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 앤 코울터

  • ginger
  •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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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드뎌 장화 홍련을 극장에서 봤습니다. 예고편 자막 상태를 보고 좀 걱정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번역을 꽤 정확하게 했더군요. 감정이 깊고 복잡한 대사나 빠른 속사포가 아닌다음에야 틀리고 말 것도 없겠지만 말이에요.

촬영장소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풍경을 보니까 갑자기 한국이 좀 그리워 지더군요. 종종 엄마가 보고 싶은 것처럼. 근데 그밖엔 참 낯설었어요. 일단 집도 그렇고, 일본 소설을 번안해서 영화화한 것 같단 느낌이 들더라구요. 모리스 벽지와 삐거덕 대는 식민지 시절의 일본식 집과 서양 골동품 가구 같은 것들 -  일본이란 필터를 통해 들어간 한국식 '서양'을 서양에서 보니까 기분이 묘하더군요.

그런 배경에서 새카만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예쁜 소녀들을 보고 있자니까 제 시선에 타자의 시선이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날 백인들을 주로 보다 몇 년 만에 부모님을 만나고 '앗 우리 엄마 코가 저렇게 조그맣고 동그랗단 말인가' 하고 새삼 느낀 것하고 비슷하죠. 그냥 예쁘다가 아니라 '동양'스럽다란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그러고 보니 문근영은 어쩌면 그렇게 귀엽습니까...염정아는 솔직히 귀신보다 더 무섭더군요. 그사람 코는 성형때문인지 굉장히 부자연스러웠고 코만큼이나 대사도 어색했어요. 임수정도 코가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이 배우가 좀 더 연기를 깊이 있게 잘했으면 좋지 았았을까 싶더군요. 역에 비해 좀 평면적이지 않나 싶거든요.

발과 종아리 페티시가 드러나는 장면들과 어린 소녀들의 월경 장면 같은 건, 특히 문근영의 경우 그 어려보이는 얼굴과 몸을 흩고 지나가는 카메라의 시선이 결합되어 불편하더군요. 그리고 서양식으로 꽤나 formal해 보이는 디너 테이블에서 외출할 것 같이 차려입고 밥을 먹고는 일어났는데 맨발인 건 좀 웃겼지요.

이제 놀랄 준비를 해...하듯이 흘러나오는 음향효과나 긴 검은 머리로 얼굴을 가린 장면 같은 것도 좀 진부했구요. 하지만 서양관객들한테는 긴 검은 머리가 꽤나 무서웠나 보더군요. 영화 끝나고 나가는데 제 앞에서 나가다 뒤를 돌아본 여자가 뒤에 따라 나오고 있는 저를 보고 정말 깜짝 놀라더군요. 의례 자기 남자친구가 뒤따라 나오는 줄 알았는데다 영화 땜에 더 놀랐다나요. 같이 웃었죠.

반전이 있은 후 영화는 안티클라이맥스였습니다만, 공들여 잘 만든 한국 상업영화를 보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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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듀나의 리뷰를 읽어보니 겹치는 부분이 좀 있더군요. 듀나님도 발 페티시를 언급했네요.

이렇게 해서 Fat girl 감상문은 또 밀리는군요. 이러다 다 잊어버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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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인디펜던트지를 읽다가 앤 코울터(Ann Coulter) 인터뷰 기사를 보고 기가 막혀서 우습기도 하면서 열 받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미국의 왼쪽에 마이클 무어가 있다면 오른쪽엔 앤 코울터가 있습니다. 이사람은 정말 해도 너무하도록 무식하게 막 나가는 극우파죠. 인종차별적 언사도 서슴치 않습니다. 이 사람한테는 부시보다 왼쪽은 무조건 좌파입니다. 티비에 나와서 남의 말은 전부 자르고 자기 말만 다다다다 하며, 남의 말을 비틀고 왜곡하는 데 선수인 이 분의 주옥같은 어록이 너무 길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리버럴들이랑 대화를 하는 방법은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때리는 것이다
재산이 있는 사람한테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
냉전때는 적이 살인자이긴 해도 백인에 제정신인 인간들이었는데 요즘은 미친 무슬림들이다.
무슬림 국가에 전부 침공해서 모조리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
개인의 주권을 이야기한 존 스튜어트 밀은 리버럴이 아니라 보수다


