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시작한 후 처음으로 해외 휴가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가장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으로 말도 통하고(?) 신세질 사람도 많은 런던을 골랐습니다. 대학시절 배낭여행 때 대영박물관이나 버킹엄궁전 같은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았지만 테이트 미술관이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 같은 명소도 못 가보았고 최근 영국현대미술의 활약을 생각할 때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런던만 가기 아까워서 영국 내 다른 관광지도 찾아보았는데 1주일 머무는 일정으로 시간표를 짜다보니 런던에만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골목 골목에 미술관 박물관이 포진한 런던에서 관심있는 곳만 찾아도 7일이 짧습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여행계획은 그 자체로 여행만큼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가이드북에는 일률적으로 미술관 개관시간이 아침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로 나와 있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어느 미술관은 주말에는 밤 10시까지 연장한다든지, 어느 박물관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무료전시를 한다든지, 점심시간은 휴관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정보가 나와 있지요. 특히 저처럼 미술관을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관람객에게 야간개장은 신의 축복입니다.
런던의 친구들이 좋은 공연이 많다고 자랑해서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있는 기간 동안에는 적당한 공연이 없군요.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이야 매일 있지만, 로열 오페라의 라 지오콘다는 취향이 아니고, 리전트 파크의 한여름 밤의 꿈은 언어장벽이 무섭고, 앨버트 홀에서 프롬 마지막 공연은 매진된지 오래군요. 흠~ 아무래도 The Church of St Martin-in-the-Fields의 저녁 연주나 들어야 겠습니다. 근데 로열 오페라의 올 겨울 발레와 오페라 일정을 보니 런던의 친구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서울에서 바그너 공연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 생각해 보면 . . .
아무리 생각해도 가고 싶은 곳을 많은데 일정은 너무 짧아요. 내셔널 갤러리 홈페이지에는 반경 1마일 내의 방문할 만한 장소를 스무 군데가 넘게 표기해 놓았는데 그 지역만 둘러봐도 1주일은 걸리겠더군요. 코난 도일의 오래된 팬인데 셜록 홈즈 박물관을 빠뜨리자니 죄책감이 느껴질 지경이고, 잭 더 리퍼 투어가 관심이 있는데 혼자 가기는 좀 무섭고, 하이게이트 묘지에도 꼭 가 보고 싶은데 시내 중심가에서는 이동 거리가 꽤 되는군요. 빅토리아 시대 미술에 대한 어떤 사이트를 보니 개인 콜렉션 미술관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역시 띄엄띄엄 흩어져 있습니다.
이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브라이튼에 들리는 이유는 <사랑의 종말>때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로열 파빌리온의 이국적인 실내장식으로 배경으로 서 있던 줄리안 무어가 얼마나 멋지던지. 그러고 보니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도 생각나네요. <노팅힐>은 대부분 세트에서 찍었다지만 그래도 실제 장소를 소재로 한 거고 <러브 액추얼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히드로 공항도 그렇고 . . . 런던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들은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을 텐데요. <전망좋은 방>에서 세실과 조지가 마주친 곳은 내셔널 갤러리의 르네상스 그림 앞에서였고요. <하워즈 엔드>에는 심슨 레스토랑이 나왔던 것 같군요. <내 마음의 지도>에서 안느 파이요가 로열 앨버트 홀 대들보를 맨발로 걸어다녔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네요. <남아있는 날들>에서 불켜지는 선창가가 브라이튼 피어맞던가요?
떠나기 전에 마무리할 일도 많은데 간다는 생각만 하면 두근두근합니다. 즐거운 추억을 쌓고 되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