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농민 vs 여대생

  • 귤과레몬
  • 07-13
  • 1,350 회
  • 0 건
웹진 언니네 www.unninet.co.kr에서
'나는 동면중'님의 자기만의 방에서 퍼온 글입니다.

펌 허가받은 글입니다.

-------------------------------------------------------------------------------------------

농활에서 여자 대학생들과 남성 농민(농부)들 사이의 성희롱/성폭력 관련 기사를 보면서, 1991년 미국을 뒤흔든 아니타 힐과 클래런스 토마스 논쟁 (Anita Hill vs. Clarence Thomas)이 떠오른다.

물론 두 사건의 성격이나 배경은 다르지만, 인종과 성문제의 충돌, 더 정확히 소수인종인 흑인과 흑인 내에서의 성문제의 충돌을 보여준 힐-토마스 논쟁은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두 집단 (농부와 여성) 사이의 갈등, 그 갈등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의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간단히 힐-토마스 논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건의 개요는 http://chnm.gmu.edu/courses/122/hill/hillframe.htm 참조함)

1991년,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원 판사였던 마샬 (Thurgood Marshall)이 은퇴하게 되었다. 그는 전 생애동안 사법부 내에서 시민권 투쟁을 벌인 지도자로 존경받았으며, 특히 1950년대에 공립학교의 인종분리를 철폐하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7년 린든 존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91년 당시는 8년간 레이건의 집권에 이어 공화당의 (아버지) 죠지 부시가 집권한,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시기였다. 부시는 마샬 판사의 은퇴를 기회로 그 자리에 보수성향의 흑인 클래런스 토마스를 임명하려했다. 토마스를 통해 대법원내 인종적 분배를 유지하면서도 Affirmative Action과 낙태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을 확보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한 셈이었다.

그러나 토마스의 임명은 즉각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고, 많은 흑인단체와 시민권 운동 단체들이 그의 임명에 반대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시민권 운동 측에서는 Affirmative Action 등에 대한 토마스의 입장은 마샬 판사가 힘겹게 이룩해온 시민운동의 성과물들을 뒤엎을 것이라 예상했고, NOW 등 여성단체들은 그가 합법적인 낙태에 반대할 것을, 법조계는 2년간의 연방판사가 전부인 그의 경험부족을 우려하였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의 임명은 상원 사법위원회의 (Judiciary Committee) 청문회를 거치게 되었다. 처음 몇 일간 청문회는 토마스에게 우호적으로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낙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 했을 때 그는 아직 확고한 입장이 없다 했고, 그 질문은 그대로 통과되는 그런 식이었다. 따라서 그의 임명은 쉽게 통과될 듯했지만, 위원회의 투표는 7대7로 갈라졌고, 위원회의 명확한 입장표명 없이 그의 임명 건은 상원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상원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는데, 당시 오클라호마 대학 법대 교수인 아니타 힐 (흑인) 이 나서서 과거 토마스의 성폭력을 폭로하였다. 예전에 토마스가 고용 평등 위원회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대표였을 때 그 밑에서 일했던 힐은 그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댓가로 그로부터 성적농담이나 포르노 사진 등의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녀의 주장과 그의 부인 등 공방이 이어짐에 따라, 토마스는 상원 사법 위원회에서 그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해야 했다. 그가 그 청문회를 "잘 나가는 흑인들에 대한 교묘한 린치“ (a high-tech lynching for uppity Blacks) 라 부른 것은 매우 유명하다. 마침내 상원은 52-48의 투표로 그의 대법원 판사 임명을 통과시켰다.

여기서 토마스의 “흑인들에 대한 린치”는 그가 사회적 약자와 그들 사이의 갈등을 평가하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백인 중심의 상원에서 혹은 미국 사회에서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한 흑인으로서의 한과 백인들에 대한 적대감/피해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만약 그가 백인이었다면 그의 정치성향과는 별도로 자신의 임명에 대해 그토록 심한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그가 백인이었다면 설령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해도 청문회에서 증언할 정도로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편, 그의 발언은 자신의 보수적인 정치성향과 반여성적인 행위에서 비롯된 여성단체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인종문제로 돌려버림으로써, 같은 인종집단 내에서의 여/남의 문제를 무시하고 나아가 여성운동을 백인여성의 운동으로 규정해 흑백의 갈등으로 덮어 버리려 했다. 실제로 사건이 진행되면서 그의 능력이나 정치성향에 대한 평가는 인종문제로 전환되었다.

