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d Queen, etc.

  • ginger
  •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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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Red Queen

어제 서점에서 Margaret Drabble의 [The Red Queen]을 읽다가 그냥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드카버는 안 사려고 했는데 약간의 세일을 하더라구요...오늘 새벽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현재로선 매우 흥미롭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영감을 받아서 쓴 글이긴 하지만, 여기 1부에 나오는 1인칭 목소리는 우리가 아는 18세기 조선 여성의 목소리로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목소리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현재형으로 업데이트된, 여러 해설자와 번역자의 이해가 덧붙여진 것이며 무엇보다 드래블 자신이 이해한 목소리입니다. 따라서 드래블의 1인칭 세자비는 볼테르와 인류학과 심리학을 이해하며 지상에서 자신이 살았던 삶을 자꾸 재구성하고 이해해 보려는 사람이 되지요.

근데 다음 구절은 정말 묘하더군요. 영조가 아직 어린이인 며느리한테 'Keep your linen white' 왜냐하면 'men do not like the red smear'라고 하는 장면이 정말로 한중록에 있나요? 드래블은 거기다 더해서 혜경궁 홍씨의 목소리로 'I now think, with the benefit of maturity and an afterlife, and in the light of my readings of 19th- and 20th-century anthropological and psychoanalytical literature, that he was speaking of men's fear of menstrual blood.'라고 합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이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소설'이란 걸 명확히 밝히고, 문화와 시대를 넘어 글쓰기가 얼마나 위험하며 오해를 부를만한 일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죠.


드래블이 한중록을 읽고 그 화자에 매료된 건 드라마틱한 사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하는데, 혜경궁 홍씨가 그만큼 강하고 지적인 여성이며 생존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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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orna Doone (1990)

jelly fish님께 약속(?)한 대로 감상문 올립니다...드디어 클라이브 오웬과 숀 빈이 적수로 나오는 로나 둔을 봤습니다. 숀 빈은 매력적인 악당 역에 참으로 잘 어울리더군요. 10년 뒤에 제작한 로나 둔에서 에이든 길런의 카버 둔이 좀 차갑고 신경질적이고 못된 악당이었다면 숀 빈의 카버 둔은 정말 눈썹하나 까딱 안하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란 느낌이 들더군요.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악함이 줄줄 흘러요.

이 로나 둔은 2000년도 제작된 2부작보다 훨씬 짧아서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몬머스의 반란도 없고, 제프리즈 판사도 매우 짧게 등장합니다. 대신 두 주인공의 대립과 갈등, 로나를 둘러싼 로맨스가 부각되죠.

클라이브 오웬의 존 리드는 돌쇠같기는 커녕 잘못 배치된 병사, 혹은 전쟁영웅 같단 느낌을 줍니다. 이 사람의 존 리드는 말수가 적고 속에 감정을 숨겨둔, 상황에 따라선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는 - 한마디로 말해서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남성성이 있는 인물이거든요. 아마 원작에서 그린 존 리드는 폼 잡는 클라이브 오웬이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근데 클라이브 오웬은 나이가 좀 더 들은 요즘의 얼굴과 카리스마가 낫단 생각이 들었어요. 20대의 얼굴에선 아직 어색하고 다치기 쉬운 부분이 너무 잘 드러났거든요.

가뜩이나 제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클라이 오웬때문에 무거워졌는데 로나 둔 역의 배우가 너무 완숙한 사람이어서 중후한 30대의 로맨스가 되어버렸단 느낌이 들었어요...

극 전체적으로 저는 2000년의 로나 둔이 시간도 길고, 주인공들고 목에 힘을 좀 뺀 사람들이라 더 극적인 재미가 있었단 생각이 듭니다. 로나도 사랑에 빠진 틴에이저다왔고요. 의상이나 세트도 분위기가 많이 달랐는데 어느쪽이 더 낫다고 하긴 어렵네요. 2000년도 존 리드와 그 가족의 의상이 아무래도 일하는 농부차림으로 더 설득력이 있었다면, 검은 가죽 옷의 록 콘서트장에서 나온 헬레이저들 같았던 2000년의 둔 클란 (잠시 모터사이클 대신 왜 말을 타고 다니나 헷갈렸다는..)에 비해 18세기 노상강도나 해적 비슷한 느낌의 90년도 둔들이 아무래도 더 시대에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튼 둘 다 보실 수 있으면 비교해서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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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믿거나 말거나 저는 축구가 올림픽 종목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네요...너무 당연한데도 축구는 월드컵이 따로 있으니까 그랬나봐요.

영국 여자가 양궁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다고 영국 미디어에서 잘 했다고 좋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사람은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랍니다. 어떤 신문기사에서 '한국 양궁팀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번지점프도 한다는데, 다섯살 짜리들 25명을 돌보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어딨냐'고 농담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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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at Girl

전에 티비에서 본 인상만 가지고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 볼 수록 카트린 브레야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Sex is Comedy까지 빌려다 놓고는 한국 영화들과 로나 둔과 레드퀸에 밀려서 못보고 있었어요.

Fat Girl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철저히 여자들의 입장에서 그린 소위 '첫경험'과 여자들의 성적 욕망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성애 섹스를 둘러싼 온갖 신화와 개소리와 성권력의 불균형에서 오는 혼란과 어색함이 조금의 미화나 숨김도 없이 가차없이 드러나죠. 남자친구가 온갖 사탕발림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삽입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게 너무 뻔한데도 그걸 로맨스로 포장하고 영원을 약속받으려는 15살난 여자애가 이런 거짓말에 스스로 설득 당하도록 하는 과정이 냉정하게 보여지는데, 이 장면에서 저는 감독의 차가운 분노같은 걸 느꼈어요.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이성애 게임에 대한 거리를 둔 조롱이죠. 감독 본인의 말에 따르자면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심각한 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강압과 조작이란 겁니다. 이성애 섹스에 입문하는 과정이 여자들한테 얼마나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세뇌과정인지, 반 쯤은 알고 반쯤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기꺼이 그 과정에 들어서고 싶어하는 여자들 -  그야말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성을 욕망하는 여자들의 딜레마는 브레야의 지속적인 탐구대상인 것 같습니다.

여성들간의 자매애와 모계사회적 이상향을 그린 '안토니아스 라인'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거에요. 전혀 기분좋으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거든요. 반대로 사람을 자극하고, 불편하게 하고, 좋든 싫든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영화 후반부의 유명한 반전 때문에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오해를 하면서 불쾌해 하던데, 사실 매우 폭력적으로 따귀를 때리듯이 관객들한테 던져져서 그렇지, 이 마지막 장면들은 열린 텍스트이고, 해석은 보는 사람한테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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