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전부일거라 생각한 것에 대한 상실감.

  • 알퐁소
  •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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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편이라 몇 년 전, 미성년에 대한 해금이 풀리고도
늦게까지 학교에서 술을 마시거나~ 2차, 3차를 따라다니거나 하지 않았었어요.
사귀던 사람 탓도 있었을거에요. 제가 대학에 갔을때 그 사람은 대뜸 재수를 결심했고,
의무감에, 그리고 왠지 썩 내키지 않는 기분때문에 신나게 노는 자리는 피해왔었지요.
그런데 막상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니 그 몇 년의 시간들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졌어요.
누군가의 강요도 아니었고 떠밀려서 한 일도 아니었지만 약간의 보상심리가 있었겠죠.

최근의 한 달은 "그 사람과 관련된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한 시간" 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것에 몰두했었죠. 잠자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들어 미친듯이 찍어댔고,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호감을 표시하며 술 마시고 흔들고 취하고~

어제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클럽에 가봤어요. 세상에 그런 곳도 있더군요. ㅎㅎ
번쩍번쩍 돌아가는 조명에~ 쿵쾅거리는 음악에~ 3시간을 땀흘리며 리듬을 탔더니
가방이 없어지대요. 카메라, 지갑, 핸드폰. 돈 되는 건 다 갖고 나온 밤이었는데..
선배들과 친구들이 클럽을 이 잡듯 뒤져서 남자 화장실 변기에 쳐박힌 가방을 찾았는데
남은 건 물에 흠뻑 젖어있는 호어스트 에버스의 유쾌한 책과 안경통, 화장품 몇 가지..

일행은 절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전 어쩐지 담담해졌어요. 오히려 웃음이 나더군요.
살면서 첨 해보는 것들, 첨 당하는 것들에~ 그저 전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어요.
내 인생에 이런 날이 다시 올까? 싶게 미친듯이 재미나게 놀았는데 결과가 이런 꼴이라니..
깨어있는 12시간 사이에 최고의 기분에서 최악으로 떨어지는 게 이렇게 쉬운거구나 싶었죠.
냄새에 찌든 호어스트 에버스의 책 제목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였어요. ^-^
썰렁한 클럽 앞에서 망연자실 포즈로 쭈그리고 앉아 그걸 보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나고..

파란만장한 하루였어요. 새벽에 집에 와서 씻고 몇 시간쯤 자고 일어났더니 몰골이 영...
하룻밤만에 애지중지 하던 것들을 홀랑 잃어버리고 와서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있는 걸 보면
미성숙했던 첫사랑의 기억도 언젠가는 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잊혀지겠지요. 많은 걸 배웠어요..
상실감은 크지만 곧 다른 것으로 채워지겠죠. 갤러그에 열중하다가 테트리스에 빠지는 것 처럼.
가방 가져간 도둑놈도 자기 인생에 뭔가 큰 상실감이 있어 돈 되는 것만 골라갔겠지요. ㅎㅎ

스스로 이렇게 기분을 돌려놓고 있어요. ^-^ 출혈은 크지만 별거 아니라 생각하니 또 그렇게 되네요.
어제는 특별한 사진이 많았었는데.. 하다보면, 그 사람과도 특별한 기억이 많았었지.. 하게되고.
이러다 조만간 득도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여튼 이렇게 대강 수습하고 다시 신나게 놀랍니다.

더운 날씨에 부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도둑놈 조심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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