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언어로 표현하기, 새벽의 횡설수설

  • 알밭
  •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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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주문받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되는 밤, 혹은 새벽입니다.

음악은, 으..으막은... 으막입니다.

음악은 음악인데, 이것을 말로 표현하려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레너드 번스타인도 짧은 글에서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왜 운명에 비유하는지, 웅장한 부분이 나오면 왜 꼭 산맥에 비유하고 바다에 비유하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음악은 음악일 뿐인데 라고 번스타인은 말합니다.  음악은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음악은 자신을 활자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악보이지요.  클래식 시절에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것이 대중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실내악이나 피아노 악보 콩나물 대가리들의 연속을 눈으로 보면, 귀에서 음악이 들리는 것은 옛날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춘 교양 중의 하나였다는군요.   그러니 악보 출판물이 팔렸겠지요.  그 사람들은 꼭 연주할 목적으로만 악보를 구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내악 악보를 보면서 "감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에 어느 작곡가가 친구에게 자신의 음악을 종이 매체로 설명을 해야한다면, 그냥 악보를 그려줄 것입니다. 그러면 친구는 눈으로 악보를 보면서 귀로 듣겠지요.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클래식은 악보로 어느정도 재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중음악에 오면 그게 좀 달라집니다. 클래식 음악은 악기와 소리가 비교적 고정되어있고, 화성학이나 대위가 중요한 위치입니다만,  대중음악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I-VIm-IIm-V7의 진행을 가진 곡은 벤쳐스도, 멍키스도, Smiths도, Fat Boy Slim도, Jamiroquai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의 차이점은-리듬 등의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사운드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같은 연주를 리켄버커 베이스에, 테이프 에코소리 가득한 서프기타로 연주하느냐,  솔다노 헤드에 물린 깁슨과 스내피 풀어버린 러딕으로 연주하느냐,  TR-909에 mpc를 써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중음악은, 화성과 멜러디 외에 사운드가 규정하는 면이 큽니다. 악보로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류가 가지고 있는 방법 중에 대중음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묘사할수 있는 대체방법은 없다고 봐야합니다.

음악은 음악인데, 그것을 리뷰하는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불특정 대중에게 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사춘기 전 소년의 섹스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 보다도 바보같습니다.  음악 잡지사 기자가 악보를 그리면서, 오아시스가 비틀즈의 느낌을 주는 이유는 9th, M7멜러디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라는 글을 쓰면 당장 짤리겠지요.

전영혁 같은 사람은 몇가지 관용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좀 빠르게 친다 = 전광석화와 같은 핑거링,  드럼 사운드를 좀 묵직하게 잡았다 = 해머같은 강력한 드러밍 등등, 이런 말을 나열하고  몇번째 트랙이 백미이다. 라고 넣어줍니다.    그 후에 글의 맨 위에다 어릴때 클래식 교육을 받았다라는 말을 삽입하고, 글의 끝 부분에 명반이라는 칭찬 몇마디를 써주면 앨범소개가 끝납니다.

좀 더 똑똑한 평론가라면 더 나은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운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다른 참조 음악을 원용하는 것이지요.  

Fiona Apple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재즈에 영향을 받은 피아노가 앞에 선 락/팝 음악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니코를 연상시킬 때가 있으며, 그 목소리를 받쳐주는 것은 피아노와 함께 70년대 하드락을 연상케하는 아날로그 드럼 사운드, 이것에 더해 비틀즈와 같은 스트링 사용,  쟈니 미첼을 연상시키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 Tori Amos의 좀 더 팝적인 노래를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그녀의 노래이다.

뭐 이런식으로 계보를 찾아서 다른 음악에 비유해서 말하면 좀 더 정확하고 쉽습니다만, 아직도 정확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오히려 오해의 소지마저 있지요.

이것에 한계를 느낀 평론가들은 엉뚱하게도 가사에 집착합니다. 일부는 가사에 집착할만한 가치가 있지만, 오아시스는 Wonderwall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자... "그냥.. 멋지지않냐?"라고 대답합니다.  가사에 집착할 때는 평론이 유일하게 성과가 있을 때이기도 하지만,  "음악" 평론/ "음악" 이야기에서 벗어날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가사에 중점을 둔 평론을 더 좋아합니다. 음악은 CD에 그대로 존재하고 글은 그 음악의 새로운 면을 퍼올리는 두레박의 역할을 할 때 참 좋습니다.)

음악과 달리, 영화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러티브라는 것 자체는 언어의 영역에 걸치고 있고, 따라서 평론이 발달하기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DJUNA님의 평론을 비롯해 대부분 평론들은 각 장면이 어째서 뛰어난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인색합니다. 우진의 펜트하우스에서 연출이 왜 뛰어난지 미장센과 편집리듬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꺼려합니다. 만약 진짜 하려한다면, 삽화로 가득찬 영화교과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에게 환영받는 영화는, 언어로 이야기할거리가 많은 영화이겠지요.

어제 아는 사람에게 한탄을 또 들었습니다. 음반 기획자 / 음악 디렉터 들은 어떠한 음악이 필요한지, 어떠한 음악이 지금 바로 오늘 시장성이 있는지 가장 예민하게 파악해야합니다.  10대들이 외국의 누구 음악을 듣는지, 매니아 취향은 어떤지,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다가가는 음악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난 후에 디렉터들이 하는 일은, 그러한 상품을 만드는 일이겠지요. 그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 디렉터는 "어셔의 Fast Car와 같은 리듬을 가지고 그 분위기를 가지되 약간 뽕끼를 가미한 음악을 만들어오라" 라는 식으로 지시합니다.

음악은 음악인데, 왜 존재하는 음악으로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지칭하는 것일까.

영화음악은 더 심합니다. 음악 디렉터는 차라리 음악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화감독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감독도 나름대로  편집기를 돌려보면서 어떤 음악이 맞을까 궁리를 합니다.  가지고 있는 MP3를 틀어보면서 화면을 돌려봅니다.

비가오는 슬픈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감독은 발라드곡이 하나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독은 X 재팬의 노래를 틀어보고 옳타구나 합니다.  "어이 작곡가, X Japan의 엔들레스 레인 같은 곡 하나 만들어줘",
다음날은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이 장면하고 맞아, 그렇게 만들어줘".

아, 영화감독이나 그런 사람은, "이 곡은 슬픈 느낌인데 마이너를 쓰지 말고 메이저를 써서 천박하지 않은 슬픔이 나도록 하고, 강진행 없이 대리화음을 많이 써서말야, 멜러디가 두드러지지 않게 하고... Ab키가 좋겠어... 대위선율은 되도록 자제하고, 두도막 형식으로 나가자고,,, 악기 편성은 스트링으로만 가고 타악기는 넣지 말고...."   뭐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있는 음악으로 음악을 설명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새로운 음악이 나오기 힘듭니다. 있는 음악을 귀에 들으면서 새로운 음악을 주문하는 사람은, 표절의 의혹에 이를 때까지 만족하지 못합니다.

" 아이 씨, 윤XX씨,,,  Zard의 그 노래처럼 해달라니까, 이건 아니지 않나?"

오늘도 여전히 표절을 향해 달려가는 XXX군,  곡비는 아직 못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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