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

  • ginger
  • 07-20
  • 1,586 회
  • 0 건
<니콜라스 니클비>를 비디오로 다시 봤습니다. 영국 QAF에서 네이단으로 나온 찰리 허남이 니클비, 그의 여동생으로는 로몰라 가라이, 너무나 맛깔나는 악당 부부로 짐 브로드벤트와 줄리엣 스티븐슨, 빌리 엘리엇의 제이미 벨이 불쌍한 피해자 스마이크로 나오죠.

이 영화는 긴 얘기의 축약 예고편같은데가 있지만 워낙 출연진들이 다양하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2002년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땐 QAF를 안 봤을 때라서 착하고 지루한 니클비역으로 천박하다면 좀 과하고, 뭔가 아무튼 지루한 모범생 주류 금발 미남 범주를 살짝 벗어나는 데가 있는 배우를 썼다고만 생각했는데, QAF를 보고 나서 점잖빼는 빅토리안 니클비로 나오는 찰리 허남을 보니까 그 악명 높은 섹스신이 생각 나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허남은 헐리우드로 가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모양인데, 재주도 있고 잘 생겼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어디를 둘러봐도 눈에 띄도록 여기 저기 나오는 통에 도무지 연기가 늘 새가 없는 올란도 블룸 (너무 연기를 밋밋하게 못해서 O Blando 라고 미디어에서 놀리기도 하죠) 보다는 배우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나 생각되네요.

------------

앞에서 어떤 분이 해리 포터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론이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shrunken head들한테 fag 어쩌고 하는 욕을 하는 걸로 들으셨다고 했었죠. 그게 아니라 'fig heads' 라고 한 거라고 제가 답글을 썼었는데요. PG등급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 영화라서 언어를 많이 조심하는 편인 것 같던데, 욕이 나올 수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기껏해야 'bloody' 정도죠. 말포이가 벅비크한테 다치고 나서 해그리드한테 'You and your bloody chicken'이라고 하는 거 말이에요.


------------

시간이 좀 지났지만 하바드 총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의 한국에 대한 무지하고도 '모욕적인' 언사를 했고, 김근태씨가 분노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으며, 거기에 대해 '김근태씨의 웃기는 자존심'이란 글이 이 게시판에 옮겨진 걸 봤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한국사람들이 이런 식의 언사에 좀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소위 민족적 자존심이란 게 참 얇고 부서지기 쉬운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잘 모르면 칭찬한답시고 '70년대에 한국에 미성년 매춘부 백만'이란 것도 웃기는 얘기지만, 그런 남의 무지에 '민족 자존심'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나요? '겨우' 하바드 총장이 한 실수에다 대고? 하바드 총장인지 뭔지가 한국이나 태국이나 캄보디아나 못사는 아시아 나라들이 겪는 발전 경로라는 게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말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70년대 한국의 치열했던 역사를 잘 몰라준다고 야속해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단 말입니다. 무식한 놈, 하고 그자리에서 면박 한 번 주었으면 그만이었을텐데. 세계에서 젤 잘 나가는 미국의 권위 높은 하바드 (별 상관없는 한국에서 너무나 잘 통하는 놀라운 '하바드'의 권위!) 총장이 그런 소릴..저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그 짝사랑이라니. 한국사람들이 그만큼 열등감이 심하고, 자긍심이 그다지도 불안하다는 반증인 것 같아서 꼴보기 싫더군요.


사실 못사는 아시아 나라들, 하면 의례 떠오르는 동남아시아의 미성년 성매매는 한국하고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펄펄 뛰는 걸지도 모르죠. 게다 한국이 이젠 좀 먹고 살 만해지니까 매우 우습게 아는 동남아시아, 한국 남자들이 섹스 관광하러 다니는 그런 나라들하고 동격에 놓은 것 같아서 말이죠. 아무렴 아무리 못 살았어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내려갔을'라구...하는 어떤 공유된 생각들. 성매매는 터부이자 성역이자 치부이고, 성매매 여성은 그냥 민족 범주에서 제외하고 싶은 그런 심정.


