는 걸 좋아하고. 이번에는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의 여러 장면들을 집어넣었는데 이 영화로서 완결성이 있기 보다는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이 있어서 그걸로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김형호 기자 방안에서 그 장면을 49제 에피소드로 잡으신 건가요?

곽재용 감독 원래는 49일이 그 날이 아니었어요. 뒷부분을 들어내면서 이 날이 49일이 된 거예요. 원래는 49일날 혁이가 찾아와서 유령인 상태로 만나는 장면이 있고 그때 지현이가 미안하다고 하고. 제일 가슴 아픈 게 이 영화는 가장 후회하지 않는 영화가 될 줄 알았는데 가장 후회하는 영화가 되었더라고요. 그 장면을 들어내게 되고 바람개비도 들어냈는데,

김형호 기자 아, 그 장면 들어내면서 앞에서 전지현이 미안해라는 말 안했던 게 다 날아가 버렸죠? 미안해라는 말을 안했던 의미가 없어져버렸어요. “미안해”라는 대사가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런 소통이 안 되니까.

곽재용 감독 그게 굉장히 감동적인 장면이었죠. 그런데 관객들하고 몇 번 같이 보다 보니까 화가 나는 게, 내 잘못이지만, 영화의 드라마를 읽기보다도 CG 때문에 감정이 많이 흐트러지더라고요. 그래서 욕도 많이 하고. CG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나는 원래 오리지널 네가필름을 굉장히 아끼는데 일본까지 가서 오리지널 네가필름을 듀프 떠서 듀프로 계속 갈아끼는 장면을 CG로 다시 하고 다시 하고. 시사회 한건 그 전날 나온 프린트예요. 하늘 배경이 원래 하늘이 아니었고 꽃산으로 해서 다른 배경이었는데, 후, 그게 CG를 너무 믿었죠. <사랑과 영혼>에는 마지막에 하늘의 빛이 열려 가지고 가는 거 딱 하나인데 그게 되게 강렬해서 그런지 이 영화 전체를 <사랑과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쉽죠.

처음에 정대표하고 이 얘기를 했을 때 <사랑과 영혼> 같은 얘기였기 때문에 <사랑과 영혼>을 피해가는 것을 생각 많이 했었죠. 내가 가지고 있는 복안은 마지막에 차태현이 나오는 장면이었어요. <사랑과 영혼>은 사랑하는 여자를 남겨놓고 떠나는데 그러면 뭐하냐 이거야, 이 여자는 어떻게 살라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짐을 지우기보다는 이 여자에게 뭔가 새로운 남자를 소개시켜주든 이 여자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냥 떠나기보다는 다른 남자를 소개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죠. <사랑과 영혼>과 비슷한 스토리지만 난 그것이 하나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안보고 차태현이라고만 보니까.

김형호 기자 엔딩장면 하나라고 하셨지만 저는 “미안해”라는 말이 <사랑과 영혼>에서 “디토 ditto” 같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어요.

곽재용 감독 <사랑과 영혼>을 콘티하면서도 봤는데 솔직히 그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디토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런 말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생각하면서도 “미안해”하고 연관짓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보다는 처음에 원안을 들었을 때는 “따라죽을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따라죽으려고 노력하는 거, 그래서 지현이가 따라죽으려고 하다보니까 좀더 용감해 보이는 게 지현이가 후반에 보여주는 액션들인 거죠.

김형호 기자 명우가 죽는 장면, 그리고 이어지면서 경진이 머리에 총을 대는 장면에서는 정말 펑펑 울었는데.

곽재용 감독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장혁이 느닷없이 죽어요. 지현이가 끌어안고 우는 순간에 컷팅이 되고 다시 반복이 되요. 지현이가 쏘지 않았다는 걸 다시 보여주는데. 그걸 편집하면서 하나로 합쳐버렸어요. 신파라는 얘기를 많이 들을까봐 고심을 많이 했었는데, 사람이 죽었는데 그 정도도 슬퍼하지 않으면 안되지 싶더라구요.(웃음) 그리고 혁이가 죽는 걸 관객들이 알고 올 거다 그런 생각에서 처음에 벽에서, 두 번째 강에서 혁이를 죽음에 가깝게 만들죠. 그리고 이때쯤 죽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말이에요.

김형호 기자 김수로, 압권이던데요.(웃음)

곽재용 감독 (웃음) 원래 다른 시나리오에 넣었던 장면인데 여기 가져온 거예요.

