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by Fischer

  • 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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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백수가 되어서 시간이 널널해졌습니다. 그래서 소일거리로 블로그에 낙서를 했는데 최근 4개월 동안 버려졌던 블로그를 보는 사람도 없을 것 같구 해서 여기다 중복올립니다. 좀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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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ess King in check in Japan

지난 7월 13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만료된 여권을 소지한 한 남자가 잡혔습니다. 이 미국인은 미국에서 12년째 수배중이었습니다. 다음날 전세계 신문들에는 "Chess King in check in Japan"등의 조그마한 제목이 떠오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억류된 Bobby Fischer(풀네임 Robert W Fischer)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체스플레이어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체스신동이었고 최연소 챔피언이었습니다. 체스전문가들은 전성기 때의 Bobby Fischer를 이길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라고 말합니다. 그의 게임들은 충분히 연구가치가 있어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분석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가 눈을 가리고 귀와 입으로만 플레이 한 게임조차 연구대상입니다. 하지만 그는 1992년 이후 12년동안 미국 정부의 수배 중이었습니다.

Fischer가 잡힌 날 ICC, FICS와 같은 인터넷 체스클럽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Fischer 구명운동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체스클럽의 채팅방에서는 구명운동을 벌여야한다는 쪽과, 냉소적인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었습니다. 최고의 체스플레이어가 구속되었는데 체스커뮤니티는 왜 이런 입장일까요.

이 사람의 인생은 아주 흥미로와서 만약 누군가 이 사람의 인생을 소설로 썼다면 사실성이 부족하다고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2. Champion Fischer
Fischer는 1943년 출생입니다. 환갑을 좀 넘은 나이이지요. 13살 때에 본격적으로 체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해에 US Junior Champion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는 홀어머니가 직장에 간 사이, 집에서 누나과 체스를 뒀는데, 곧 실력차이가 너무 나서 혼자 두곤 했다고 합니다. 혼자 흑과 백 둘 다 두면서 양쪽 다 최선을 다해서 결국 무승부가 되도록 만들곤 했다는군요.

주니어 챔피언이 되어 성인 리그에 출전이 가능하게 된 Bobby Fischer는 그후 2년이 채 안된 15살 때 US Champion이 됩니다. 그가 US Champion이 되면서 두었던 몇몇 게임들은 The Game of the Century라고 불리우며 많은 체스 관련 서적에 지금까지 좋은 예로 등장합니다. 체스세계에서 "The Game of the Century"는 일반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1956년 13살의 피셔가 Donald Byrne을 상대로 둔 일련의 게임들을 말합니다. 이 게임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기존의 사고를 뒤집는 날카로운 move들이 번득거립니다. 자신의 말들이 먹히는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엇, Knight이 먹히는데... Bobby가 실수했나보다, 생각하며 따라가면, 몇 수 후에는 그것이 전반적인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천재적인 move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천재가 가장 천재일 때에는 사춘기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US Champion이 된 Fischer의 다음 목표는 세계 챔피언이겠지요. 그는 1968년 World Champion 도전자 레이스에서 20연승 기록을 경신하면서 FIDE World Championship 도전자로 뽑힙니다. 대부분의 체스매치는 한 게임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게임을 둔 결과로 결정합니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백전백승이 아니라 승률이 높은 것 뿐이니까요. 그리고 대가들의 체스게임은 약 20~30%의 게임이 무승부입니다. Fischer가 interzonal Race에서 20연승을 거둔 것은 대단한 기록이고, 아직도 깨진적이 없습니다. 세계 챔피언 도전자가 된 Fischer, 당시 챔피언은 소련의 스파스키(Boris Spassky, 당시 35세)였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은 소련과 미국이 모든 면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냉전체제였습니다. 소련에서 유인우주선을 날리면 미국은 달에 착륙하는 분위기에서 Chess Championship은 두 나라의 Brain 경쟁이 되어버립니다. 서구에서는 인류 최고의 Brain Game이라고 생각하는 체스의 챔피언이 누가 되느냐는 미국의 뇌가 뛰어나냐 소련의 뇌가 뛰어나냐 결정하는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언론의 관심은 체스에 집중이 되었고 28살의 젊은이 Fischer는 소련이 장악한 체스계에 도전하는 자랑스러운 미국청년이 됩니다.

