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노예.

  • mithrandir
  •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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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도 죽기 전에 캘빈 클라인 바지 한 번 입어보자"는 지극히 불건전한 사고방식으로(사실 그건 아니고, 우중충한 색깔에 적당한 가격의 청바지를 찾아 터미널 지하상가부터 백화점 브랜드 매장까지 뒤져봤는데, 온통 밝은 색이나 화려한 워싱밖에 없더라구요. 역시 내 취향이 이상한 건가.) 백화점 세일 행사장의 3만9천원짜리 CK진을 한 벌 샀습니다. 거의 6~70퍼센트 세일가라고 뿌듯해 하며 집에 왔는데... 그러면 그렇지, 내 복에 무슨 캘빈 클라인. 그냥 재고 떨이가 아니라 하자가 있는 제품이더군요. 매장에 직접 찾아가서 수선을 맡길 생각이긴 한데, 속아서 샀다고 생각하니 무지하게 불쾌합니다. 쬐끔 우울하기도 하구요.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동네 수선집에서 고치면 옷이 울어버리기 때문에 꼭 매장에 직접 가서 맡겨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집에 있는 청바지들이 단체로 수명을 다해가고 있기 때문에 한 벌 필요하긴 한데. 저도 친구들처럼 아예 찢어서 입고 다녀볼까요. 그치만 겨울엔 추울 것 같아서...

말이 나온 김에, 보통 청바지 한 벌에 얼마정도 소비하시나요? 제가 가진 청바지 중 가장 싼 건 세일에서 산 뱅뱅, 가장 비싼 건 역시 세일에서 산 폴로진인 것 같습니다. 특이한 워싱이나 장식이 아닌 평범한 색상의 남성용 청바지라고 하더라도, 브랜드에 따라 색이나 디자인이 좀 다르긴 하더군요. 저야 어차피 키가 작은 편이니 입었을 때 "다리가 길어보이는" 것 따위는 별 신경 안쓰는데, 그래도 고등학교때부터 기억을 떠올려보면 입으면 편한 게 있고 불편한 게 있더라구요. 항상 "비싼만큼 편하고 튼튼하다"는 공식이 통하지 않으니 문제이지만. 제 뱅뱅 청바지는 산지 몇달 안되어 뒷주머니가 닳아버렸는데, 비싼 돈 주고 장만했던 리바이스 진도 이 뱅뱅 청바지와 비슷한 시기에 앞주머니가 튿어져 버렸거든요. 그렇다고 종류별로 다 사입어볼 수도 없으니 원.


2.
3세대 아이포드는 여전히 세일중. 오늘 소공동 롯데 백화점에 들린 김에 물어봤더니 4세대는 9월달 쯤 들어올 예정이고, 그 전까지는 3세대 재고 분량을 계속 세일할 모양입니다. 15기가 짜리를 3십 4만원인가에 파는 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3세대 20기가의 세일 가격이 4세대 20기가 가격이랑 비슷할 거라는 걸 생각하면 별 메리트가 없는 듯. 이 4세대의 재고 떨이 세일이 실현되기 위해 5세대가 출시될 때는 언제쯤일까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2년 정도 기다리면 되려나? 이 와중에 멀쩡하던 아이리버 슬림엑스 cdp가 갑자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액정의 곡 정보랑 나오는 노래랑 따로 노는 거 있죠. 맨날 아이포드 이야기만 하면서 징징징거렸더니 얘도 삐졌나봐요. 아니면 as 한 번 받을 때가 된 건가...

아, 소공동 롯데 백화점이나 코엑스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포드 미니를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용산에도 전시되어 있다고 하던데... 역시 3세대 아이포드가 그러했듯이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멋지더군요. 사진으로 볼 때는 "애플의 디자인도 이제 맛이 간 건가?"싶었는데. 디자인하니까 생각나는데, 요즘 나오는 아이리버 제품들은 디자인이 영 맘에 안듭니다. 이노 디자인과 손잡고 처음 나온 제품들은 꽤 괜찮았는데. 차라리 삼성의 옙이 더 이뻐보이긴 하는데 이쪽은 기능이 별로인 듯 하고...

그러고보면 제가 그토록 숭배(?)했던 애플이나 소니의 노트북들, 요즘 나오는 모델은 별로 안이뻐 보이더군요. 단지 제 취향이 그런 거라면 할 말 없지만. 오히려 이번에 TG에서 나온 - 노골적으로 애플을 참고했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컨셉으로 소화해낸 - 노트북이나 올인원 데스크탑들이 훨씬 세련되어 보입니다. 특히 아이맥 LCD모델을 참조한 듯한 TG 삼보 신제품은 아주 맘에 들더군요. 까칠까칠한 플라스틱과 어정쩡한 스댕 마크의 아이맥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애플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실 일체형이라는 것 빼면 꼭 아이맥을 참조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구... 성능은 잘 모르겠지만, TG는 언젠가부터 디자인이 제맘에 쏙 드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3.
줌도 안되고 조금만 어두워도 사람이 시커멓게 나오는 u10에 지치다 못해, 가을 쯤을 목표로 디지털 카메라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번엔 줌도 되고 수동 기능도 있는 "실속있는" 걸로 장만해보려구요. 소니의 w인가 하는 모델이 꽤 맘에 들더군요. 알카라인 전지도 쓸 수 있고, 필요한 기능은 다 있고. 크기가 좀 크긴 하지만 어차피 가방에 넣고 다닐 거니까. 근데 웃기는데, 소니 코리아의 정품이랑 일본 내수 제품의 가격 차이가 거의 15만원 가까이 되더라구요. 소니의 웃기지도 않는 고가 정책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소니 코리아 나빠요"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대답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혹시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단지 "비싸면 잘 팔리니까"? 요즘 우리나라 소비 심리를 생각해본다면 그것도 아닐 건 같은데...


