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대선 때 대선주자들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논쟁들을 보다가 적은 것 입니다.
문법적으로 보았을 때 보수와 진보는 반대 개념이 아니다. 進步란, 말 그대로
앞으로 계속 움직이는 것, 사물의 내용이나 정도가 차츰 나아지거나 나아져가는 일을
가리키며 진보와 반대되는 개념은 退步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둘이 모순관계가
아닌 반대관계라는 것이다. 모순관계라면 둘 중 하나만 가능하지만 반대관계라면
제3의 개념이 존재할 수 있다. 희다와 희지않다는 모순개념이지만 희다와 검다는
반대개념이다. 따라서 진보와 퇴보 사이에는 다른 개념들이 들어올 수 있으며 현실
적인 이념스펙트럼 중 하나가 保守다.
보수란 오랜 방법, 관습이나 제도, 체제 등을 소중히 여겨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보수의 반대개념은 革新이다. 우리는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퇴보
적이다 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퇴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이며 정치이념적인
의미로 쓰이기에는 너무 끔.찍.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원어인 conserve는 라틴어
conservare (con- 함께 + servare 보존하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보존이나 보호에
가까운 개념이라 하겠다. '사회'에는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으며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보수성은 필요하다. 살인과 거짓말은 사회의
기본적인 유지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적 중죄이므로 법과 윤리의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사회' 자체가 바뀌게 된다면 어떨까.
진보를 가리키는 영문인 progress는 라틴어 progressus (pro- 앞쪽으로 + gradi 걷다 +
-sus 과거 분사 어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현재와
과거에 대비되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경향을 말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반발심은 기존에
대한 의심과 반성에서 출발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의심 자체가 만족적이고 효율적인
전진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끊임없는 도전만이 그나마 전진을 가능케 해준 원동
력인 것을 역사가 말하고 있을 뿐이다.
positioning
이러한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이들이 원래 그런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현실 정치의 이념으로 끌어낼 때 원래의 뜻과는 괴리가 생기고 이를 감지하는
이들에게 혼란을 주게된다. 딱 집어 말해보자. 노무현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이회창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또는 노무현이 이회창보다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 나는 이런 질문
에 대답을 할수 없다.
말한 수 있는 것은 노무현이 이회창보다 어떤 면에서(개인적인 부분이든 정치적인
부분이든)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다는 정도다. 진보와
보수는 어떤 문제에 있어서 어떤 경향을 미리 말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한일간의
수중터널을 만들자는 사안에 대해 만들자는 사람들이 진보이고 만들지 말자는 사람이
보수라고 할 수 있는가? 원개념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정치적인 개념차원에서는
어느쪽이라 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 유지는 진보와 보수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럼 도감청시행법의 신설은 진보이고 반대는 보수인가. 앞서 말한 원개념과
정치개념의 괴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한 괴리와 혼란을 무릅쓰고 굳이 이런 개념을 정치개념적으로 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편가르기일 뿐이다. 물론 편을 가르는 것이 경쟁에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효율보다 사람들의 혼란과 환멸이 크다면 전체적인 관점에서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진보와 보수, 좌와 우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가리키는 것이
변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적인 입장은 그보다 느리게 변하거나 계속 유지된다.
어제까지 진보였던 것이 오늘날 보수라 칭해진다면 그 역시 혼란스러울 것이다. 만일
내일 갑자기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다면 자유민주주의자나 자본주의자는 하루아침에
보수에서 진보로, 우에서 좌로 바뀌게 된다. 넌센스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개념이 생겨난 것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언론(신문이나 방송뿐 아닌 '힘'을 가진 모든 담론생산자를 포함한)의 신(?)조어에
우리는 속아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나는 오늘의 (넓은 의미의) 한국정치가 '진보와
'보수'로 나뉜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너무 단순화시킬 수
있으며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만든다. 단순해지는 세상을 막으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부터 고쳐야 한다. 논리적 형식은 언어구조에 규정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문제가 남았다. 그렇다면 '진보','보수'라는 구분법의 대안은 무엇
인가. 진보성이나 진보적이라는 단어는 추세적인 성향을 나타낼 수 있다. 또한 개별
사안과 정책에 이런 평가를 붙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상대를
구분지은 후 그를 거기에 함부로 옮아매지 말자는 거다. 잘못 묶인 매듭은 보기 흉하고
제대로 묶이지도 않고 풀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