하지만 최고의 Fischer도 스파스키(Spassky)와의 그 전 대결에서는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습니다. 피셔는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요? 그는 몇가지 경기룰이나 사소한 환경을 트집잡아서 경기 불참 협박을 합니다. 카메라의 위치, 관객의 숫자, 소음, 조명 등 갖은 트집을 잡습니다. 결국, 그는개막식에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피셔가 게임 보이콧을 하려하자, 미국과 소련의 세기대결을 떠들던 사람들은 안달이 났습니다. 그가 상금의 액수를 문제삼자 런던의 한 체스 애호가는 12만 5천불을 기부하여 상금이 25만불로 만듭니다. 심지어 당시 외무장관이던 Kissinger가 피셔에게 전화를 걸어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설득을 하기도합니다.

마지못해 경기장에 늦게서야 나타난 그는 첫 게임을 아마추어나 둘만한 바보같은 수를 두어 1패를 거둡니다. 1-0.

피셔는 이어 카메라의 위치와 카메라 소음을 문제삼으며 FIDE에 이런 저런 사소한 요구를 하고, 그 요구에 대한 반응이 성에 차지 않자 두번째 게임에 불참합니다. 2-0

피셔보다 먼저 도착해서 FIDE가 계속 피셔의 요구에 쩔쩔매는 것을 보고 있었고, 경기장에 도착해서는 몇시간씩 기다리기도 하였으며 농담같은 실수를 상대방이 저지르는 게임에서 싱거운 승리를 기록하고, 급기야 나타나지 않는 피셔를 상대로 앉아서 어이없는 기권승을 거둔 챔피언 Spassky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항간에는 이 모든 것이 피셔가 Spassky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Spassky는 뒤쪽의 작은 방에서 게임을 하자는 피셔의 요구에 관대하게 동의합니다. 3번째 게임의 작은 방에 나타난 피셔는 자리에 앉지 않고 거만하게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보며 소음을 체크하고, 리모트 컨트롤을 만져보며 게임을 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Spassky는 이때 이미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진행자가 피셔의 팔을 잡아 끌며 자리에 앉자고 하지만 거부하고 한참을 내키는대로 서성거린 후에야 게임을 시작합니다.

이 게임은 Fischer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Fischer는 이 게임부터 효율적이고, 날카로우며, 화려한 체스 게임을 선보이며 세계 챔피언 Spassky를 계속 격파해 역전합니다.

결국, Iceland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에서 Fischer는 스파스키(Spassky)를 7승 3패 11무승부(12.5 - 8.5)로 누르고 챔피언이 됩니다. 미국에서 체스 챔피언이 나온 것은 1850년경 이후 약 100년만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 체스 인구는 세배로 껑충 뛸 정도로 체스에 관심이 높아졌고, 철의 장막을 뇌세포로 제압한 이 청년은 일약 스타가 됩니다.

그는 이제 세계의 정상에 올라 일생의 목표를 이루었으며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25만불 이외에도 각종 스폰서들이 줄을 이었으며 TV출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당신은 최고입니다. 당신이라면 이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사라집니다.

그는 1972년 챔피언쉽을 딴 이후 단 한 게임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1975년에 방어전을 두어야 하자 또 다시 여러가지 요구사항을 대었고 체스연맹이 거부하자 챔피언쉽을 반납합니다. 일설에는 Fischer가 103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는데 FIDE(세계체스연맹)는 102가지를 들어주었지만 한가지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은둔을 위한 떠넘기기 핑계같은 요구사항을 마지막으로 그는 정말 완벽하게 사라집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그의 출현은 헝가리와 필리핀 등지에서 가끔 드러납니다. 20년 후인 1992년까지 말입니다.


3. 반유태적 유태인, 반미국적 미국인

왜 체스인들은 그의 구명운동에 냉소적이었을가요?

그는 천재이지만, 불안정한 영혼입니다. 체스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한 피셔는 정상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후에 명사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되곤 했는데 피셔는 일반적인 대화 주제를 따라잡지 못해서 곧 침묵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호주머니에서 휴대용 체스판을 꺼내 식탁에 펼쳐놓고 체스를 연구했습니다. 사춘기 때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누나와 떨어져서 혼자 살기로 한 그는 각 방에 침대 세개를 각각 놓고 각 침대마다 체스판을 놓고 친구도 거의 없이 오로지 혼자 체스만 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십대 때부터 갖은 요구를 체스운영위에 한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각종 소음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 체스 말, 보드의 색상, 밀리미터 단위의 보드 크기 요구, 의자의 높이, 조명에 대한 요구사항은 그가 언제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게임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모두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행동입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상황이 불리해지거나, 불명확할 때에는 방어적인 플레이를 하거나, 무승부를 노리는 수를 둡니다. 하지만 그는 날카로운 사냥개의 그것처럼, 수세에 몰리면서도 주먹을 내뻗는 권투선수처럼 끝없이 공격적이었습니다.

