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옷을 장만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2년 이상을 학생으로 살면서 입고 싶은 것 아무거나 걸치고 다니는데 익숙해 졌는데 새삼 어떤 상황에 맞는 옷을 신경써서 차려입어 보려니 무척 번거롭네요. 청바지 두어벌에 정장 바지 두어벌로 4계절을 나는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날마다 다른 코디로 일주일을 보내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대체 내일 아침에는 또 뭐랑 뭘 맞춰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입을 만 한 것 중에 절반은 다려 놓질 않았으니 눈물을 머금고 제외하고...
제가 마지막으로 정장류를 장만했던 2년 반 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은 저한테 상당히 불리해요. 뭣보다도 데님이 전혀 어울리질 않는데, 이런 청바지의 광풍 속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밑위 짧은 섹시한 진에 다채로운 색상의 하이힐, 여성스런 탑의 삼박자 중에서, 제가 소화할 수 있는 건 여성스런 탑 하나 뿐이네요. 4-5년 전의 부잣집 맏며느리 스타일이 차라리 하체 비만에 키도 큰 저한테 어울렸어요.
물론 청바지를 피하고 정장을 고수할 수도 있겠지만, 업계가 업계다 보니 이사가 진 입고 출근하고, 부장이 단추 풀어헤치고 금목걸이 하고 다니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트렌드에 제일 민감한 사람들이니 디자인과 소재만 들이밀어도 몇년도에 생산된 스타일인지 얼추 감 잡습니다. 옷 보다 비교적 유행을 덜 탄다는 악세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홀로 꾸준히 유행에 등돌리고 트레디셔널을 고집하기도 힘듭니다. '스타일이나 성격이 뭐가 중요해, 일만 잘 하면 그만이지'라는 말을 믿기에는 이미 사회생활을 오래 한 탓이겠지요.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옷만으로 평생을 보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예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다 나른 정장과 구두들이 한가득이니), 하는 수 없지요. 분위기에 맞는 옷을 새로 장만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정말로 오랜만에 관심을 가지고 매장들을 둘러봤네요. 예전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이것 저것 고르는 재미도 있고,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어요. 물론 원하는 디자인이 안 어울려서 많이 괴롭긴 했지만요. 당분간은 캐쥬얼의 바다에 퐁당 빠져봐야겠어요. 아아 이 데님의 파도를 잘 피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끝물에 발을 담그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