'미성년 성매매가 백만'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비하라고 하지만, 뭐 70년대 한국 정부가 일본 관광객 상대로 여자들 팔아 외화획득에 나선 것도 사실이죠. 외화벌이용 뿐아니라 내수용 미성년 성매매가 없었다고 할 수도 없구요. 자세한 통계? 그런 거 누가 관심 가지고 연구하기나 했어요? 그냥 덮어두고 모른체 했지. 한국에서 성장과 개발 과정의 그늘에 얼마나 많은 침침한 일들이 많았는지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주로 신화적인 영웅들의 자기 희생 이야기였지, 그런 성장의 어두운 면을 성별화해서 분석하는 건 별로 못 들어봤어요.


언니네에서 옮겨온 글 '김근태씨의 웃기는 자존심'은 '민족'에서 쏙 빠진 '여성'에 대해서, 그리고 성매매 여성을 남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민족'의 치욕 쯤으로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에 대해서 짚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글 쓴 방식이 어떤 사람들한테는 좀 기분나쁠 수도 있겠더군요. 하지만 이게 한가지 척도만 가진 편향된 글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외려 편향된 건 기존의 '민족'이라든가 '개발'에 대한 개념이죠. 그 글은 드물게 보는, 균형을 잡아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에선 별로 새로운 얘기도 아니지만 말이에요.


저는 사실 70년대 서울 인구를 들고 비례까지 계산해서 당시 서울의 모든 10대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친절 보도하는 기자들한테 더 넌더리가 나더군요. '성매매'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기사 쓰다말고 스스로 에로틱 로맨틱해지거나, 그게 민족이랑 연결되면 갑자기 도덕군자가 되면서 여성화된 '순결한' 민족을 읊조리는 통에 아주 역겨워요.


건조한 사실은, 70년대에도 지금도 한국엔 수많은 성노동자 여성들이 존재하고, 이사람들은 가끔 필요할 때 측은하게 낭만화될 때만 제외하고는, 사회에서 낙인찍인 밑바닥에서 '몸을 함부로 굴리는' (그래서 죽어도 싼) 여자들이 된다는 거죠.

-------

타임즈지를 안 읽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한국에 보도된 문제의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으려고 뉴 몰든에 몰려 산다' 어쩌구 하는 기사는 꽤나 한심한 것 같더군요. 농담 치고도 상당히 너절할 뿐더러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영국 사회 분위기가 한국사람들에 대해 인종차별적 범죄를 용인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 간다고 연결해서 보도하는 건 약간 불공정한 것 같아요. 한국 이민자들이나 유학생 숫자가 늘어나면서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일어날 확률도 따라서 늘어나겠지요.


저는 한국에서 개고기를 안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지만, 서양사람들이 이걸 가지고 야만인 취급하는 건 정말 질색입니다. 동물에 대한 잔인한 학대를 반대하는 건 동의하는데, 자기네 가치관이나 관습과 부딪친다고 무조건 야만이란 딱지를 붙이는 건 짜증나죠. 어떤 인종이나 민족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할 수도 있는 의견을 내 놓을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공개적인 언어는 참으로 정치적이다, 혹은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한 일주일 전 쯤에 비비씨 뉴스나잇이란 심층 보도 프로그램에서 캄보디아의 에이즈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루퍼트 에버렛이 리포터 노릇을 했죠. 처참하게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에서 에이즈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겁니다. 가장 위험이 큰 그룹인 마약 이용자들과 성노동자들 뿐아니라 이젠 보통 주부들한테도 전염 되고 있다는 거죠.

지지리 가난한 캄보디아에 왜그리 성매매는 극성인지. 그 와중에도 돈이 조금 있으면 성을 사러 다닌다는 거죠. 하긴 이걸 보고도 '여자들의 도덕성이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군요.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함부로' 사는 여자들 때문에 에이즈가 퍼진다고요...


아무튼 에버렛이 에이즈에 걸린 한 아줌마를 집까지 따라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이미 에이즈 말기 환자로 비쩍말라 죽음의 빛이 역력한 그 남편이 집에 힘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자기가 왕년에 직업 군인이었다고, 그 시절에 동료들과 잘 먹고 마시고 성매매 하러 다녔노라고 하더라고요. 다들 그랬다고 하면서. 저는 잘 놀기나 했지. 그 부인은 무슨 날벼락입니까. 30대 초반쯤 된 것 같은데 머리도 듬성하고 앞니도 하나 없는 아줌마가 잔잔하게 '남편이 옮겨 줬으니 어쩝니까'하더라고요...