피셔와 게임을 둔 사람들은 회상합니다. 십대였던 피셔는 게임에서 이기면 훨씬 나이 많은 상대방을 경멸하듯이 쳐다보며 비웃곤 했답니다. 그는 상대방을 이기고 짓누르고 경멸하기 위해서 게임을 했습니다. 체스는 그의 자아가 반영된 유일한 삶의 형태였으며, 자신의 존재를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킬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행동이었습니다.

World Champion을 따기 전에 US Champion 타이틀을 반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도 또한 방어전의 상금 액수가 성에 안찬다는 이유로 거부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끝없이 많은 돈을 요구했지만, 그가 정말 원한게 돈이었을까 하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World Champion이 되자 호텔 침대에 천달러의 팁을 호텔 메이드를 위해 남겨놓기도 하는 등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어떻게 써야할지도 몰랐습니다. 피셔는 체스 외에 다른 사회접촉 수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피셔가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 그 요구를 '피셔이기 때문에' 들어줄 때에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30대 때에 여자친구였던 Zita Rajcsanyi 는 "피셔는 정말 정말 정말(very very very) 단순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믿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돈을 더 뜯어내는 것이 이용당하지 않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러한 그의 불안정한 영혼은 곧 음모론과 과대망상으로 빠집니다. 그의 웹사이트를 한번 보십시요. 그는 CIA와 FBI가 음모를 꾸미고 있고 세계를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유태인들이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2년 이후에 그는 잠적 생활을 하면서 간간히 라디오 등에 나와 문제의 독설들을 내뱉습니다.

그는 유태인을 "불결한 거짓말쟁이 새끼들bastards"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교활한 방법으로 돈벌이를 해대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자신이 유태인들에 의해 박해를 받기 때문에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의 어머니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유태인 사전(Encyclopaedia Judaica)"에 Bobby Fischer항목을 삭제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는 911 직후에 "멋진 뉴스다. 이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오랫동안 학살하고 있었다. 약탈하고 살해당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제 그것이 미국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Fuck the U.S. 미국이 싹쓸이 되는 것을 보고싶다."라고 라디오에서 말한 것으로 악명높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균형있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지 못한 청소년이 역사의 뒷면을 발견했을때 표출하는 분노처럼 순진하고, 따라서 단순하고 편향되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속이고 음모를 꾸미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는 피셔를 일부 사람들은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천재로 보기도 하고, 단순한 체스기계로 자라난 불완전한 정신으로 보기도 합니다.

피셔는, 그 둘 다 입니다.


4. 세기의 재대결, 그리고 수배자가 된 Fischer
잊혀질만하면 라디오에 나와 논란거리가 되는 발언을 하고 사라지는 것 외에는 은둔생활을 하던 피셔가 체스를 다시 둔 것은 1992년입니다. 그의 나이 50세 때의 일입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에는 UN의 제재 조취가 내려졌었고, 미국도 이에따라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포함한 제제와 경제제제를 내렸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리는 이 체스 이벤트에 우려를 나타냈고, 경고를 담은 문서를 보냅니다.

경기 전 기자 회견에서 피셔는 이 문서를 들어서 기자들에게 보이고, 그 문서에 침을 뱉습니다. 피셔는 스파스키와 30년만의 재대결에서 간단히 그를 제압하고 $3,650,000을 챙깁니다. 하지만 이 경기를 치룬 댓가로 그는 영영 미국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만약 돌아간다면 10년형의 감옥살이와 $250,000의 벌금과 상금 $3,650,000의 반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체스 애호가들의 도움을 받아 모처로 탈출하였고, 그 후 헝가리와 필리핀, 일본 등지에서 간간히 모습을 나타내며 은둔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위에 인용한 9.11 사태 이후의 발언도 필리핀의 아주 작은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와 엉뚱하게도 혼자 열을 내며 내뱉은 말입니다.

...

그가 1972년 World Champion에 도전할 때에 한 기자가 물었었습니다. "피셔씨, 챔피언이 되면 뭘 할건가요?" "음.. (머뭇거리다) 체스를 둬야지요 더 많이 체스를 둬야지요."

