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 나가면서 줄곧 <20세기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20세기 소년>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지만, '친구'의 정체도 밝혀졌고, 옛날 이야기도 거의 다 써먹은 상태라 거의 종반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켄지의 행방을 거의 언급하지 않은 상태라 얼마든지 분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액션 장르나 옴니버스 구성도 아닌데, 한가지 이야기로 단행본 20권, 30권을 넘겨버리면 조금 위험하지
싶습니다. 물론 충분한 역량을 가진 작가라는 건 인정하지만, 노파심에 자꾸 레이코 시미즈의 작품들이
생각나네요 :-P
그에 비해 <그것>은 80년대에 쓰여졌고 이미 완결이 된 소설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과연
<그것>을 읽었을까요? '스티븐 킹이 <20세가 소년>을 읽는다!'는 것보단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네요.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성향을 생각해볼 때, 스티븐 킹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말 못하지요. 둘다
굉장히 오지랖이 넓은 편이구요. 음. <몬스터>는 정말이지 굉장했습니다.
단순하게 비교해본다면, 물론 만화가 더 만화같습니다. 만화같다는 말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좀 떨어
진다는 이야기겠죠. 과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나 '친구'가 지배하는 세상, 텔레비전, 바이러스 백신
같은 것은 다소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재미는 있지요. 어린이의 공상에서 출발한
만화니깐, 굳이 어른 기준의 현실성을 들이밀 필요는 없습니다. 만화는 일단 만화니까요.
하지만 그 점이 더 무섭습니다. 어린이의 공상은 화장실의 얼룩도 귀신으로 변신시킵니다. 누구나
그런 어린 시절을 거쳐왔구요. <20세기 소년>은 기억도 날락 말락하는 어린 시절의 공상을 길게 되돌려
놓고 현재와 끼워맞춰, 현재를 송두리채 바꿔놓습니다. 바로 그것이 무서운 거지요. 어린 시절의 공상은
전혀 우습지도 않고, 하찮지도 않습니다. 독자들은 즐겁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가 예기치 않은 거대한
음모를 맞이하고, 흠칫 흠칫 놀라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등장 인물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고, 보다 근본적인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릅니다. 스탠리는 욕조 벽에다가
피로 '그것(IT)'이라고 쓰고 죽지요. 타살인지 자살인지 정확히 언급되진 않지만 아무래도 자살로
보여집니다. 자살과 타살의 경계는 흐릿하고, 둘중 어느 것이라 해도 흐름상 별 차이는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다 그렇듯이 일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것이다라고 마음먹고 읽기 시작하지만, 어느새 이야기에 홀려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포는
여름에나 잠깐 나도는 납량특집성을 벗어나 현실로, 현실로, 내 등뒤로 바짝 다가옵니다. <그것>에
나오는 등장인물 각각의 위기는 바로 내 자신의 일상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음. 결말 부분이 너무 힘이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관념적으로 흘러가고,
데리의 하수관이 거미로 연결되는 설정이 조금 조악스럽긴 하지요. 처음부터 광대로 형상화된 그것이
'어떤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데리 자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려운데, 나중에서야 거미로
형상화시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억지스럽습니다. 그리고 성행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
의도도 너무 현실적이라 서글픕니다. 그것도 비벌리 혼자서요. 아직 어린 아이인데 말이죠.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1부 '노란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에 나오는 정도의 초현실적 묘사라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만 한데 말이죠. 물론 애초에 광대가 어떤 인물이었다면 이렇게 길게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겠지요. 1800여쪽이 넘는 다소 긴 분량은 다소 만화적인 상황 전개를 차치하고서라도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편입니다. 모든 것을 한번에 알려주지도 않고, 서서히 등장 인물들을
조명해나가는 방법은 상황 정리가 되기 전까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20세기 소년>도 마찬가지인데요, '친구'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초반의
추리전에서 저는 오쵸가 '친구'인줄 알았더랬습니다.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인물들은
꽤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시간대별로 아군, 적군, 착착 정리가 되었지요. 후쿠베를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건 작가의 노림수일 겁니다. 소외와 관심의 스팩트럼이 아마도 <20세기 소년>의
주된 이야기 거리일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두 작품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유년 시절이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는 저변에 깔린 생각은 공통적이지만, <그것>이 좀더 많은 운명적인 담론을 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결말이 어떻게 날진 모르지만)<20세기 소년>은 시츄에이션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보여주기 기법은 놀라우리 만큼 비슷합니다. 하나의 클리셰가 될 정도로요.
두 작품 모두 어린 시절과 현재 시점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거지요. 시점 변환은 아주
능수능란하고요. <그것>에서 '그것'과 싸우는 어린 시절과 현재 시점의 오버랩은 특히 탁월합니다.
