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

  • ginger
  •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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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지막 여름 연휴라고 티비에선 한 250만번은 방영했을 것 같은 오래된 영화를 줄줄이 틀어주더군요. 안젤라 랜스베리가 나오는 [마법의 빗자루(Bedknobs and Broomsticks)]하고 잭 레몬, 토니 커티스와 나탈리 우드가 나오는 [대경주(The Great Race)], 알버트 피니의 포와로와 나오는 헐리우드 who's who같은 [오리엔탈 특급 살인]을 채널을 돌려가며 보다가 책도 읽다가 뒹굴 뒹굴 거렸어요. 깜박 잠이 들었다가 다시 티비를 켜보니 데이빗 수쉐의 포와로가 나오는 [할로저택의 비극(The Hollow)]을 해주더군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런 작품은 공들여 재현한 옛날 저택이나 집사, 오래된 자동차, 의상과 머리모양 같은 부분이 주는 즐거움이 감상의 꽤 큰 비중을 차지하네요.

집에 빨간색 카버에 약간 조악한 표지 그림이 있는 해문사판 아가사 크리스티책이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었기 때문에 - 돈 까밀로 시리즈 시리즈와 더불어 인기 있는 화장실 비치용 책이었죠...순전히 엄마 취향이긴 했지만 -  종종 아가사 크리스티를 인용하기도 했어요. 할로저택의 비극을 모두들 읽고난 다음엔 식구들끼리만 통하는 비유가 생겼죠. 바보인 듯 보이지만 굼벵이 구르는 재주를 부리는 인물을 통털어 저다(Gerda)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나중에야 저다가 아니라 거다라고 불러야 맞는 발음이란 걸 알았지만, 뭐 큰 상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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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님의 [원] 리뷰덕에 아침부터 혼자 너무 웃었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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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열린 우리당 지지자들이 '다른 당도 아닌'  민주노동당에서..를 들먹이는 건 그다지 객관적으로 보이진 않아요. 민주노동당은 뭔가 달라야 한다는 기대는 아닌 것 같고, 더 도덕적이고 진보적이라 뭔가 다르다고 떠들더니 니들도 별 수 없구나...뭐 이런 느낌이 들죠.

무슨 일이든 '정략'이 먼저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건 개인적으로 참 역겨워요. 물론 공적인 발언은 언제나 정치적인 맥락을 가지지만, 최소한의 객관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노동당 일부에서 이걸 정파 싸움 내지는 잘못된 술자리 문화에서 일어난 우발 사고로 본다고 해서 더 놀랐습니다. 여기도 정략에 눈이 어두워서 최소한의 객관성도 없는 경우가 적용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폭력에 무심한 아저씨들이 득시글 대는 정당이라도 당의 높은 사람들이 이런 무서운 폭력을 저질렀다면 '폭력'에 주목해야 되는 게 상식일 것 같은데 말이죠.  


진보누리 게시판에 정말 오랫만에 갔다가 이런 정략에 따라 서로 씹어대고 욕하는 폭발하는 공격적 테스토스테론에 질리고 왔습니다. 제일 웃겼던 건 '꼴페미 어디갔어? 여자 당원들 내가 조진다'는 글이었습니다.  '여자'가 맞았는데 왜 게시판이나 당에서 아무소리들이 없냐는 거에요. 음..평소에 '꼴페미'를 내쫓고 트집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이 '같은 편'으로 지원 비슷한 걸 원하면서도 '꼴페미'란 경멸어를 사용한다니 코메디죠. '여자'가 끼면 갑자기 페미니즘이 생각나는 모양이네요. 이럴 때 저것들이 좀 떠들어주면 좀 좋아 수준이죠 뭐. 자기 마음대로 안 움직여 준다고 '조진다'니...대단해요. 어떻게 하면 저다지도 인간 질이 떨어진단 말입니까. 자칭 좌파 노릇은 왜 하는지.


이번 사건을 두고 가해자의 폭력이 초점이 되질 않고 '왜'와 피해자의 '평소 싸가지'와 '맞을 짓'이 나온다는게 남편 폭력이나 성폭력의 경우와 너무 비슷해요. 나이가 어리거나 여자면 때려서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으면.  정략에 따라 내편 네편을 가르고 폭행자들의 행위 정당화를 위해서 그런 관습을 끌어다 댄다는 게 더 소름끼치죠. 그게 더 무서운 폭력 같아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여자'란 것때문에 '술먹고 여자 패는'이란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저는 그게 꽤나 불편하네요. 관습적인 표현이겠지만 '술먹고 여자 패는 놈들'이란 표현에서 주체는 여전히 '놈들'이며 피해자는 폭력의 대상, 주체도 없고 이름도 없는 펀치볼로만 존재하잖아요.