5. 체포와 몇가지 후일담
이 체스 광인과 가장 상관 없을 것 같은 나라라면 어디일까요? 북한은 이 체스 광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2002년 북한은 과거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하였습니다. 그 후 일본은 북한을 압박하고 자국민 여론을 달래기 위해 납북 일본인들의 송환에 힘을 씁니다.

최초 송환 납북 일본인 중의 한명은 소가라는 일본 여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일본여인의 남편이 주한미군 2사단 소속이었던 Jenkins라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Jenkins는 1965년 우리나라 판문점에서 근무하다가 탈영하여 월북하였습니다. 그 뒤 북한의 "이름없는 영웅들"이란 북한 영화에서 미군 스파이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몇몇 프로퍼갠더 영화에 출연한 것이 일려져있습니다. 소가는 젠킨스와의 사이에 둔 미화(19)와 블린다(17)를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젠킨스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미국입장에서는 아직도 탈영병의 신분이고, 미국과 인도협약이 맺어져있는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미국으로 인도되어 형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엉뚱하게 남편은 북한에, 나머지 가족은 일본에 남아 이산가족이 되자 소가와 그녀의 딸들을 비롯한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전원 데려와 달라는 설득작업을 하고 파란 뱃지를 달고 데모를 하자, 일본 여론은 "북한보다는 일본이 낫지 않느냐" 하는 정서가 생기면서 민족 자존심의 문제로까지 번집니다.

일이 커지자 고이즈미 총리가 조지W부시와 직접 전화통화하면서 설득했지만, 군법의 예외를 인정할수 없다며 젠킨스가 일본에 온다면 미국으로 인도해야함을 못박습니다.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이라고 말할 수 는 없지만, 그 다음 일본이 취한 액션은 별다른 제재없이 일본과 필리핀을 왕래하며, 공공연하게 일본 땅을 돌아다니던 피셔를 잡아들이고, 미국에 인도해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두 사건 사이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고, 일본은 피셔와 젠킨스를 교환하려 한다고 봅니다.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미2사단 병사와...
소련을 잿빛 뇌세포로 누른 냉전시대의 영웅...

이 둘의 교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상징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젠킨스 병장


편집증과 과대망상은 아무리 황당한 것이라도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셔는 FBI가 자신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는데, 최근에 공개된 기밀 문서에 따르면 FBI는 피셔의 어머니와 피셔를 스파이로 의심하고 수년동안 추적했다고 합니다.

피셔의 어머니 Regina Fischer도 아들 못지않게 독특한 사람입니다. 피셔의 아버지는 독일인 생물학자로 알려져있지만 실제 생물학적 아버지는 다른 수수께끼의 남자라고 합니다. 피셔의 어머니는 적어도 8개국어를 할 줄 알았으며, 전후 독일에 체류하다가 엉뚱하게도 구소련에 가서 의대를 다닙니다. 소련으로 이주한 최초의 동기는 러시아 공산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그녀는 놀랄만큼 똑똑했지만 바보같을만큼 공상적이기도 하고, 편집증 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련에서 의대를 마친 Regina는 1939년 미국으로 돌아와 브루클린에서 의사 생활을 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북한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한국에 와서 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겠습니다.

그녀가 스파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FBI의 끈질긴 감시는 그녀가 직장에서 자주 해고되도록 만들었고, (정부에서 누군가 나와서 병원장 등에게 그녀에 대해서 보고하라고 한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녀가 장기 근무하기란 어려웠을겁니다.) 직장에 따라서 그녀는 의사노릇과 (아마도 할수 없이)간호사 노릇을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생활고에 시달려서 아들 피셔의 신발조차 꿰매어 신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957년 15세의 아들 피셔와 함께 체스 게임을 위해 러시아로 떠나게 되자 FBI는 Bobby Fischer까지 소련에 포섭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였습니다. 1942년 부터 시작된 추적은 1973년에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납니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영웅, 소련을 격파한 피셔와 그의 어머니는 수십년간 첩자 의혹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그 시대에는 이러한 정부의 박해를 받고 정신이상, 과대망상에 걸린 사람이 꽤 많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정부가 자신을 검열하고 있다고 주장하다 죽은 비운의 코미디언 Lenny Bruce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끝.

p.s. yachess 만규님의 지적에 따라 Fischer가 최연소 세계챔피언이었다는 틀린 사실을 수정합니다. 소련의 탈(Tal, 1960-1961)이 최연소 챔피언이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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