<20세기 소년>은 시점 변환이 가장 커다란 무기이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수단이구요. 너무 많이
돌려서 전혀 모르는 부분부터 시작할 때는 좀 어지럽긴 하지만 일단 단서가 보이기 시작하면 아귀가
착착 맞아들어가는 것이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두 작품이 생각하면 할 수록 비슷하군요. 발견(!)이라는 것 때문에 너무 관대해져버린 건 아닌지.
박식했던 우라사와 나오키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부풀리고 있다고, 그건 독자의 지식에 대한 욕구를
무시하고 있는 기만적 처사라고 이죽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마스터 키튼>은 여느 신문 국제, 문화면에
슬픔과 쓸쓸함의 광고지를 덮어 씌워 놓은 것 같았죠. 오지랖대왕이라고나 할까요?
..... 리처드는 활력처럼 열띠고 흥겨운 느낌이 실내에 팽배해짐을 느꼈다.
지난 이삼 년 동안 주로 파티에서 코카인을 입에 댄 적이 열 번 정도 있는데, 거물급 디스키자키라면
집 안에서 편안히 뒹굴며 코카인을 흡입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의 느낌은 코카인을 흡일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다르다. 좀더 순결해지고 더 많은 마약을 주사한 느낌이라고 할까. 어렸을
때는 날마다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다. 설령 어린 시절에 그 활력의 좀더 깊은
근원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해도(그런 적이 있기는 했는지 사실 기억할 수 없지만), 아마
그것이 눈동자 색깔이나 지금도 보기 싫은 기형적인 발가락처럼 어쩔 수 없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정확하게 입증된 것은 없다. 어린 시절 맹목적일 정도로 갈망하고 이끌렸던 힘과
활력은 저절로 소진된 것이 아니라, 열여덟에서 스물네 살 사이 슬그머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는 훨씬 둔감해지고 마약처럼 공허한 무엇이 여전히 힘과
활력이라는 이름을 하고 대신 채워 왔을 것이다. 그것은 열광정인 광고업자의 말마따나, 목표
의식이나 삶의 지향점 등등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다. 대단할 것도 없는 얘기다. 펑 소리와
함께 단숨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까. 리처드는 무섭다고 생각했다. 광대의 풍선 속임수처럼,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단숨에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한다니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을까.
타이어의 바람처럼 우리 몸속에서 아이의 모습이 슬그머니 새어 나갔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느날 거울 속에서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청바지를 입고,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보브 시거의 콘서트에 가며, 머리를 물들일 수도 있지만 거울 속에 유년의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자는 사이 이빨 요정의 방문이라도 받은 것처럼 어느새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다.
<그것>에서 인디언식 연기 구덩이 의식 회상장면이 나오기 전 리처드의 관점에서 서술된
부분입니다. 너무 많이 옮겨와 버려서 호흡이 길어졌지만, 이 정도는 <그것>의 기본 단위입니다.
상황설명이나 묘사는 간결하고 정확하지만, 생각은 설득력있는 비유나 예를 많이 이용해 좀 길게
말하는 경향이 있지요.
음. 바로 이런 부분들이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를 좋아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이정도 통찰력이면
전달 방식이 다이렉트이긴 해도 본격 문학 작가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또 빌의 관점으로
서술된 끝 부분(Bill Denbrough Beats The Devil(Ⅱ))은 앞서 나온 소제목을 잘 따와서 다시 한번
똑같은 제목으로 마무리를 한 셈인데, 역시 재기발랄하면서도 탁월합니다. 너무 요령부린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런 부분들이 꽤 많거든요. 괄호나 하이픈의 남발같은 거요.
보수적인 독자들에게 이런 방법론만 좀 비위를 잘 맞출 수 있게 조절하고, 초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강도를 조금만 낮추면 어찌 어찌 노벨문학상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자연 작가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것이지 너무 권위에 부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빌도 이런 말을 하긴 하지요. 소설을 소설자체로써 봐달라고. 사회 의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스티븐 킹을 늘 탁월한 이야기꾼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
우라사와 나오키도 마찬가지지요. 스토리텔러로써 소재 선택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작화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편이고요. 그저 시덥지 않은 만화가로만 보기엔 아깝다는 거지요.
어찌됐든 <그것>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걸로,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운명인 걸로, 빌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만 흐르는 걸로 끝났습니다. 마치 엎질러진 물이 증발해버리는 것처럼요. 물도 미묘한
흔적이 남긴 하지요. 하지만 딱 그 정도 입니다. 아무리 치명적이고 위험한 물이었다고 해도요.
<20세기 소년>의 끝은 솔직히 예측이 좀 어렵습니다. 켄지 일행이 세상을 바꿀지, 바꾸고 나면
그 후의 세상은 또 어떻게 될지, 변수들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야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몇몇에 의해 바뀌는 세상이 이제껏의 설정에 반하지 않고, 만화 속에서 잘 녹아들길 바랄 뿐이죠.
꽤나 즐거운 책읽기였습니다. 스티븐 킹이 늘 그렇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