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개봉하자 마자 가서 봤습니다. 체 게바라가 전설적인 혁명가가 되기 전에 친구와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던 일기를 기초로 해서 만든 영화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요.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로드무비이며, 두 남자의 성장기 버디무디입니다. 50년전이나 지금이나 많이 다를 게 없는 라틴 아메리카 시골과 아마존 경치는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고, 너무나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분노나 젊은이의 순수한 이상주의적 열정은 보편적인 감동을 줍니다.
이 영화는 모험과 낭만을 찾던 나이브한 학생들이 여행하면서 정치 의식이 깨이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게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서 많이 설명해주지는 않아요. 게바라가 설령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개업의로 일생을 마쳤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성장의 과정과 친구간의 우정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는 그대로 유효할겁니다.
195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졸업을 한 학기 앞 둔 의과대학생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방금 학위를 마친 생화학자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고물 모터사이클에 올라앉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모험과 낭만, 여자 생각으로 가득찬 이 두 친구는 엄청나게 흔들리는 비포장 도로와 계속 말썽을 부리는 모터 사이클 덕에 고생이 막심하죠. 주로 어디서 자고 뭘 먹나가 걱정거리이고, 불치병 치료를 위해 여행중인 의사 행세를 해서 고장난 모터바이크를 공짜로 수리받기도 합니다. 그 기계 수리공의 부인을 꼬셔 보려다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나기도 하구요. 초반 부의 여행은 풋풋한 버디 로드무디답게 코믹하기 짝이 없습니다. 진지하고 내성적이며 민감한 에르네스토와, 농담 잘하고 춤추기 좋아하며 여자와 음식 생각으로 가득찬 현실적인 알베르토의 대조도 재미있어요.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톤은 점점 어둡고 진지해 집니다. 왜냐 하면 이 두 주인공이 생애 처음으로 자기와 다른 인종, 즉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교류하게 되거든요. 자기 땅에서 내몰린 원주민 농부들, 일거리를 찾아 굶주리며 여행하는 사람들, 미국 회사 소유의 구리 광산의 지옥같은 노동 조건 같은 걸 목격하면서 둘은 왜 여행하는가? 란 질문을 시작합니다.
공산주의자라 경찰에 쫓기면서 일자리를 찾는 한 가난한 부부를 사막에서 만나 같이 캠핑을 하는 장면에서, 지쳐 보이는 여자가 자기 얘기를 하다 물어봅니다. '난 일자리를 찾아 여행을 하는데 너희는 왜?' 둘은 서로 쳐다보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라고 답을 하고 이 아주머니는 잠시 둘을 쳐다보다 'bless you..and bless your travel'이라고 말하죠.
브라질 출신 감독 월터 살레스는 가난한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 역에 정말로 삶이 힘든 사람들을 아마추어 배우로 기용했고, 그 시각적 효과는 강력합니다. 매번 게바라가 부당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반추할 때마다 스틸 사진처럼 정지된 이미지들, 주름진 얼굴과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선 사람들의 세피아톤 흑백사진같은 장면이 등장해요. 낭만화 혹은 대상화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아르헨티나의 유럽계 중상류층 출신인 게바라가 느끼는 죄책감 혹은 연대감은 잘 표현해 주는 장면이겠죠.
페루 아마존의 나환자 촌의 경험도 그렇습니다. 게바라는 병자와 건강한 자를 분리하는 아마존 강과 각종 위계와 관습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환자촌 직원들이 열어준 조촐한 환송회겸 24살 생일파티에서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국가를 가르는 국경은 인공적이며 우리는 하나다라는 연설을 하지요. 그리고 자기 생일을 병자들과 보내기 위해 물살 센 아마존강을 헤엄쳐서 건너갑니다.
게바라역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이미 알모도바르의 Bad Education에서 그 재능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강렬한 인물을 잘 연기 했어요. 이사람은 헐리우드에서도 잘 나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 그라나도역의 배우도 그저 코믹 릴리프나 사이드킥이 아닌, 감정이 살아있는 사려깊은 친구를 잘 그려냈구요. 맨 나중에 이 사람이 카라카스에서 친구와 작별하면서 서 있던 장면이 이제 80 노인이 된 진짜 알베르토 그라나도의 얼굴로 건너 뛰는 장면은 감정적으로 충만합니다.
사실 체 게바라처럼 내용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미지 재현만 남은 아이콘도 드물겁니다. 수많은 학생 자취방 벽과 싸구려 티셔츠와 머그에 등장하는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사진의 체 게바라 이미지는 누구 말처럼 지미 헨드릭스 보다도 더 맥락이 없습니다. 좌파의 포스터 보이, 섹시 영웅 이미지는 상업적으로 클리셰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잘 생긴 것도 죄고, 전후 서구 사회에서 사라진 야성적인 마쵸맨의 섹시함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이런적인 실패한 영웅, 순교자의 이미지가 이사람을 사후에도 그냥 놔두지 않는 이유가 되었겠지요.
21세기 초인 현재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미국의 봉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쿠바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으며, 살아남은 자인 피델 카스트로는 부패와 실정을 거듭하며 반대파와 게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지요. 이런 세상에 정글에서 총을 들고 누비며 라틴 아메리카, 나아가 인간을 해방할거라고 믿었던 체 게바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버금가는 느낌을 주죠.
쿠바 혁명 이후 세운 정부가 얼마나 정신 사납고 아마추어적이었는지를 나타내는 일화. 혁명 일당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카스트로가 '여기 경제학자 있나' 했더니 글쎄 체 게바라가 손을 들더란 겁니다. 모두 놀랐지만 다들 이 영웅을 경외했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체는 덜컥 재정을 담당하는 쿠바은행장에 임명되었습니다. 물론 체 게바라는 질문을 잘못 들었다고 해요. '여기 공산주의자 있나?'로요.
이 영화에서 그려진 저 사랑스러운 젊은이한테서 경건한 일종의 종교적 열정을 읽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 순수한 이상주의자가 나중에 자기 목적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 두려워하지 않는 게릴라 지도자, 살인자가 되었고, 증오와 잔인성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볼리비아 정글에서 처형당했다는 것, 그리고 죽은 지 30,40년이 지나 아무 맥락도 없이 상업 이미지로 돌아다닌 다는 것, 현재도 라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갈갈이 찢겨져 있고 독재와 빈곤에 시달린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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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작자는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이 사람은 쿠바로 날아가 체 게바라의 가족을 위한 시사회를 열었다고 해요. 게바라의 부인과 딸이 영화에 그려진 그의 모습에 많이 기뻐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