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이야기네요.
원문은
여기입니다.
납량특집]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 2004.07.15 18:11:53
by 산하
추천 1
방송 일이 지니는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는 남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가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가장 더러운 점 중의 하나는 남들이 구태여 가 볼 필요가 없는 곳을 꾸역꾸역 찾아들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뭐 이를테면 귀신 나온다고 소문난 흉가 방문이라든가 토막살인 난 집 안이나 밤 12시의 공동묘지에 혈혈단신 잠입(?)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는 이야기죠.
공포 영화보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눈을 꼭 감을 정도로 간이 큰 편은 아닌데도 위와 같은 때 그다지 겁을 먹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거 겁난다고 안했다가는 월급 대신 퇴직금 받는 황당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으니까 그랬겠죠. 귀신보다야 돈이 무섭지... 암
하지만 딱 한 번 촬영 도중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귀신과 조우했거나 진짜 살인마와 칼싸움한 것은 아닙니다. 그때 저와 대면했던 것은 한 장의 그림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연말기획으로 미아찾기 프로그램을 연속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주로 실종된지 1년 이상된 이른바 '장기 미아'들을 대상으로 방송이 되었는데 저에게 떨어진 오더는 경기도 오산에서 지난 3년 전 실종된 여자 아이였습니다. 이름은 잘 기억 안나는데.... 뭐 은숙이로 해 둡시다.
3년 전의 봄날, 초등학교 3학년이던 은숙이는 근처 저수지로 사생 실습을 갔다가 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귀가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비 아저씨에 의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습니다.
하지만 은숙이는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까지 10층의 자기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저를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디에선가 요양 중이라더군요. 딸을 잃어버린 이후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 못지않게 황폐한 얼굴이 되어 버린 아버지는 딸의 물건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은채 3년 전의 그날과 똑같이 보관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전날 사 주었다가 끝내 한 번도 임자의 발에 신겨지지 못했던 빨간 구두는 마치 부적처럼 신발장 위에 곱게 놓여 있었고 아이의 가방이며 피리, 아코디언, 그리고 노트 위의 연필까지 모두 3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온기가 없는 방은 웬지 발이 시려울만큼 춥더군요. 더우기 사각의 벽마다 빠짐없이 붙어 있던 은숙이의 사진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기괴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대체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너는 지금 어디 있니?
그때 은숙이 아버지가 뭔가 하나 더 찍을 것이 있다면서 손에 도화지 한 장을 들고 왔습니다. 그건 사생실습 때 은숙이가 마지막으로 그려 학교에 제출했던 그림이었습니다. 저수지가 보이고 바알간 해와 회새구름이 푸른 하늘에 걸린, 아이들이 늘상 그리는 보통 풍경화였습니다. 은숙이가 사라지던 날 그려진...
옳다구나 싶어 카메라를 켜고 바싹 그림에 갖다댄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해.. 구름.. 저수지의 물고기.. 논같아 보이는 녹색의 물결... 그 아이의 눈에 가득 들어왔을, 그래서 그 서툰 붓놀림으로 화폭에 옮겼을 풍경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그때...
저는 순간 헉.. 소리를 내면서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 저수지 건너편 산기슭같이 그려진 곳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려져 있었던 겁니다.. 그것은 무덤이었습니다. 진한 녹색으로 명확하게 구분된 반원.. 그리고 그 위에 똑똑하게 그려진 십자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무덤이었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다른 아이들의 그림과 별반 다를바없는 그 풍경화에서 무덤은 섬뜩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풍경화 그리면서 무덤 그리신 적 있습니까? 있다 해도 피해 그리는 것이 상례이지만 제가 저수지에 갔을 때 근처에는 무덤 비슷한 것도 없었습니다. 대체 은숙이는 왜 마지막 그림에 무덤을 그렸던 걸까요. 대관절 무엇을 본 것이었을까요.
다음 날 나는 다른 오더를 받아 구로동으로 갔습니다. 역시 하늘이라는 미아의 집이었는데 하늘이 아버지와는 안면이 있었습니다 5년 전 추적 사건과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 조연출 노릇을 할 때 출연한 적이 있는 분이었거든요. 이 분은 미아가족협의회 같은 걸 꾸려 총무 노릇을 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요. 헌데 집 초인종을 누르고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순간 저는 또 한 번 기절할 듯 놀랐습니다.
4년 전 흰 머리한 올 없던 서른 후반의 장년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더란 말씀입니다. 4년의 세월 동안 그는 반 미치광이가 되어 전국을 딸을 찾아 헤맸고 그 '미치고 팔딱 뛰는' 괴로움은 그의 머리칼에서 검은 기를 완전히 빨아먹어버린 겁니다.
