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개별 그리고 집단, 전체
DJUNA님의 리플에 대한 답글로 적는 글입니다. 그런데 글이 길어져서 아예 따로 글을 올리는 게 낳을 듯 싶네요.
방금 제가 인터넷에서 시크교도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인디라 간디 수상이 자신의 시크교 경호원들에게 암살된 사건에 관한 부분이 있더군요.
그 때 인디라 간디 수상을 암살한 시크교 경호원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동료 경호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당신들은 이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라 "
굉장히 멋진(?) 말이자 또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공정성과 예의, 그리고 사리분별이 담겨져있기 때문입니다.
인디라 간디 수상을 암살한 이유가 바로 시크교 분리주의자 600명을 사살한 '황금사원'사건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알려진 사실인데, 이 시크교 경호원의 발언에는 바로 이 사건에 대한 도덕적인 분노가 담겨져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시는 인디라 간디 수상을 암살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회의또한 깔려있는 것이지요.
즉, 자신은 학살된 동족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상관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살해하지만, 그대들 인도 힌두인들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처벌하라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상대방의 권리와 질서에 대한 존중이 담겨져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거는 의로운 것이지만 동시에 불의일 수 있다는 일말의 성찰을 남겨둠으로써 윤리와 가치판단의 상대성이 숨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정당하게 자신을 처벌하라는) 그 시크교 경호원의 희망은 그 후 인도 사회의 예기치 못한 정세로 인해 사실상 물거품으로 변하게 되었죠.
인디라 간디의 암살에 분노한 힌두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무고한 시크교도를 학살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야만적이면서도 질서있는 (왜냐하면 집권여당인 국민회의가 배후조종했기 때문에) 폭동이 5일간 진행되었는데, 그 폭동의 와중에 희생된 시크교도들은 무려 4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희생자중 상당수는 산채로 불속에 던져져서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집단에 소속된 한 개인의 행동이 전체 집단의 평판은 물론이거니와 그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게 만드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죠.
저는 이러한 당시 상황을 담은 기사를 보면서 시크교 경호원의 암살행위와 힌두교 폭도들의 집단 학살행위중 어느 것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크교 경호원이 저지른 암살은 분명 사악한 행위입니다. 게다가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을 배신하고 살해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들 시크교 경호원들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품위있고 고귀한 행동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자신의 고결한 신념에 의해서 이 암살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암살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또다른 진실까지 그들은 이해한 것같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황금사원 사건에 대한 복수로 간디 수상을 암살한 것이 자신의 행동이듯이, 힌두교도 당신들도 간디수상을 암살한 자신들에 대한 복수을 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같기 때문입니다. 즉, '복수의 평등성과 공정성'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전제되어 있고, 또는 피아를 초월하는 신의 공정한 섭리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거론해야 할 점은 이 시크교 경호원의 발언속에는 제한적인 폭력에 대한 염두도 담겨져 있지않는가라는 점입니다.
즉, 폭력의 상호 공정성과 평등성은 결국 무차별적인 폭력의 남용이 아니라, 신중하고 제한적인 폭력 사용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사원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인디라 간디 수상을 암살한 것이니, 당신들도 자신에 대한 정당한 복수로서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종결지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일이 흘러갔지만 말이죠....
한 개인의 행동을 집단 전체에 대한 낙인과 차별로 확대시켜 시크교도들을 산 채로 불구덩이속으로 집어던지는 힌두교 군중들에 비해서 볼 때 이들 시크교 경호원의 태도는 너무나 성숙하고 고결합니다.
폭력을 동반한 상호 보복의 와중에서도 상대방의 존재를 기본적으로 존중할 수 있고, 상대방이 자신처럼 분노를 느끼고 자신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까지 인지하는 것, 그리고 서로에 대한 폭력에 분별있는 제한을 두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같은 일반 범인이 받아들이기에는 과연 어렵기만 한 일일까요?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편견으로 움직이는 힌두교 군중들으로밖에는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한 개인의 행동, 혹은 개별적인 사건의 결과를, 설령 적대적인 모순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집단 전체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및 낙인찍기등으로 확대시키는 어리석음을 계속 저질러야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