캄보디아에선 관습적으로 당연한 듯이 성노동자를 이용하는 남편들 덕에 부인들이 감염되는 사례가 많이 늘었다고 해요. 그런 남편들을 말릴 수 없냐니까 여자들이 '무슨 수로' 하면서 체념하듯이 얘기하더군요.  


루퍼트 에버렛은 상당히 감정이입을 하면서 리포팅을 하더군요. 아름다운 나라에서 너무 비참한 광경들을 보고 있자니까 충격을 받기도 했겠죠.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부모가 다 죽고 나면 사회복지라곤 없는 이 나라에서 얘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더군요.


장소를 바꿔서 루퍼트 에버렛이 방금 건강 검진을 받은 예쁘장하게 생긴 성노동자를 인터뷰를 하는데 '손님들한테 콘돔을 사용하라고 부탁한다. 내가 벌어야 우리 식구들이 먹고 사니까. 난 겨우 18살이다' 한다더군요. 먹고 살 길이 없으면 딸들을 성매매로 내보내는 사람들, 새로운 얘기가 아니죠. 성매매 여성의 숫자가 그 사회의 삶의 질을 드러낼 수 있는 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별로 급진적이지도 않은 소리가 됩니다.


전직 군인이었다는 에이즈 환자, 그 말라빠진 캄보디아 남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미쉘 푸코나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을 볼 때하고는 또다른 심정이었거든요. 소위 제 1세계의 잘 나가던 사람들도 물론 때이른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지요. 하지만 전후 캄보디아에서 잘 살면 얼마나 잘 살았겠어요. '잘 놀았다'던 그 남자의 증언은 그래서 딱하기도 하고, 그 옆에서 에이즈를 옮겨준 남편을 돌보는 부인을 보고 있자니 얄밉기도 한 그런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주체'로 살았고 '주체'로 죽는데, 그 부인은 끝끝내 죽음 마저도 곁다리로 맞는구나 싶었어요. 어느 인종, 어느 계급이든, 무슨 차별, 억압이든 여자들은 그렇게 남자들 중심으로 구분되는 그룹의 하위로 들어가 종속적으로 살다 죽는 다는 걸 실감했거든요.

---------

주로 힘없는 노인네들과 여자들을 골라 죽인 살인범이 자기가 무슨 도덕적 우위라도 점하는 듯이 구는 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죠. 잭 더 리퍼도 그랬고, 어느 시대든 싸이코들이 만만하고 죽여도 아무도 안 찾을 여자들을 죽이고는 창녀가 어떻네 도덕이 어떻네 핑계를 대는 거죠. 성매매가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생각되면 성구매자인 본인부터 얼른 죽이면 약간이나마 해결될텐데.


근데 아무리 선정적인 미디어라도, 왜 '아담한 미인' 같은 보도를 하나요...범인이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딱지를 놓았단 식으로요. 아아 정말 기자 시험은 왜 봅니까. 기본 인권의식과 소양을 테스트 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기초적인 분별력도 없어요..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514 오타신고 - [령]리메이크하기 vogelgarten 537 07-20
2513 "아웃로" 라는 게임의 오프닝 음악... Mr.ll 705 07-20
2512 Rebecca De Mornay frederic 945 07-20
2511 노래'Hungry spider'/엘리엇 스미스 아라치 749 07-20
2510 령 리메이크 제안 하나 나비효과 670 07-20
2509 캐리어 어떤 제품이 좋을까요? ifplacebo 1,044 07-20
2508 오타 brandnu 477 07-20
2507 굿데이 부도처리.. big apple 1,963 07-20
2506 앨리스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김전일 972 07-20
2505 엔젤시리즈의 망조? 사랑방손님 1,244 07-20
2504 ツッパリ 이 단어는 주로 어디에 쓰이는 말인가요? karma2burn 1,149 07-20
2503 좀 충격적이군요.. big apple 2,688 07-20
2502 마법의 지팡이 이뉴엔도 ginger 1,446 07-20
열람 이런 저런 생각 ginger 1,587 07-20
2500 작은 오타 ('령' 리메이크 하기) Neverland 577 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