저는 피해자를 간접적으로 조금 알고 있습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한국 정치에서 주변부라 돈도 없고 권력도 별로 없는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당직자로 일할 만큼 씩씩하고 신념을 잘 안 굽히는 사람이죠. 게다 감상적일 만큼 사회주의적 이상을 믿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당의 동료들한테 머리를 짓밟히고 깨진 맥주병으로 위협을 당했다는 것 (넘버 3의 한 장면 같아요) 도 충격적이지만 이 사람이 익명의 가엾은 피해자, 얻어 맞아 상처와 공포에 떠는 이름 없는 '여자'로 축소 당한 게 더 가슴이 아픕니다. 주관이 강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걸 두려워 하지 않던 사람이 가해자들 보기를 두려워 하고 집에서 나오지도 못한다는 것도요. 거기다 더해 이 사람의 평소 행적과 말투와 인격 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면서 인민 재판에 오르고 있다는 건 너무나 부당하죠.



민주노동당의 붉은 일반이 인권 감수성에 대한 성명서를 냈고, 많은 평당원들이 가해자들을 형사고발하고 영구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돈 내고 당원하고 일 있으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민주노동당을 다른 당하고 다르게 만들어주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희망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같으면 넌덜머리 나서 일찌감치 관여를 안 하고 싶을 텐데, 그 지치지도 않는 낙관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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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일반의 성명서

'맞을 짓이란 없다'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어야 할 진보정당의 당직자들이 폭력사건을 일으켰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 [붉은 일반]은 당원으로서의 공동의 책임을 느끼며 참담해 한다.

그리고 폭력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과 그 당사자들에 대한 인사/지휘책임을 지고 있는 당 지도부가 필요한 모든 책임을 엄중히 지기를 촉구한다. 그 방법은 당연히 당기위 회부 및 제명조처 실시, 피해자의 형사고발 의사가 있을 경우에는 형사고발, 지도부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인사/징계기구 설치와 상설화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붉은 일반]은 이 폭력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당사자와 당 지도부뿐만이 아닌, 민주노동당의 전반적인 인권감수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공공연히 퍼져 '가해자 변호'의 근거로 활용되는,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성폭력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피해자 탓하기'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그러한 '피해자 탓하기' 속에서 피해자에 대한 폭력을 두고 '동지애에 따라 '징벌/교정'해 주려고 했으나 방법이 폭력이었기에 잘못된 것'이라는 식의 인식이 나돌고 있음에도 경악한다. 분명히 선언하거니와, 평등한 인간들 서로는 '폭력'은 물론이고 절대로 일방적인 '교정/징벌'의 대상일 수 도 없다.

또한 우리 [붉은 일반]은 사건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묻기보다 또다시 '동지애'에 따라 '관용'을 베풀자는 식의 논리가 버젓이 나도는 데에도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이미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피해 당사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붉은 일반]은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을 강하게 주장하는 당원들조차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징계위원회가 익명처리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모습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또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특정 정파에 대한 변호나 공격이 전면화되는 것에 분노를 넘어 절망까지 느낀다.

당의 인권감수성이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에 우리 [붉은 일반]은 당원으로서의 심각한 책임을 느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다음 사항들을 요구한다.

1. 최고위원회는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들을 즉시 당기위원회에 회부하고, 당기위원회는 이들에게 제명 조처를 내릴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아울러 제명 후 일정한 기간 동안의 복당 제한 및 복당심사 강화 등의 조항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피해자 중심의 원칙에 입각하여, 피해 당사자의 형사고발 의사가 있을 경우, 최고위원회의 이름으로 직접 형사고발을 할 것을 촉구한다.

2. 최고위원회는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들에 대한 인사/지휘책임을 지고, 대표/사무총장/최고위원회의 이름으로 당원들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당직자 인사/징계 기구를 설치 또는 상설화할 것을 촉구한다.

3. 피해 당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리거나,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관용'을 베풀것을 주장하거나, 징계위원회가 익명처리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을 공공연히 드러내거나, 혹은 특정 정파에 대한 변호나 공격 등에 이 사건을 활용한 모든 당원들은 이 모든 행위가 2차 가해에 해당함을 인식하고 더 이상의 2차 가해를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4.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중앙당/시도당/지구당 당직자들에 대한 인권감수성 교육을 의무화하고,  당원교육에서도 인권감수성 교육을 적극 반영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인권감수성 문제의 커다란 핵심인 소수자 관련 교육을 강화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또한 당내/당외 인권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중앙당에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붉은 일반]은 당의 인권감수성의 심각한 문제를 당원인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으며, 그 해결을 위해 당원으로써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2004년 8월 31일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민주노동당원들의 모임 [붉은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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