사실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의 문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뿌리 깊고 심한만큼 진보적 사회운동가나 (흑인) 페미니스트들조차 인종과 성이 교차되는 문제에 명쾌한 입장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 급진적인 사회학자 올란도 패터슨 같은 많은 흑인 남성들은 토마스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면서도 그에 대한 “린치”에 울분을 토로하였고, 같은 흑인을 고발한 흑인여성 아니타 힐에게는 말도 못할 비난과 야유가 퍼부어졌었다. 그녀는 흑인 남성을 고발함으로써 이제 흑인이 아닌 백인 (여성)이 된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성폭력에 대해서는 토마스에 반대하지만,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흑인으로서 “억압받는 형제를 비난해야하는 우리의 아픔을 알 수 없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와 같이 온갖 사회적 갈등 - 진보/보수, 인종문제, 인종 내 성문제, 성 내 인종문제 등 - 을 표출시켰던 힐 - 토마스 논쟁은 미국 시민권 운동의 성과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Affirmative Action 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여러 가지 친여성적인 결과들을 낳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복잡한 논쟁의 한가운데서도 여성단체들이 합심해 전 사회적으로 일터/직장에서의 성희롱/폭력에 대한 인식을 상당히 높이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고용평등 위원회에 신고된 성희롱 사건은 1991년 6,127건에서 1996년 15,342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연방법에 따라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보상금도 $7.7 million에서 $27.8 million 으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하게 되었다. 공직에 출마한 여성의 숫자와 그들의 당선 숫자 모두 기록을 세운 1992년의 선거는 그래서 “여성의 해”(Year of the Woman) 라 불린다. 상원은 11명의 여성이 출마해 5명이 당선되었고, 하원은 24명의 여성이 새로 당선되었다. 이는 아니타 힐의 주장이 상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를 98%가 남성으로 이루어진 상원, 즉 남성 중심의 정치 때문이라고 실망한 일반 여성들의 분노를 표로 이끌어 낸 당시 여성운동의 성과였다.

아직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농활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태도는 토마스의 “흑인에 대한 린치” 주장과 많이 유사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또는 의도적으로 "순진무구"한 농민들과 "자의식 강한" (여자)대학생의 대칭적인 계급적 대립으로 한정해 보려는 시각은 토마스가 모든 것을 인종문제로 돌린 것처럼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이라는 성정치의 문제를 무시하고 계급적, 세대적, 혹은 문화적 차이로 적당히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그 밑에 깔려있는 것들은 사회적 약자인 농민들의 문제에 비하면 (특히 여대생들의) 성폭력/성희롱은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는 것, 진보운동 내에서 사회적 약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제3세계를 바라보듯 사회적 약자들을 감상적이거나 온정/동정적인 시선으로 봄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우월감에 면죄부를 발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성부나 여연, 여성의 전화 등 그동안 성폭력 근절에 힘을 기울여온 기관과 단체들이 이번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내부적으로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 또는 웹 사이트상으로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이러한 기관과 여성단체들은 나름의 입장 표명이나, 적어도 진상규명의 의지를 나타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농활에서 성희롱/폭력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면...

복잡한 힐-토마스 논쟁을 통해 여성단체들이 여성들 사이의 (인종적 억압이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성폭력이란 문제의 인식을 확산시키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증가라는 여성주의적 성과를 얻어냈듯이, 이번 사건을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즉, 이번 사건을 단지 농부와 여대생 사이의 "인식의 차이"의 문제로만, 그래서 학생들만이 싸우는 "그들만의" 싸움이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폭력이 "인식의 차이"나 "그들만의" 문제라면, 무엇보다 농민 사회내 여성농민에 대한 성희롱/폭력 문제는 영영 덮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289 [자작 그림] 도와줘요, 스파이더맨 렉스 1,335 07-13
2288 이런 사람이 있어요? 양혜진 2,137 07-13
2287 부천 알바? 제제벨 1,072 07-13
2286 피터 파커의 직업 Jade 1,824 07-13
2285 HELP ~ 한들한들 투명하고 초원 바다 휴양지가 흔들흔들~~ : ) 스르볼 1,006 07-13
2284 [re] 펌/ 김근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귤과레몬 1,054 07-13
2283 펌/ 김근태 씨의 웃기는 자존심 귤과레몬 1,870 07-13
열람 펌/ 농민 vs 여대생 귤과레몬 1,351 07-13
2281 말론 브란도 빚더미라는데 유산이 어디 있다는건가요? 사과식초 1,292 07-13
2280 [펌] 파리의 연인 명대사 싸이월드 버전 웨이브장 1,813 07-13
2279 대부.. big apple 1,158 07-13
2278 스파이더맨 2 잡담 귤과레몬 921 07-13
2277 편지 & 판타지움. happytogether 913 07-13
2276 잡담. (타인의 취향, 스쿨 오브 락) 알퐁소 1,339 07-13
2275 음악 하나 mrvertigo 613 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