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VS문학 (스크롤 압박-_-;)

  • 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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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신춘문예 머릿말

한국 소설가 협회장 정연희

- 책을 엮으며-

인간이 1억년 걸려야 계산할 수 있는 숫자를 단 1초에 해치울 수 있는 디지털 시대,
그리고 온갖 과학의 속도가 편리한 삶을 제공하고 있진만 인간은 그 편리 속에서 보다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컴퓨터, 인터넷 범람으로 언어가 파괴되어 가고, 문장도 망가져
가고, 인간관계 속에서 지켜오던 기본적인 예의마저 실종되어 가고 있는 시대, 통제
불가능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돈된 사고력을 지키고 창의력을 키워갈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인간의 존재 조건을 풍요와 편리에 두는 한 문학이 살아남을 길이란 불투명하다.
영국의 마가렛 드레블은 "...근래의 작가들... 그저 작품을 쓰고 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개인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나의 임무를 계속해 나아갈 뿐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어떤 아이덴티티를 대변하고 있는가, 사회의 모든 것이 시장에 아부해야 하는,
그래야만 생존이 가능한 시대. 오락용 패션 문학으로 전락해 가는 문학, 문학은 굴종적인
패션주의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개탄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문학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학지에서 배출한 작가뿐 아니라,
정월이면 각 신문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절대로 지치지 않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숨어있는 작가들 또한 얼마인가.

예술의 생산과 유통까지 깊숙하게 침투한 상업주의 그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미디어 영역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소설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종국에는 소설이 남을 것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 작가들은, 이 종말론적인 세대에 희망을
던져주는 존재들일 것이다.

2004년에 알을 깨고 나올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엮으서 뿌듯한 기쁨을 누린다.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 혹은 필연에 대한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소설의 세계로 묵묵하게 걸어들어가는 새로운
작가들에게, 극한의 외로움과 갈등과 극렬하나 정직한 고통이 함께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 모든 것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 영원에 대한 신비, 진정한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거룩한
기능을 얻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   *   *   *   *   *   *   *   *   *   *




출처는 대산문화 2004 여름호에 실렸던 작가 박민규의 조까라 마이싱들에게


조까라, 마이싱이다!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작가)


1. 도대체 마이싱이란

학창시절 학교를 주름잡던 1년 터울의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의 별명은 <마빈 헤글러>였다.
실제로 머리를 빡빡 깎은 그에겐 언제나 화려한 소문이 뒤따랐었다. 즉 3대 1이라든지, 칼을 든
2명이 포함된 4대 1이라든지. 그러나 그 소문에 비해 펀치는 한결 부드러운 것이어서(맞아봐서 안다)
나는 그가 마빈 헤글러 라기 보다는, <마빡 헤글러>일 뿐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루는,
그래서 넌지시, 담배를 피고있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형, 지난 번에,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선배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네왔다. 조까라, 마이싱이다.
북북, 꽁초를 담벼락에 부비며,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우선 말의 뜻을 짐작조차 못하겠거니와,
묘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 그가 과연 <마빈>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어쨌거나,
그런데 도대체 마이싱이란? 도대체 마이싱이, 뭐지? 나는 궁금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나는 작가가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그냥 어느 순간,
무작정 글이 쓰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나에겐 그것이 전부이다. 무작정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도 보름 전의 일이었다. 어디신가요? <대산문화>입니다. 요는, 젊은 작가의 변(辨)을, 듣고싶다는
얘기였다. 평소, 이를테면 학술재단 같은 곳과 교류를 하면 작가로선 끝장이란 소신을 갖고있었는데,
예, 예 - 잘도 대답을 하고, 쓰겠노라 동의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 순간 심하게 이 글을
쓰고 싶었고, 바로 그 순간 - 아무런 까닭도 없이 '조까라 마이싱'의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래서다.


2. 너가 당룡이냐

우선 나는, <대산문화>로부터 네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해서, 짧게, 그것부터 답하고 보는 게
도리란 생각이다. 심사, 숙고 해보았지만, 4가지 질문 모두가 도무지 긴 대답을 할 수 없는 것들
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내 무식(無識)의 소산이거나, 정답이거나. 정답은 늘, 짧고 간략한
것이기 마련이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해왔다. ① 자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혹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답.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를
쓰고(用)있다. 그래서다. ② 기존의 소설과 자신의 소설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 답. 마치 인류와
자신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다. 나(내가 쓴 소설)는 유전자의 리바이벌에
불과할 따름이다. 흘러, 가자. 흘러가서, 전달, 하자. ③ 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 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 기획특집
참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

써놓고 보니, 마치 4:1의 싸움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나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넨 건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대산의
질문들을, 나는 그런 분위기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70년대의, 이소룡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너가 당룡이냐? 그렇다. 내가, 당룡이다.

3. 풋웍 좀 해보자, 개새x야

이른바 <등단>을 한지, 이제 꼭 1년이 지났다. 소설이 무언지는 애당초 몰랐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이 나란 인간이다. 그냥 쓰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 오로지 그럴,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꼴린 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글을 쓰는 것인가? 그 이유를 나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돌대가리. 이, 마빡만 헤글러!

