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에 미국 입국하는데 심사대에서 따분해 보이는 얼굴을 한 이민국 직원이 방문 목적 따위를 웅얼웅얼 묻더니 '손가락을 여기다 대시오'라고 지시하더군요. 이게 바로 그 지문과 홍채 채취군..하는 생각이 들었죠. 불쾌하거나 말거나, 외국인이 입국하고 싶다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 되었으니 어쩌겠습니까마는 둘째 손가락을 대라고 말로 똑바로 해주어도 되는데 '어느 손가락?'하고 다시 묻게 만들더라구요. 말하기도 귀찮단 얼굴로 둘째 손가락을 펴보이길래 심사대 위에 있는 작은 인식기계에 손을 댔지요.
시키는 대로 하고 나자 '다음 손가락' 하는 거에요. 그러니 제가 어쩌겠습니까? 가운데 손가락을 펴보이며 '이거?' 할 수 밖에요. 뭐 속 마음도 손가락 제스처와 별로 멀진 않았습니다만, 실제로 의도한 게 아니었기때문에 저는 웃음이 나더라구요.
이 인간은 근데 기분이 나빴던 모양입니다. 인상을 쓰더니 다른 손을 들면서 '아니, 다른 손'하더군요. 그래서 웃으면서 '어머, 미안하다' 했더니 '괜찮다'고 여전히 인상 구기면서 얘기하더군요. 뭐 비영어권 사람들 상대로 하루종일 같은 질문을 해대기가 지루하기도 하겠지만, 입 뒀다 뭐하나..정확하게 말을 했어야 가운데 손가락을 안 받았을텐데.
그나저나 저들이 제 지문과 홍채 기록을 갖고 있다는게 약간 찝찝하기도 하네요. 누군가가 악용한다면? 테리 길리엄의 악몽 '브라질'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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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어떤 영국 여자가(백인이었죠) 미국 플로리다로 놀러갔다가 입국 심사대에서 '배낭에 뭐 들었느냐'고 물어보자 농담으로 '폭탄'이라고 했다가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스무 살 쯤 된 사람이었는데 유치장에서 며칠 고생하다 보석으로 풀려나와서 기자들한테 '멍청한 짓을 해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풀려났어도 재판은 받아야 한다던데요...농담엔 때와 장소가 있어야 하겠고, 가뜩이나 히스테리컬한 미국 공항에서 그런 소릴 했으니 멍청한 것도 사실이지만, 뒤져서 안 나왔으면 몇 시간 신원조회해 보고 보내주어도 될 일 같은데 아무래도 괘씸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영국식 농담에 대한 과민반응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이 얘길 좀 보수적인 미국 사람들한테 했더니 의견이 다르더군요. 왜 그따위 소릴 하냐고 버럭 화를 내면서 재판 받아도 싸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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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따라 보스턴 근처의 작은 도시들을 구경했었는데요, 참치가 많이 들어온다는 글로스터란 비린내 나는 어항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퍼펙트 스톰'의 무대가 된 곳이죠. 실제로 출항하는 장면 등을 여기서 촬영했다던, 그때 조지 클루니 한 번 보겠다고 사람들이 꽤나 많이 구경 나왔었답니다.
뉴잉글랜드 억양도 꽤나 독특하더군요. 시골로 갈 수록 강해지고요. 사람들도 꽤나 억세고 소박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인상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뉴잉글랜드의 지명이 재밌는 게, 저한테는 이제 익숙한 영국 지명들이 영국의 원래 지리적 위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다는 겁니다. 글로스터와 입스위치와 에섹스와 케임브리지가 조로록 붙어있으니까요. 그야말로 '뉴'잉글랜드더군요. 한국 사람들이 한 200년 전 쯤 남의 땅에 가서 턱 '신세계'라고 지네 맘대로 개성 옆에 울산 옆에 전주라고 이름 붙인 것 같잖아요.
아무튼 바닷가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클램 차우더와 바다가재 요리는 잔뜩 먹게 되더군요. 그중에 보스턴 차이나 타운에서 먹은 생강과 파를 넣은 가재요리가 젤 맛있어요...영국에 있다 가니까 요즘 환율 탓도 있지만 미국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물가가 싸더라구요. 특히나 음식이나 공산품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