김형호 기자 이번에는 맘먹고 액션 장면을 넣으셨던데요.

곽재용 감독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후반부에 가서 바람을 많이 믿은 것도 있지만 총알 빗발치는데 뛰어다닐 수 있는 게 바람 때문이에요. 처음에 뛰어내릴 때 명우의 손으로 구해주고 나서 바람의 역할을 지현이가 알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점점 더 강한 역할을 하게 되죠. 기왕 말 나왔으니까. 총 팡팡 쏠 때 머리카락 날리는 장면도 CF랑 똑같다고 그러던데. 사실 시나리오 쓸 때는 CF랑 똑같은지 몰랐어요. 정말 저는 TV를 안 봐서 몰랐어요. 나중에 시나리오 검토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러기에 시나리오에서는 뺏었어요. 콘티에서도 뺏고. 찍으면서 다시 집어넣었어요.

김형호 기자 그 장면이 없으면 액션 장면이 의미가 없어요.

곽재용 감독 예. 바람의 역할 때문에 전지현이 더 강해지고, 차 지나가면서 머리카락 날리고, 바람의 역할을 계속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순간의 감정이 강하다 보니까 의미를 읽기 보다는 그런 바람의 역할이 잘 읽혀지지 않은 것 같아요.

김형호 기자 진짜로 내내 말씀하셨던 액션 영화는 언제 기획하실 거예요?

곽재용 감독 다음 작품에 하려고 했는데, 모르겠네요.(웃음)

김형호 기자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비 오는 날의 수채화>에 대한 20자평이 있는데, <로드쇼>에서 봤던 것 같아요, <비 오는 날의 수채화>는 멜로, 로맨스 그리고 홍콩 느와르이다 그랬거든요.

곽재용 감독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때부터 어떻게 보면 이번 영화까지 고집스럽게 그걸 밀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건 평론가나 누구나 그 액션이 나왔던 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봤거든요. 멜로드라마에 왜 액션이 나오느냐 하고. 신성일씨까지 그랬는데. <엽기적인 그녀>를 본 사람들이 많이 이해하고 <클래식> 때도 월남전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하나의 장르에 충실하게 찍는다 라고 생각했어요. 멋있게 어떤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관객들이 좀 이해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고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이죠. 지금까지 여러 가지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욕먹었던 걸 다시 반복하면서 “얘는 원래 이래”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클래식> 월남전 굉장히 고생하면서 찍은 장면인데. 그 순간에는 전쟁 영화를 찍는 감독이고 또 액션 장면 찍을 때는 액션영화를 찍는 감독이고, 어떻게 보면 성질이 급해서이기도 한데 영화 속에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고 관객들에게 억지로라도 이해시키고 싶었어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환타지에 대해서는 거부를 하더라고요. 빌콩씨를 중국에서 만났는데 홍콩, 중국에서는 “고스트 노 프라블럼, 떨어지는 거 노 프라블럼” 하더라구요.

김형호 기자 엔딩크레딧 보니까 이번에는 헌팅 장소가 다른 작품들보다 적던데.

곽재용 감독 <클래식> 때는 한 씬에 여러 번 나눠서 찍을 정도로 그때는 많이 돌아다니면서 찍었는데 이번 <여친소> 때는 시퀀스별로 몰려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김형호 기자 이번에 촬영장소 헌팅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어딘지?

곽재용 감독 이번에는 바위가 떨어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헌팅하다가 그 장소를 처음 봤을 때는 와~ 이런 데가 다 있다니 했어요. 도로가 있는데 도로가 꺾어지는 길이예요. 그런데 새 도로가 이렇게 나서 차가 안 다녀요. 옆에는 절벽이고. 그래서 우리 영화 찍으라는 곳이구나, 이건 하늘이 돕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돌을 굴려보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어드벤쳐 영화나 재난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구나, 찍으면서 여러 가지 아직 안되는구나 생각을 했어요. 합성 같은 건 괜찮은데 3D 가지고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더라구요.

김형호 기자 장혁이 타고나온 차, <가을여행>스럽게 일부러 고르신 것 맞나요? 딱 보니까 생각이 나던데요.

곽재용 감독 그건 그럴 수밖에 없죠. 그거 찍으면서 <가을여행> 얘기 많이 했으니까. <가을여행>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촬영 중간에 <가을여행>을 다시 한번 보면서 다시는 어떤 영화도 <가을여행>처럼 찍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을여행>은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원대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이겨내지 못해서 후반부가 엉터리로 마무리 됐거든요.