4.
물건을 아껴쓴다는 게 꼭 좋은 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8년 가까이 입은 청바지, 5년 가까이 써먹은 공짜로 얻은 가방, 3년 정도 바꾸지 않고 써온 안경알. 이런 것들 걸치고 있으면 뿌듯하기도 하고, 남들한테 "나 알고보면 알뜰한 사람이야"라고 과시할 꺼리도 되고(실제로는 그 반대일 뿐더러 정말 알뜰하다면 옷을 10년은 아껴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군것질에 펑펑 써대는 돈만 아껴도 양복 한 벌은 해입을 수 있을 걸요.), 무엇보다 실제로 지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근데 문제는, 이런 물건들이 한꺼번에 수명을 다해버릴 때 갑자기 나가는 지출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거죠. 청바지는 늘어지고 찢어져서 질질 끌리고, 공짜 가방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안경엔 기스가 나서 눈이 다 침침하고, 신발은 완전히 망신창이가 되고, 티셔츠란 티셔츠는 모조리 목이 늘어나 있구. 이런 일들이 우연히도 같은 시기 - 그것도 아주 바쁜 시기 - 에 벌어지니까 오히려 계획있는 소비가 어렵더라구요. 어머니 말씀대로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은 차근차근 장만"했다면, 다들 확실히 맘에 드는 물건으로 알뜰하게 잘 구입할 수 있었을텐데. 필요한 물건은 있을 때 장만하라는 어머니 말씀이 "당신 옷은 안사더라도 아들 물건은 비싼 걸로 장만해주고 싶으신" 어머니 내리 사랑인 줄만 알았지, 이성적 사고에 입각한 생활의 지혜 전수(?!)인 줄은 몰랐지 뭡니까.

가방이야 무지 매장에서 적당한 걸 하나 장만했고, 마침 이번 학기 장학금도 있고 집에도 당장 여유가 있는 편이라 돈 걱정은 없지만(아무래도 벌이가 없는 학생이니 일단은 아끼고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든요. 매년 올해 여름같다면 아르바이트 할 시간도 모자랄 뿐더러 3,4학년 때 들어갈 돈이 걱정되기도 하구.), 급하게 돌아다니다가 바꾼 안경 알은 4만원이나 하는 주제에 햇빛만 받으면 번쩍거리고, 바지 이야기는 앞에서 했구. 그 외에 요 한두달 동안 급하게 마련해야 했던 게 반바지, 반발 티, 운동화 등등 계산이 안나올 정도입니다.

에... 결론이 뭐냐구요? 여러분들은 저처럼 괜히 알뜰한 척 하다가 피보지 말구, 정말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그때 장만하시라구요. 정말 여유가 된다면 아이포드니 디지털 카메라 같은 거 가끔씩 질러주셔도 좋구요. 물론 갖고 싶은 것 마다 질러버리다가는 어느날 "카드 빚에 몰린 젊은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내용으로 매스컴을 타게 될 지도 모르지만.


5.
어릴 때는 정말로 "남자는 쇼핑을 싫어한다"라고 생각했었죠. 남자가 싫어하는 게 사실은 "여자친구나 어머니가 쇼핑할 때 따라가는 것"이고 "자기 옷 고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참 신기한게, 요즘 제 주위의 여자들 중에서는 "그냥 어머니가 사다주시는 옷이나 언니가 입던 옷"을 입고 다니는 애들이 늘어난 반면에, 제 주위의 남자 중에서는 "화려한 장식의 청바지"나 "특이한 디자인의 선글래스"를 갑자기 질러버리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냥 우연이겠죠?


6.
다시 가격대 성능비 이야기. 요즘 5천원짜리 흰 티를 자주 입고 다니는데, 편할 뿐더러 빤다고 늘어나는 일도 없어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만원 넘게 주고 산 메이커 있는 티셔츠는 목이 쭈글쭈글해져서 집에서만 입고 있어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죠. 군대 말년 시절에 "좀 아껴신다가 제대하면 운동할 때 신고 다녀야지"라는 생각으로 샀던 2만원 짜리 운동화는, 나름대로 아껴 신었음에도 불구하고(말년 병장이 운동화 신고 뛰어다닐 일이 뭐 그리 많았겠어요?) 몇달을 못버티더군요. 반면 나이키 운동화 신고 금방 망가졌다는 친구는 적어도 제 주위에는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신었던 리복 운동화도 꽤나 오래 갔었죠.

결국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나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은 아닌가봅니다. 뭐 당연한 거겠죠. 그렇다면 입소문이나 친구들의 추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옷 하나 살 때마다 이런 걸 일일이 알아볼 수도 없구. 예를 들어 지오다노는 한창 "빨기만 하면 준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요즘은 그 반대로 "지오다노 좋더라"는 소문이 돌더라구요. 아마 저와는 반대로 전엔 좋다는 소문을 듣다가 요즘은 별로라는 소문을 들으신 분들도 계시겠죠. 앞에서 나이키 이야기도 했지만, 운동화만 하더라도 "발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구"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차피 2만원 짜리나 10만원 짜리나 닳기는 똑같아"라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구요.

그러니 결론은... 그냥 운에 맡겨야 하려나봐요. 아니면 어릴 때 처럼 옷차림새에 신경 안쓰고 어머니가 사주시는 옷이나 입는게 맘이 편할 것 같기도 하지만... 문제는 어머니가 저에게 입히시려는 옷이 "번쩍이고 맨들거리는 재질의 하늘색 티셔츠"라거나 "검은색의 딱 붙는 가죽 자켓"이니 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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