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미니픽션인 구자명의 <선택받은 돌>과 이 것을 읽고 제 느낌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들어 본
이미지입니다.
"배신자는 아겔다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제 그의 자리를 메울 사람을 새로이 뽑아 성스러운
제 몫을 맡게 합시다!"
열 한 명의 동료들과 백 수십 명의 군중에 에워싸여 그는 이전엔 상상조차 어려웠을 지도자적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열변을 토했다. 집회는 대성공이었고 오랫동안 그의 무리와 고락을 함께 해 온 M이 열 두 번째
사도(使徒)로 선출되었다.
농익은 무화과 향이 예루살렘의 술꾼들을 더욱 혼몽하게 만드는 밤이었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튿날의 전도 일정을 머릿속에서 정리한 후 기도를 올리려고 바닥에 끓어앉아 두 손을 모았다. 이른 아침부터 강행군하며 신들린 듯 보낸 하루의 피곤이 온 몸에 포도주처럼 번졌다. 자꾸만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붙들어 기도에 집중하려 했으나 어느새 수마(睡魔)는 그를 점령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무릎을 꿇은 채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기대고 깊은 잠에 떨어졌다.
얼마후 그의 눈까풀이 엷게 떨리면서 깨어 있는 동안 활동을 억제하고 있던 또 하나의 그가 나룻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 그물을 던졌다. 어느 순간 이상한 기운을 느껴 돌아보니 복부가 갈라 터져 피범벅이 된 가리옷 사람 J가 배 뒷전에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저 배신자가 어떻게?"
영리하고 위악적인 표정이 특징인 J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스치며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하! 형제여, 나도 스승이 선택한 사람이었던 걸 잊었는가?"
클클클. J가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새삼 분노가 불같이 되살아난 그는 벼락같이 달려들어 J의 갈라진 배에서 삐어져나와 있던 내장을 잡아끌어내 물에다 팽개쳤다. 그러자 강한 피비린내가 풍기면서 사방에서 엄청난 고기떼가 몰려 와 둥둥 뜬 그 장기들에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죽어 자빠져 빈 가죽부대처럼 널브러진 J의 시신을 마저 물 속에 던져 넣고는 몰려든 고기떼를 향해 그물을 던졌다. 듣도 보도 못한 대단한 풍어(豊漁)였다. 그러나 기쁜 것도 잠시, 숨이 끊어지는 순간 여한 없다는 듯 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르던 J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삼경이 지나 광야로부터 소쇄한 바람이 불어와 성안의 꿈꾸는 이마들을 서늘하게 스쳤을 때, 그는 마침내 깨어나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이때의 그는 그득 찬 고깃배를 부리는 당당한 사도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스승이 잡혀가던 날 새벽, 스승을 세번 부인하고 나서 닭이 울자 땅에 엎어져 섧게 울던 그 나약한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