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위, 왕우, 적룡, 나열

  • 제제벨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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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게 작년 2003년 부천 판타스틱 국제영화제에서 단 한
장면만을 뽑으라면 저는 <13인의 무사(13태보)>에서 능지처참을 당한
강대위의 팔이 휙 날아가며 피가 흩뿌려지던 장면을 꼽겠습니다.
물론 작년에 상영했던 쇼 브라더스의 다른 영화들도 만만치 않았죠.
가슴에 칼이 박힌 채 끝까지 싸우던 왕우의 아집에 찬 모습과(금연자)
당대의 꽃미남 적룡의 결투 장면(13태보), <복수>에서 적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뒤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강대위의 코믹한 모습도 마찬가지로 제게는
기억에 길이 남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작년 부천의 쇼 브라더스 작품 목록을 보면, 이한상의 멜로드라마를 빼면
<복수>, <13태보>, <금연자>, <방랑의 결투(대취협)>,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등이
있었죠. 올해는 <유성호접검>, <자마>, <철수무정>, <대자객>, <성성왕>,
<스잔나> 등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왕우가 출연했던 영화는 <외팔이>,
<금연자>, <대자객> 등이고 강대위가 출연했던 영화는 <복수>, <13태보>,
<자마>, <철수무정>. 적룡은 <복수>, <13태보>, <자마>. 나열이 나온
영화는 <금연자>와 <철수무정>, <유성호접검> 등이 있습니다.
강대위의 인터뷰 등을 읽어보면 그가 주연 자리를 굳히기 전에
<외팔이>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음을 알 수 있으나 이건 빼도록 합시다.

이렇게 부천에서 상영된 영화를 제외하고, 스펙트럼 dvd에서 출시된 쇼 브라더스
영화들이 또 있는데 <천애명월도>, <권격>, <소림 36방>, <오독>
<3인의 협객>, <단장검>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꽤 됩니다. 얼마간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 이렇게 많이 출시된지 몰랐습니다(언제 다 사나 ㅜ.ㅜ)...
이 중에서 왕우가 나온 영화는 <3인의 협객>과 <단장검>이며 이 외엔
생락하기로.. 잡설이 너무 길어졌네요.

<금연자>, <외팔이>, <대자객>, <3인의 협객>, <단장검> 등 왕우가 출연하는 영화
중에서 유감스럽게도 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금연자> 뿐입니다. 이번 부천에서
심야로 <대자객>을 보면서 왕우가 나오면 왠지 재미가 없다는 선입견이 굳어지는 걸
느꼈고,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나머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소룡을 가리켜 '재수없었다'
고 단칼에 결론짓는 정성일씨 같은 분께는 죄송하지만. 반면 저는 강대위, 적룡, 나열이
나왔던 영화를 보고 실망한 적이 아직 없습니다. 나열이 출연한 <죽음의 다섯손가락>이나
<아랑곡의 혈투>도 봤습니다만.

<자마>와 <대자객>은 한편은 적룡, 강대위 콤비, 다른 한편은 왕우가 나온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엄연히 같은 장철 감독의 영화입니다. <금연자>와 <대자객>은
장철이 감독했고 왕우가 출연했습니다만 또 다릅니다. 왕우가 나중에 스스로 창자를
바닥에 쏟아버리고 자기 얼굴 가죽을 벗겨내는(그나마 이 장면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걸 빼면 재미라곤 약에 쓰려도 없는 <대자객>, 그에 비해 <금연자>의 마지막 결투 장면이
보여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문제는 캐릭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금연자>에서 왕우가 연기하는 검객 은붕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으며 자신이 최고여야 한다는 아집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 아집의 깊이는 한타오(나열)의 검에 부상당한 채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장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믿기에 그는 적들 앞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하고, 요즘 관객들이 보기엔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서 검을 휘두르고, 끝까지 적을 베고야 맙니다. 이마에
상처가 있는 은붕이 검을 든 팔을 벌리고 달리면 상대방이 주루룩 넘어가는 모습에서 보이는
그의 앙다문 입은 안으로 굳게 닫혀진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지금껏 제가 본 다른 영화에서의 왕우는 말 그대로 바른 사나이입니다. <단장검>이나
<대자객>, <외팔이> 등에서의 그는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으로 울분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꿈은 일그러진 것도 아니고, 좌절이 그의 성품을 비뚤어트리지도 못합니다.
결정적인 차이로, <금연자>에서 왕우가 마지막에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짜는 것은
자신을 따라온 기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만, <단장검>에서 이악이 기꺼이 비어도
로 뛰어드는 것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왕우의 '착한' 모습은
<외팔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인의 협객>에서 왕우 뿐만이 아니라 나열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 영화를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나열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아마 왕우가 나열을 잡아먹었나 봅니다.
문제는 나열 역시 왕우의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나열은 왕우처럼
한숨을 가득 쉬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에게 왕우처럼 무슨 풀지 못한 울분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진 않습니다. 그는 단지 큰 눈과 비교적 두꺼운 입술을 꾹 다문 모습으로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그가 하는 행동은 거의 대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협객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오면 뭔가 일이 제대로 풀릴 거라는 신뢰가 제겐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말이죠.

결국 왕우의 문제는 어정쩡하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나열처럼 신뢰를
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엇나간 인물도 아니어서,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선에 서 있다는 느낌이 불안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금연자>처럼만
간다면 아주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줄 수도 있을텐데. 왕우의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 가장 닮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는 쇼 브라더스 시절의 슈퍼스타였으므로
그의 인기엔 이유가 있을 텐데요. 저는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나열과 마찬가지로 강대위와 적룡은 제가 감히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인물들입니다. 거의
저항할 수가 없어요. 특히 강대위의 까불까불한 느낌은 최고입니다. 왠지 장난을 걸면
잘 받아줄 것 같죠. 외모도 그렇고(강대위가 잘 생기긴 했지만 얼굴이 긴게 어딘지 모르게
옛날 개그맨 김명덕을 닮아 있습니다) 하는 짓도 그렇고. <13태보>에서 강대위는 전장
에서 술을 퍼먹고 자빠져 자거나 적국의 사신을 놀리거나 하죠. 이런 강대위의 건들거리는
모습은 적룡의 오만함과 좋은 짝을 이룹니다. <자마>에서 적룡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 여성 관객의 긴 탄성이 있었죠. 긴 다리에 희고 잘생긴 얼굴, 탄력있는 육체가 주는
우아함과 강함 같은 것이 귀족적이고 오만한 분위기를 풍기죠. 왕우야 처음부터 우거지상을
쓰고 스스로 비극적인 운명으로 달려가는 신파적인 캐릭터지만 강대위와 적룡은 처음부터
비극이나 고민과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게 나중엔 비극적인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나열은 나중엔 악역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우연히 무협채널에서 <영웅문>인가.. 무당파의
시조인 장군보를 다룬 시리즈에 그가 악역으로 나오는 걸 봤어요. 기마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싸우기 싫으면 이 밑으로 지나가라. 으하하하!" 이것까지 어울립니다 그려.

내년에 부천에서 다시 쇼 브라더스 회고전을 한다면, 제 생각엔 <수호지>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스펙트럼의 dvd 출시작 목록에도 없는데, 오승욱 감독의 말에 따르면 본론부터
시작하는 아주 쌈빡한 영화라네요.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와 해머 필름을 결합시킨, 강대위 주연의
괴작이 있다고 하던데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이것도 보고싶어요.

전에 옷입는 법에 대해 질문했을 때 리플달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나중에 로또 1등 당첨되거든 한턱 쏘죠.
(농담처럼 말하긴 했어도 진짜로 고마워하고 있다고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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