그 백발의 아저씨와 촬영을 진행하다가 문득 은숙이 이야기가 나왔길래 어제의 그 공포스러웠던 기억을 털어 놓았습니다. 아직 그 아버지는 그 무덤을 못본 것 같더라... 아버지에게 내가 놀란 거 눈치 못채게 하느라 혼났다까지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백발의 아저씨 얼굴이 더 새하얗게 변합니다.
"무.... 무덤이요? 은숙이 마지막 그림에? 그 그림 나도 아는데.. 무덤이요?"
"아니 못보셨어요? 분명히 무덤이 그려져 있는데.. 아! 테잎 있다, 리플레이 시켜 드릴께요."
제가 테잎을 돌려 그림을 확인시키자 하늘이 아버지는 의자에 철퍼덕 앉더니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거듭 캐물으니 하늘이 아버지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미아가족협의회 일을 하다 보니까.... 아이들 사주를 다 알게 됐어요. 하도 답답해서 아이들 열 명쯤 사주를 받아서는 용하다는 점쟁이는 다 찾아갔었어요. 점쟁이들마다 이 아이는 살아 있다 죽었다 점괘가 엇갈리는데 열이면 열 사주를 보자마자 얘는 죽었어! 하면서 집어던진 사주가 있었어요. 그게.... 그게.... 은숙이 사주였어요. "
아.. 얼마나 기괴한 기분에 휩싸였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그 그림 들고 가서 해당되는 지역의 땅을 파 보고픈 마음이 들었을까요. 어떤 악운에 의해 희생된 그 불쌍한 아이가 나한테 남긴 신호가 아닐까. 혹시 이제 자신의 육신을 거두어 달라는...? 하이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정말 걸음을 못 떼겠더라고요.....
무서운 얘기는 이쯤하고... 백발이 되어버린 하늘이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십디다. 우리는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라고까지 하실 거 있습니까 하니까 자식 잃어버린 부모같은 천하의 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의 생사 하나 챙기지 못한 부모가 어디 가서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그렇게 사라지는 미아가 1년에도 수백명이 발생하고 그들은 은 3일내에 못찾으면 3개월, 3개월내에 못찾으면 3년, 3년 내에 못찾으면 30년이라는 333원칙(?)에 따라 장기 미아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가슴에 납덩이로 남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목과 발에 칼을 뒤집어쓴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 헤매고 있구요.....
지금까지 미아찾기 촬영을 하던 중 있었던 두려운 추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더 어두운 기억의 저편 너머로 비단 미아 뿐 아니더라도 가족의 일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고, 또 죽음을 당해야 했던 끔찍한 날들의 그림자가 떠올라 왔습니다. 생때같은 자식의 생사조차 알길이 없게 된 채 아들의 행방을 찾아 전국을 떠돌던 이들은 미아들의 부모만은 아니었으니까요. 또 '밤새 안녕' 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골짜기에서 동굴에서, 바닷물 속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으니까요.
아이를 잃고 반 미쳐버린 은숙이의 어머니, 늙기도 전에 백발이 되어버린 하늘이의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80년대, 광주, 그리고 전쟁을 거치면서 발생했던 그 한많은 부모님들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M16 소총을 오른쪽 가슴에 한 방, 왼쪽 가슴에 한 방, 그래도 안죽자 머리에 대고 한 방을 스스로 쐈다는 킹콩에 가까운 '자살자'의 부모, 자살하기 위해 수십 킬로그램의 콘크리트를 달고 수십미터를 헤엄쳐 가라앉았다는 청년을 낳은 사람들, 아들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알길이 없어 지금까지 헤매고 다니는 노인들...... 그 숱한 의문사와 실종과 학살이 빚어낸 죄인 아닌 죄인들의 절규가 말입니다.
대통령 직속의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 한 의문사를 조사하던 중 1군 사령관은 위원들을 "죽인다"고 협박을 했고 그 죽음에 얽힌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던 하사관은 그 자료를 돌려받고자 총까지 쐈습니다. '대통령 직속'의 권위가 무너진 것인지, 그만큼 과거를 지배했던 그 어둠의 세력의 뿌리가 깊은 것인지...... 하늘이 아버지처럼 수많은 아버지들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었던" 억울한 죽음들의 신원굿을 해 주나 싶었던 의문사 위원회는 그렇게 찬밥에 쉰밥 대접을 받으며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나마 다행이라고 해 주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의문사 하나를 밝히는데도 이 지경으로 힘이 들고 벽이 두터운데 전쟁통에 죽어간 수십만의 의문사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의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의 수습도 없이 백령도 이동 독도 이서 마라도 이북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 땅에서 사라져간 생명들이 내가 왜 죽어어야 했으며 나를 트럭에 싣고 어디로 갔느냐며 물어 올 때 우리는 영원히 대답을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요. 민주화는 다 되었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는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에 가 있다는 요즘에도 이 지경으로 속수무책이라면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입니다. 공포체험을 수시로, 공짜로 하게 해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