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김근태 씨의 웃기는 자존심
아랫글과 마찬가지로 웹진 언니네 www.unninet.co.kr에서
퍼온 글입니다.
필자 역시 '나는 동면중'님으로 동일합니다.
저에게는 너무도 공감가는 글이라 한 줄 덧붙일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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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씨가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의 연설에 열받아 "무례한 하버드 총장은 사과하라"고 공개성토 했다는데...자신의 웹사이트에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김씨가 분노하는 이유와 그가 주장하는 "민족적 자존심"은, 뭐 새로울 것도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천박하고 편협한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인식론과 가치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문제가 된 서머스의 연설 부분은 김씨의 직역에 따르면, "1970년대 서울엔 미성년 창녀들(child prostitutes)이 100만에 달했다. 오늘날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경제성장이 가져다 준 굉장한 기회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전혀 타당성이 없는 창녀수가 아닌 GNP 같은 경제지표를 사용했어야 한다. 서머스 총장의 실언은 학문적 엄밀함을 어겼음은 물론, 예의 바르지 못한 언행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잣구해석과 관련해 사실 이 문장은 문자 그대로 백만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영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만큼 많았다는 강조로도 읽을 수 있다. "서울"이라는 지명도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언급할 때 "워싱톤에서는~"하듯이 그냥 한국을 지칭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또한 학술대회에서 논문으로 발표한 내용도 아닌 것에 "학문적 엄밀함"을 들이대는 것도 좀 우습지만, 반박하는 김씨 자신도 "창녀"들의 숫자를 실증하지 않으면서 "GNP" 운운하고 있는 것은 더 웃긴다.
물론 엄밀히 말해 숫자면에서 서머스의 언급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캐서린 문이 에서 인용하고 있는 1977년 보건복지부 (당시 보건사회부?)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국에 36,924명의 매춘여성이 있었고, 그중 2/3이 20대 초반 이하였다 (1997 : 165). 그 통계가 미군을 대상으로 한 기지촌 여성들이었는지, 매춘 여성 일반이었는지, 혹은 등록된 여성들 뿐이었는지가 언급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매춘여성의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5배~10배이상으로 그 수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엄밀하게 그 숫자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성매매의 현실이다.
내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서머스 총장의 표현이 양가적이라 생각한다.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의 시선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 GNP보다는 매춘여성들의 숫자가 한 사회의 더 타당한 경제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서머스는 적어도 한 사회의 (경제)발전 정도를 여성의 상태나 지위로 파악하는 성인지적 관점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전혀 그렇지 않은 김씨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한편, 경제성장과 함께 (아동)매춘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서머스의 언급은 맞지 않는다. 거품 경제성장과 함께 80년대 군사정권의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장려된 향락/성산업의 확대, IMF 이후의 경제파탄, 값싼 외국(여성) 노동의 유입이 자유로운 지구화 등과 함께 성산업은, 더불어 아동매춘은 계속 확대되어 왔다. 일반 향락업소에서의 성매매 외에도 최근의 원조교제나 인신매매 등 아동 매춘은 여전히, 그리고 여러 형태를 취하며 성행하고 있다. 따라서 김씨가 "학문적 엄밀함"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했다면 오히려 이 부분이었어야 한다.
더구나 이번 일로 “고 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한 처절한 노동의 시대였고 목숨을 걸어야만 민주주의와 자유를 말할 수 있는 70년대를 힘들게 살아낸 많은 분들에게 송구스럽다”는 그의 “자괴감”은 너무나 노골적인 남성 중심적 역사인식이 아닐 수 없다.
암울했던 70년대에는 남자 전태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많은 여성 전태일들이 공장을 지키며 고역과 착취를 견디고 저항한 한편, 또 많은 여성 전태일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애국자”로까지 불리며 장려된 기생관광의 전사가 되어야 했고, "국가안보"를 위해 기지촌에 들어가야 했다.
따라서 그가 "자괴감"을 느껴야 할 것은 과거 한국에 "어린 창녀"가 많았다는 한 외국인의 "예의 없는 언행"이 아니라, 여성이 몸을 팔 수 밖에 없도록 경제를 망쳐놓은 이 땅의 부패한 남자 위정자들과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핌프처럼 (어린) 여성의 몸을 팔아먹은 부도덕한 정권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네 엄마는 창녀"라는 욕을 먹은 것처럼 “민족의 자존감” 운운하는 것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또는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해 몸까지 팔아야했던 여성들을 마치 화냥년이라 부르며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고, 그들을 역사에서 제외시키고, 그들의 인간적 존엄을 다시 한 번 짓밟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김씨에게 매춘 여성은 경제성장의 이름으로 착취받아온 이 땅의 희생자도, 어려운 시대를 함께 견뎌온 민족의 일원도 아니다. 단지 한국 남성의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에 먹칠하는 부끄러운 “오점” 일 뿐이다. 그런데 이 땅에는 김근태씨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