이유는 짜증이다. 짜증, 이라기 보다는 하소연이고, 하소연, 이기 보다는 외로움, 같은 것이다.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지면이, 도대체 없었다. 그래서다. 그래서 이것은 젊은 작가의 변(辨)일수도
있고(참, 어지간히도 젊다!), 변(便)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이제 겨우 2권의 책을 냈을 뿐인데,
그리고 구만리의 앞길이 남아 있는데. 바로, 그래서다. 이 구만리의 앞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밟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선 길을 가야 할 이유가, 또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다. 문단인지 평단인지, 아니 세상이여! 우선 말하겠는데 -
제발 좀 문학의 위기, 소설의 위기라고 떠들지 마라. 호들갑 좀, 떨지 말아라. 나는 어디 핵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쉰 소리 하려면 집에서 쉬어라, 나오지 마라. 그것이 문학을, 또 우리를 도와주는
길이다. 단언컨대, 지금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문학의 위기를 떠드는 놈들의, 위기일
따름이다. 아이고 귀야. 귀에 슨 녹슨 못을 뽑아내며, 나는 중얼거린다. 너무 그러니까...
니들이 마치 <문학> 같잖아? 니들이... <문학>이냐?

두번째, 궁상 좀 떨지마라. 즉 그것이 이곳의 풍경인데, 마치 위기론에 이은 예비군훈련이나,
민방위 훈련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작가는 잡문으로 뺑이를 쳐야하고, 또 그걸 당연한 걸로
생각한다(생각해야 한다). 안 팔려요. 안 팔리면 어쩌죠? 몇 푼의 계약금에도 손을 내밀기가
민망하고, 생활은 점점 좀스러워진다. 요는, 위기를 떠드는 놈들이 이땅의 작가들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는 것이다. 좀스럽고 비참하게 만들며, 왜소하고 말랑말랑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몇 푼의 선인세와 생활비에 손을 떨고 연연해야 하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글이라면, 우선 나부터도 읽고 싶지가 않다.

세번째, 근친상간 그만하자. 내가 볼 때 이 땅의 소설이 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각설하고
찢어지자. 그 동안 즐거웠다. 어찌나 문단속을 잘 했던지, 이곳에는 여지가 없다. SF도 추리도
공포소설도, 심지어 제대로 된 하이틴 로맨스도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아아 쥴리엣, 우리
아버지들은 언제 죽을까? 오오 로미오, 오빠가 자꾸 나를 건드려요. 헤이 유! 근친 상간이
바보를 만든다는 거, 꽤나 알려진 의학상식 아닌가? 쪽 팔려, 박수 좀 치지마.
어이, 저리 가! 접붙이지 마.

네번째, 거 참 말많네! 거 참, 말이 많다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이다. 말이 많은 건, 어쨌거나
말이 많은 것이다. 그뿐이다. 지금껏 나는 네개의 질문을 받고, 네개의 답변을 하고, 네개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는 무엇인가? 나는 당룡이고, 그냥 날 내버려두란 얘기다.
어떤 면(面)에서의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네가 당룡이냐? 끄덕끄덕. 삼가 한수를 배우겠소.
오호라 학익(鶴翼)의 품새를, 그렇다면 용호(龍虎)의 권세로! 쿵후라는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좋은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다. 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또 소설이란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과거의 문학을
동경해 작가가 된 인간이다. 눈물이 날만큼, 그때가 그립다. 누군들, 품새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싶지 않으랴.

마치 문학처럼, 언제부턴가 복싱도 시시해진지 오래이다. 때문에 나는 이종격투기를 관람한다.
얼마 전 열린 이종격투기 대회에서의 일이다. 종이 울리자마자, KO로 승부가 난 경기가 있었다.
복서 출신의 패자는 습관처럼 풋웍을 밟아보려다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선공을 하지말란 법은
없었지만, 뭐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즉 삼가 한수를 배우겠, 에서의 <퍼벅>의 느낌. 정신을 차린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런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풋웍 좀 해보자, 개새x야. 수건을 던지지마라
안젤로 던디*여. 나 역시 풋웍 한 번 밟아보는게 꿈이다.

* 안젤로 던디 : 수많은 세계 챔피언들을 길러낸 저명한 복싱 트레이너


4. 조까라 마이싱!

세상은 나의 문파와 나의 품새 따위에 관심을 접은지 오래이다. 작가로서, 이제 나는 실제로
충격을 주고, 파괴하고, 저것을 쓰러트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 이 싸움은 더욱 실질적이고
(비록 폼은 없어도), 냉정한 것이 되었다. 약속대련과 근친상간을 벌일 여유가, 나에겐 없다.
나는 실제로 강해야만 하고, 또 강해지고 싶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의 룰은 이 땅의 문학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어디 농업만의 문제이겠는가? 이제 이 땅의 문학은 제조업인가 서비스업인가? 텍스트와 번역의
댐이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줄 것인가? 수입인가 내수인가? 질문은 끝이 없고, 간략한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간략하게 - 나는 정말이지, 강해야 한다.

그래도 이 땅에 <작가>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 땅에 <소설>이 있었고, 나는 그 아름다웠던
싸움들을 가슴 속 깊이 저장하고 있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고, 다름아닌 그들의
소설이다. 경건하게, 나도 싸워나갈 것이다. 그외의 문제라면, 몰라, 조까라 마이싱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느낌이지만, 어떤 면(面)에서의 세상은 또 분명히 좋아졌다.
지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아폴로를 달에 착륙시켰던 컴퓨터보다 정확히 3배가 더, 뛰어난 것이다.
내 책상 밑으론 인터넷이 들어와 있고, 나는 더 이상 도서관이나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환경에서 당신을 화성에라도 보내줄만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조까라 마이싱이다. 큐빅 퍼즐을 맞출 때의 요령으로, 어떻게든 그 좋은 면들을 나는
맞춰나가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사이 시인 구상이 이 별을 떠났다. 구상 선생님 편히 잠드세요.
당신의 싸움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 대산문화 200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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