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커다란 빅토리안 하우스를 여러개의 작은 플랫들로 쪼갠 집에 맨 꼭대기층에 삽니다. 서로 아주 친하게 지내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대충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정도는 압니다. 제 옆 집에는 조용한 레즈비언 대학원생 커플이 살았었는데 이 사람들이 이사간 후에 매우 요란한 파티 걸들이 이사해 들어왔지요. 원래는 두 여자가 사는 곳인데 여기 저기 문신한 남자들이 더 많이 드나듭니다. 뭐 가끔 그 중의 하나랑 마주치면 수다도 떨곤 해요. 여자친구는 매우 시끄러운 목소리에 말투도 거친 편인데, 여름내 거의 웃통을 벗고 왔다갔다 하는 이 남자는 사람이 부드럽고 목소리도 조그맣더라고요...
아무튼 작은 마당이 딸린 반지하 플랫에도 역시 레즈비언 커플이 살고 있는데요, 한 사람은 귀여운 수다쟁이 미국 사람이고 이 사람 파트너는 무뚝뚝한 영국 사람입니다. 그 미국 여자는 바지런해서 채소도 가꾸고 이웃을 만나면 웃으며 수다도 잘 떨고 맘에 들면 자기가 농사지은 채소도 주는 사람이죠.
근데 며칠 전에 아래층에서 난리가 났더라구요. 매우 크게 싸우는 소리가 나더니 잠잠하길래 창문으로 내려다 보니까 이 커플이 깨진 모양입니다. 늘 명랑하던 미국 여자가 혼자 말로 중얼거리면서 테디 베어를 안고 조그만 마당을 돌고 또 돌고 있더군요. '니가 날 버릴 순 없어. 안돼. 가지마. 이성적으로 얘기해 보자...'이렇게 소리내서 혼자 말하면서 중간에 훌쩍 훌쩍 울기도 하더군요. 너무 안됐지만 본의 아니게 엿듣는 것도 미안해서 얼른 창문을 닫았습니다. 아이구 더워라...
다음날 우편물 가지러 내려가서 이 사람을 만났는데 한쪽 눈에 멍이 들었더라구요...모른체 해 주었지요. 누군가를 매우 사랑하는데 관계가 잘 안되고 저쪽이 싫다고 떠나버리면 정말 힘들겠죠. 게다 저렇게 폭력적으로 끝나버리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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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저녁도 안 먹고 화씨 9/11 영화를 보고 나서 배가 너무 고파 밤 10시 반에 싸구려 중국집에 갔었습니다. 4파운드에 밥 위에 해물과 야채가 잔뜩 들어간 소스를 얹어 주는 주는 메뉴가 있는 집이죠. 늘상 사람이 많은 집이지만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금연석으로 가니까 한 커플이 앉아서 큰소리도 떠들고 있더군요. 같이 간 친구와 저는 두어 테이블 떨어진 곳에 앉았습니다. 워낙 목소리가 커서 그 커플의 대화를 안 들을 수가 없었죠. 근데 듣다보니까 약간 유별난 사람들이었어요.
여자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는데 가슴을 반쯤 드러낸 가죽 상의에 딱 끼는 가죽바지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엄청나게 많은 팔찌와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죠. 목소리가 담배를 많이 핀 걸걸한 소리더군요. 별로 좋지 않은 피부에 짧은 앞머리를 한 단발인데 머리는 칙칙한 자주색으로 염색했구요. 앉아 있었지만 키가 크고 다리가 한없이 긴 글래머란 걸 알 수 있었죠. 남자는 40대 후반인 것 같았어요. 머리가 반쯤 회색이고 평범하게 생긴 반바지 차림의 아저씨였죠. 그 둘이 큰 목소리로 열띤 의논을 하는 내용은....남자가 웹디자인을 하고 여자가 성매매를 하려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남자는 제가 듣기론 좋은 말로 이 여자를 착취하려고 하고 있었구요.
그 중국집은 제 단골이고 한 3년째 드나드는데 대개 중국/일본/한국 학생들이 버글거리는 매우 평범하고 지루한 보통 중국집이었거든요. 마치 굉장히 평범하고 규칙적이며 숨길 것 없이 밝은 불이 켜진 일상 저쪽의 그림자 속에서 별난 생물체들이 천연덕스럽게 빛 속으로 나와 앉아 태연히 먹고 마시는 느낌이 들었어요. 첨엔 약간의 충격이었지만, 밥을 기다리고 먹는 동안 그 사람들의 대화를 내내 들을 수 밖에 없었지요.
그 터프하고 자기 자신은 돌볼 수 있어 보이는 여자가 'Dungeon and Torture'란 웹사이트에서 가죽옷을 입고 채찍을 휘두르는 도미네이트릭스를 연기할 모양인 것 같더라구요.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나 뭐 그딴 걸 다 집어 치우더라도, 이 여자가 웹사이트에서 어디까지 자길 보여주며 뭘 보여줄까를 그 유라이아 힙이랑 같이 매우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는 건 그냥 코메디라고 하기엔 좀 서글펐습니다. 특히 그 남자가 계속 '전화비도 니가 내고, 웹사이트 유지비도 니가 내고..'하다가 '내가 사업상의 위험을 감수하니까 30%는 당연하다' 뭐 이딴 소리를 해대는데, 그닥 똑똑하지 않은 이 여자가 긴가 민가 하면서 그걸 믿는 눈치인 것도 말이죠.
게다 그 둘은 진짜 커플이더군요. 여자가 믿질 않는 눈치니까 이 남자 정확히 세션 당 얼마나 버냐, 얼마나 걸리냐 등을 소리로 물어보면서 토할 것 같은 톤으로 뭐라고 속삭이니까 여자가 그 큰 목소리로 - 이 사람은 가는 귀도 좀 먹은 것 같았어요. 매번 다시 물어보고 이 남자의 질문을 한 다섯 배쯤 큰 목소리로 되풀이 했으니까요 - 'What? I'm not telling you that. You are sick' 을 또 되풀이 하더군요. 그 질문은 검열감이므로 여기 옮기진 않겠지만, 저는 이미 식욕을 잃었던 데다가 이 남자의 기름기 많은 목소리와 아부의 톤 때문에 젓가락을 내려 놓고 말았습니다. '너 예쁘다, 진짜 멋있다...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니?' 등등..
그 여자는 남자의 아부에 기분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돈을 내더니 일어나 둘은 거의 껴안다 시피해서 나가더군요. 디킨즈는 19세기에 끝난게 아니더라구요.
그 여자의 이스트 런던 코크니 말투와 그러면서도 자신감 없어 하면서 의문스러워하던 톤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성매매는 어떤 경우든 참 칙칙하고 지저분하고, 건조하며 섹시하지 않은 비즈니스이고, 그 여자처럼 비교적 자기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더라도 성매매의 고리에 끼어 있으면 어떤 경로든 착취당하기 쉬운 취약한 입장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 1.5m 거리에서 그걸 보고 있자니까 정말 실감이 오더군요.
뭐 동정하거나 도덕적인 설교따위가 떠오른 건 아닙니다. 자유주의자인 어떤 교수가 '자발적 선택'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나서요. 세련된 리버럴 중산층인 그 교수, 과연 교수직과 파트 타임 출장 성매매와 파트 타임 인터넷 도미네이트릭스직을 나란히 놓고 아무 편견없이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과연 저렇게 성매매 인구가 많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성매매가 리비도가 너무 크면 선택할 수도 있는 직업의 중의 하나? 너무 많은 변수들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건 정말 부도덕하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