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자기 관리 잘하고 생각이 좀 많고 예민해서 약간 잘 모르겠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유쾌한 친구예요.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허무하다, 무기력하다, 힘이 없다. 이런 표시를 자주 비치며 학교도 잘 안나가고 친구들도 잘 안만나고 자취하는 집에 틀어박혀서 잘 안나오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아예 학교도 휴학을 하고 자신의 자취방에 콕 박혀서 만화책 읽고 그림 끄적이고 비디오 빌려보고.. 1월부터 지금 6개월째 이러고 있는 실정입니다.
내 친구 룸메이트에게 물어보니 밥도 하기 귀찮아서 늘 시켜먹고 사다 먹고 군것질로 끼니 때우고 잠도 불규칙적으로 자고 정말 말 그대로 말초신경을 즐겁게 하는 일들만 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안되겠어서 바쁜 중에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 이것저것 이벤트를 마련해도 그렇게 즐거워하는 기색도 아니고 억지로라도 먹일려고 집에서 몸에 좋은 것들 사다가 요리를 만들어 주고 해도 그것도 한두번이지 저도 슬슬 지쳐갑니다.
평소에 취미가 독서라고 하는 것이 어쩐지 부자연스럽다며 책을 읽는 건 당연한 습관같은 거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거의 책도 읽지 않고 날씬하던 그녀가 그 사이에 13킬로가 불어버렷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고 지금이 그녀에게 유독 뭔가 힘든 시기라는 것을 알기에 이 고비만을 잘 넘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거의 포기하기 시작했을 때쯤 그저께 억지로 끌고 나와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녀의 가방 안에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책이 들어있는 것을 보앗습니다. 6개월 만에 그녀가 책을 읽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물어보니 울면서 말하더군요. 이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운동도 하고, 책도 다시 읽고, 규칙적으로 살고 그러려고 하는데 이틀 하다가 포기하게 되고 또 있다가 포기하게 되고 해서 이젠 자기 혐오감에 더 우울해서 인생이 끝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고요.
그래도 전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옆에서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또 하나가 어긋나 버리면 금새 주저앉게 되는 모양입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
혹시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같은 뭔가 읽고 나면 힘이 솟고 아직 늦지 않았고, 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갖게 될 만한 책 또 뭐 없을 까요? 제가 그런 자기 관리서 랄지, 힘든 와중에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 스토리랄지, 희망적인 인생 메세지가 들어있는 소설이랄지, 이런 것에 대해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