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클린 윌슨 [The Illustrated Mum]

  • ginger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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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점에 갔는데 한 10살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서서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재클린 윌슨의 책들 중에 뭘 살지 망설이고 있었어요. 엄마는 하나만 사라고 하고 아이는 두 개의 책을 놓고 한참 고민하더군요. 며칠 전에도 다른 서점에서 그또래의 여자애들이 재클린 윌슨 책들 앞에서 심사숙고 하는 걸 본 적이 있었지요.

재클린 윌슨의 책은 영국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가는 책, 10살 안팎의 여자애들이 열광하는 책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의 소설들은 드라마로도 제법 만들어졌죠. 저는 그래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만.

어느 토요일 아침에 티비를 켰는데 비비씨에서 제멋대로 자란 짙은 고수머리에 매우 심통스럽게 생긴 악동 여자애가 고아원에서 제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dare game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서로 서로 감히 하지 못할 만한 제안을 하는 거죠. 못한다고 하면 지니까 점점더 제안들이 대담해 집니다. 급기야 벌레도 먹고, 높은 나무에도 기어 올라가지요...그게 [트레이시 비커 이야기]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억지로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심난한 말썽꾸러기인 아이와 그 나쁜 행동의 원인 - 친엄마와 두 양부모에게 버림 받았고 10살이지만 아무도 입양하고 싶어하질 않습니다 - 을 덤덤하게 보여준 드라마라서 아주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보다 보니 이 할머니 작가는 굉장히 톰보이이고 전혀 여자아이 답지 않은 여자애들을 주인공으로 현대 영국 아이들의 고민과 걱정을 잘 그렸더라고요. 항상 1인칭에 거의 대부분 10살 먹은 여자아이들 시점이구요.

요즘 (영국) 애들이 소위 '정상' 가정에서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다 두고, 애들이 나이보다 조숙하고 티비덕에 온갖 종류의 소프오페라 멜로 드라마에도 익숙하다는 것을 감안한 이야기들이다보니 소재가 꽤나 센세이셔널하고 어두울 때가 많습니다. 게다 절대 냉정한 현실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아이들에도 사실을 정직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결말도 장미빛하고는 멀죠. 하지만 재클린 윌슨의 소설들은 유머가 가득하고, 도덕적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결말을 끌어냅니다.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하고 술주정뱅이에 manic depression이 있는 엄마 매리골드랑 사는 두 자매, 12살난 스타와 10살 돌핀의 이야기 [The Illustrated Mum]은 채널4에서 드라마화했었습니다. 책은 돌핀의 시점으로 쓰여졌구요.




이 엄마는 무직이고, 나라에서 할당해 주는 조그만 카운슬 플랫에 살면서 실업수당으로 먹고 삽니다. 뭐 카드빚도 잔뜩지고 있긴 하죠.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사람이고 딸들을 사랑하지만 매리골드는 무책임하고 형편없는 나쁜 엄마죠. 엄마노릇은 커녕 스스로도 못 돌보는 환자이기도 하구요.

스타와 돌핀은 늘 엄마와 자기들이 남다르다고 이야기를 꾸며내며 살았지만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들어 중등학교에 진학한 똑똑한 스타는 엄마와 동생을 돌보면서 사는 경계선밖의 유별난 삶에 진저리가 나서 이제 그만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합니다. 금발머리에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스타와 다르게 동생인 돌핀은 난독증에 별로 예쁘질 않고 학교에서 적응도 잘 못합니다. 남다른 엄마와 유별난 이름과 너저분하면서 얼터너티브한 마녀같은 옷차림새도 학교에서 놀림 받는데 일조하죠.

스타와 돌핀은 아버지가 다릅니다. 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친아버지들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죠. 그런데 어느날 돈도 많고 근사한 스타의 친아빠가 갑자기 나타나고 스타는 엄마와 동생을 남겨두고 아버지를 따라가버립니다.

이제 돌핀이 혼자 엄마를 돌봐야 하는데, 엄마는 점점 미쳐서 진짜 광기로 사람이 망가져가죠. 결국 어찌저찌 찾은 돌핀의 친아빠와 사회복지사와 임시 양부모들이 등장합니다. 끝끝내 매리골드는 정상이 될 가망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돌핀과 스타한테 쉽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는 쪽으로 끝납니다.

쓰다보니 정말 침침한 얘기군요. 근데 아이의 시점에서 썼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아요. 게다 자매간의 사랑도 따뜻하고 중간에 유머도 많구요.

재클린 윌슨은 영국의 노동계급 중에서도 아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씁니다. 이런 아이들은 상황덕에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빨리 자라길 요구받지요. 수많은 아이들이 작가가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면서 힘든 속을 털어놓는 편지를 보낸다고 해요.


이혼 후 엄마 아빠가 각각 재혼해서 다른 가정을 이룬 덕에 매주 양쪽 집을 오가면서 혼란을 겪지만 결국 바뀐 상황에 나름대로 최대한 적응하는 아이의 이야기(The Suitcase Kid), 가정폭력을 피해 엄마와 어린 동생과 도망가서 이름도 바꾸고 살지만 철딱서니 없는 무책임한 엄마덕에 고생하다 그 변변찮은 엄마마저 유방암에 걸리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Lola Rose), 의붓아버지가 심하게 폭력적인데도 엄마가 남편을 더 챙기는 바람에 외할머니집으로 피신한 소녀와, 부잣집이지만 전혀 사랑이 없는 가정의 외로운 소녀간의 우정을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평행으로 엮어 그린 이야기(Secrets), 집도 재산도 다 날리고 온 식구가 거의 디킨즈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끔찍한 임시거처인 극빈자들을 위한 '호텔'- 카운슬 하우징을 배당받지 못한 난민들이나 홈리스 가족들이 방을 할당받아 사는 숙소 - 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다 사랑도 전혀 없는 의붓아버지까지 짐으로 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농담을 만들어 내며 사랑받으려고 기를 쓰는 여자아이 엘사의 이야기 (Bed and Breakfast Star)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아원의 말썽꾸러기 소녀 이야기 (The Story of Tracy Beaker) 등등, 다작인 작가라 약간 반복되는 감도 없지 않지만 아무튼 재클린 윌슨은 현재 영국 소녀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이야기꾼입니다. 손 댈 수 없는 톰보이 싸움쟁이 트레이시 비커는 남자애들도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한국에도 재클린 윌슨의 책이 몇 개가 번역된 것 같은데,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건 소개가 되지 않은 모양이에요..

재클린 윌슨은 인터뷰에도 잘 나오는 편입니다. 60이 다 되었지만 사진을 보면 고딕 얼터너티브 요정 대모 같습니다. 짧은 흰머리에 장난꾸러기같은 미소, 주렁주렁 팔찌, 열손가락에 요란한 반지를 끼고 다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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