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심리학자인 수잔 캘빈이 왜 20대의 미녀야? 저 정도로 로봇이 발달한 시기라면 적어도 중년은 되야 맞지 않나? - 영화잖아.
저 근육형사는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 베일리에서 따온 것 아닌가?
베일리가 그렇게까지 단순한 근육맨이었던가? 베일리는 근육형이 아니라 두뇌형이라구. 아니, 그보다 시대가 안 맞잖아? - 영화잖아.
로봇 0원칙이 등장하는 시기도 저 시기가 아닌데? - 영화잖아.
더구나 로봇 3원칙은 저렇게까지 유연성이 있는 법칙이 아니라구! 인간을 공격하다니! 그런 짓을 하면 당장 양전자 두뇌가 멈춘단말야! - 영화잖아.
분열된 자아라는 것을 영화보는 동안 느꼈다고 해도 별 과장은 아니겠습니다.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투덜거리며 트집을 잡는 SF독자로서의 감성이 자리잡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런 트집을 완전히 무시하며 잘 만든 영화를 즐기는 액션영화 팬으로서의 감성이 자리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제 기준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잘 만든 액션영화입니다. 그리고 잘 만든 & 비주얼이 멋있는 SF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럼 잘 만든 아시모프의 영화는? 유감이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군요. 아이로봇의 많은 구성요소들을 아시모프의 소설들에서 빌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하나로 꿴 사고방식은 아시모프의 세계관이 아니라 액션영화의 공식이니까요. 영화 아이로봇은 아시모프의 각각 다른 소설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떼어다가 할리우식 양념을 쳐서 끓여낸 찌개와도 같습니다.
아시모프의 세계관에서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입니다. 인간과는 다른 모랄을 가지는 별개의 종족으로 보일 정도죠. 로봇 0원칙 역시 로봇이 인간과 오랜 시간(한 2천년쯤?)을 지낸 후에 깨닫게 되는 진리 같은 것입니다. 물론 아시모프가 로봇들이 인류의 역사에 간섭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댄 티가 좀 납니다만, 나름대로 그럴듯한 추론이기는 합니다. 더구나 유니크한 로봇 중 하나였던 지스카드는 로봇 0원칙을 인류에게 적용하기 위해 지나치게 인류의 선택에 간섭했다가 로봇 3원칙의 위반으로 기능이 정지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처럼 태연히 인간의 얼굴에 주먹질을 할 수 있는 로봇은 아시모프의 세계관에 의하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즉시 양전자 두뇌에 충격을 받아서 그대로 작동이 중지할 테니까요.
어쩌면 영화 아이로봇은 아시모프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그냥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미래상들.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모습(여러가지 의미에서)의 인간들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두 가지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둘 다 아시모프의 원작과는 별 관련이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NS-4와 NS-5의 집단 전투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인간의 명령에 따르는 단순한 기계와 독자적인 지성을 가진 새로운 종족인 로봇의 차이를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어쩌면 먼 훗날 도달하게 될 '로봇 비전'에서는 그 전투를 로봇이 종족으로서 인류와 분리되는 깃점이었다고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많이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로봇 비전'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실상의 반란이 실패한 후 집단 수용당하는 NS-5들의 미래가 고난에 차기는 하겠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다는 메세지를 보여주는 바로 그 장면 말입니다. 메시아 신화의 탄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꿈이 집단무의식의 발현이며 신화 역시 그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꿈을 꾸는 로봇의 존재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겁니다.
ps.
음...... 'I, Robot'이라는 아시모프의 단편집이 있습니다. 영화와 같은 제목이고 영화에서 자기식대로 가져다 쓴 요소들이 여럿 있지만 보다 논리적이고 흥미있는 SF입니다. 역사심리학을 창작해낸 아시모프의 글 답게 로봇심리학을 직업으로 가진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수잔 캘빈이죠. 로봇 3원칙도 여기서 처음 등장합니다. 저는 이 단편집에서 교정보는 로봇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인간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거짓말을 지시받았다가 번복하는 로봇과 그 과정을 로봇 3원칙에 근거해서 이끌어내는 캘빈 박사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로봇이 교정을 대신해 준다는 점이, 심지어 논문작성이나 창작에 대한 적절한, 그리고 아주 유용한 조언까지 해 준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격만 적정하다면 당장 한 대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