이번에 재미있었던 건 항공 촬영할 때예요. 빨리 찍기 위해서 차를 똑같이 3대를 가지고 대관령에 여기, 여기, 세 군데에 대역을 태우고 여기는 전지현하고 장혁을 태우고 헬기는 한대 떠서 달려가는 거 찍고, 돌아서서 찍고, 그렇게 한방에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헬기가 7시간 떴더라고요. 끝나고 나서 “감독 새끼 지독한 새끼”라고 헬기 조종사가 그러더라구요. 촬영기사랑 카메라 조작하는 사람 전부 토하면서 찍었어요. 저야 뭐 쌍안경 가지고 이거해라 저거해라 했으니 편했죠.(웃음)

김형호 기자 감독님 영화들은 음악이 항상 좋아요. 이번 음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MC 스나이퍼의 BK.LOVE를 한번 더 사용하면서 대사를 랩처럼 깔았던 게 너무 좋았어요. 그 장면에서는 진짜 와 닿던데요. 그건 어떤 분이 아이디어 내신 거예요? 음악하신 분이 하신 거예요?

곽재용 감독 제가 한 건데 BK.LOVE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MR을 달라고 해서 MR만 들었어요. 그런데 두 번 넣을 생각으로 MR만 듣다보니까 뭔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현이하고 혁이가 하는 대사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녹음실에서 대사를 가져다가 편집해서 넣었죠. 떠올라서 해봤는데 좋더라구요. 지현이가 미국에서 왔을 때도 녹음실에서 들려줬더니 놀랍다고 그러고 혁이도 좋아하고 나중엔 다들 BK.LOVE 팬들이 되가지고.(웃음)

김형호 기자 영화 속 아이템들은 다 어떻게 하셨어요? 작은 아이템들이 좋았어요. 예를 들면 책갈피라든지.

곽재용 감독 제일 안타까운 게 바람개비 들어내면서 책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저절로 그림들이 막 움직이는 장면도 같이 덜어내야 했던 거에요. 그 장면들은 DVD에서나 볼 수 있죠.

김형호 기자 하얀 건반, 여기서 다시 한번 뻑 갔어요.

곽재용 감독 하얀 건반 촬영할 때 사실 하얀 건반을 칠해놓으라고 해놓고 그걸 제가 잊어버렸어요. 나중에 지현이한테 연출하려고 “니가 이 건반을 치잖아. 그럼 하얀 건반...” 이러는데 하얀 건반이 띡 나오니까 나도 뭔가 묘한 감정이 생기더라고요.(웃음) 그런 것들은 내가 배려하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실제로 현실에서는 잘 배려 못해요. 와이프나 사람들한테. 지현이한테도 잘 못하고. 그런데 혁이는 그런 거 좀 해요.(웃음)

김형호 기자 제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은 제목이거든요. 영화상에서는 다른 남자한테 소개시켜주고 떠나는 상황인데 저는 또 다른 뉘앙스로 봤어요. 정말 정말 좋아하던 여자를 짝사랑하다가 드디어 사귀게 됐다는 상황까지 가서 혼자서 벅차면서 상상하는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그렇게 박찬 감정을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곽재용 감독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로 확정하면서 방금 말씀하신 그 감정을 저도 느꼈어요. 처음 제목은 <바람개비>라는 가제를 가지고 시작했다가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이 나왔을 때 이 제목이 정확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스럽기도 하고 장난스럽기도 하고 가까이에 있다 보니까 제일 잘 알게 된 여자친구에 대한 자랑, 감독인 제 개인적으로 보면 내가 제일 가까이에 잘 알고 있는 배우 전지현에 대한 자랑일 수도 있고.(웃음)

김형호 기자 마지막에 차태현을 만날 때 눈빛은 정말 죽음이거든요. 와, 그 느낌이란.

곽재용 감독 그쵸?(웃음) 그래서 제가 그 장면 촬영을 끝내고 나서 “나를 그렇게 한번만 봐줘라” 했더니 지현이가 쳐다도 안 보고 그냥 가버리더라구요.(웃음)

김형호 기자 인터뷰,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녹음된 것 그대로 올릴게요.

곽재용 감독 저도 즐거웠습니다. <여친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언제 술이나 한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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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은 당연히 맥스무비고, 트플에 뜬걸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그냥 웃으시면서 보세요. 전 처음에 보고 열받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냥 스타와 빠돌이의 만남의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신다 생각하심 될거예요.^^ 정신건강에 피해를 입으신 분께는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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