코울터는 아버지가 노조 부수기 전문 변호사였답니다. 이걸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하지요. 금발에 비쩍 마르고 미니스커트를 즐겨입는(그러고 보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랑 비슷한 외모네요) 잘 나가는 기업 변호사 출신인 이 미국 극우의 잔다르크는 부시와 체니 일당이 빙빙 돌려말하는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도록 도와줍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부시를 지지 하는지 잘 보여주죠. 앤 코울터가 하는 소리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농담 같습니다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인물의 끔찍한 주장보다 더 끔찍한 건, 이사람이 미국에서 매우 잘 나가는 극우 논객이며, 쓰는 책마다 족족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이고, 그런 미국의 대중들이 부시를 당선 시켰으며, 그 빌어먹을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이라크 침공같은 대형사고를 치고 있다는 겁니다.
* '일반화'인가요? :-)


리버럴한 유럽에선 정말 상상도 못할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면서도 미디어에서 잘 나가는 이 사람은 영국에선 극우 파시스트당인 BNP조차도 부담스러워할 것 같더군요. 물론 적지 않은 숫자의 열렬한 지지와 더불어 미국내에서도 아주 열렬한 미움과 반대를 받는 사람이긴 하죠.

여기 한가지 트위스트가 있긴 합니다.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이사람은 물론 안티 페미니스트입니다. 1950년대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남자처럼 글을 쓴다는 게 칭찬인 줄 알고 있으며, 게이를 미워하고, 남자다운 남자를 찾습니다. 좌파 남자들은 girl-boys라고 부르는 사람이에요. 현재 미혼이지만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면 당장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죠. 물론 낙태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람이 '여자'기 때문에 먹는 엄청난 성적인 욕을 보면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tele-bimbo라든가 fembot은 점잖은 편이죠. bitch에 whore에...이런 걸 보면서 미국 페미니스트들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확실히 '여자' 여서 더 먹는 욕이 있거든요.

폴라 존스가 성희롱으로 클린턴을 고소했을 때는 존스 쪽 변호사로 활약하셨다는데, 그게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략 때문이었죠. 부시 시니어가 임명한 초보수 판사 클레런스 토마스를 성희롱으로 고발한 아니타 힐더러는 거짓말장이라고 불렀으니까요.


비슷한 예는 한국에도 있죠. 한국의 정치 풍자에서 성적인 은유를 사용할 때가 많고, 성적인 것이 거의 성차별적인 사회다 보니 거의 많은 정치 풍자가 성차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한겨례 그림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침실에서 미군이 부인을 강간하는 장면을 사용한 만화를 올린 것도 좋은 예죠. 근데 '남의 안방에 여자가 드러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것'이란 명언을 한 자기네 당 의원한테는 침묵하면서 유독 박근혜를 해피투게더의 장면에 대입한 패로디가 나오자 갑자기 '여성'을 들먹이는 한나라당이나, 이런 일에 여성단체(동네북이죠)는 친노무현이라 가만히 있냐던 신문들, 정말 웃겼어요. 어디서 페미니즘은 줏어들어가지곤 이용해 먹으려 들다니.

앤 코울터가 성희롱 사건을 정략에 이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극우파들은 하는 짓거리들이 비슷 비슷해요...그러고 보니 거슬리는 상대방이 여자면 성적 모욕을 주는 건 좌파 남자들도 어느 나라건 만만치 않군요...에혀.


앤 코울터 자신도 사실 정말 1950년대, 여자는 보여지기만 하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시절같았으면 집에서 남편 셔츠 다림질이나 하고 있었겠죠. 지금처럼 공공 영역에서 시끄럽게 굴지 못하고 말이죠. 아무리 코울터가 재수가 없어도 앤 코울터 없는 세상 보다는 앤 코울터 있는 세상이 좀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울터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와서 미국의 극우적인 대중의 입맛을 채워주었을 테고, 그 잘난 역할에도 성별에 따른 접근제한이 있어서 모조리 남자들만 나와서 떠드는 걸 보는 것보단 낫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심정이죠. 저런 사람조차도 결국은 페미니즘의 덕을 본 거네, 하면서 슬그머니 웃게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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