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는 성매매'란 주장에 대해
정신대는 성매매란 주장이 망언이라고 난리가 났다는 기사를 보고...뭐에 씌었는지 주말 밤에 놀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오랫만에 관련된 책도 좀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링크된 기사에서 토론 전문을 다시 천천히 읽어봤는데, 잘 이해를 못하겠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직접 토론을 본 게 아니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사람은 친일 청산을 반대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좀 더 영리한 사람 같으면 자리를 고려해서 그런 논란거리가 될만한 소리를 안 했겠지만, 이사람은 입법으로 몇 명을 단죄하는 것보다 좀 더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술 토론장에서 좀 더 맥락을 따져가면서 얘기했으면 논쟁이 벌어졌지 그렇게까지 죽일놈으로 몰리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튼 저는 이영훈 교수가 정확히 어떤 입장인지 모르고 그사람을 변명하는 건 제 주관심사가 아닙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성매매에 보편적인 노예적 요소이고, 소위 매춘이 사회적 죽음이란 측면입니다. 겉으론 아무리 공정한 거래의 요소를 갖추었더라도 성매매에 본질적인 상품화, 비인간화 측면말입니다.
정대협의 성명서를 봤습니다. 생존자들이 '강제성'을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싸웠으며 일본 우익들이 종군위안부는 '공창'이란 말을 할 때마다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가 얘기하면서 그들과 같은 얘기를 한 이영훈 교수를 용서할 수 없다는 요지였습니다.
http://www.womenandwar.net/bbs/?tbl=M017&mode=V&id=266
저는 왜 이분들이 분노했으며 왜 이렇게 강경하게 말씀하시는지 너무나 이해가 잘 갑니다. 종군 위안부는 명확히 성노예제도 였으며, 국가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여성들을 조직하고 이동시켜 성폭력과 학대와 고문으로 내 몬 끔찍한 전쟁 범죄입니다. 하지만 이건 겉으로 나마 공창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 사기성 겉모습이 '상업적 거래'란 핑계를 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걸 이용해서 일본우익들이 '자발적 성매매'란 용어를 써가며 아직도 책임 회피에 써먹고 있지요. 게다 '창녀'에 따라오는 그 끔찍한 낙인이라니. 생존자들은 자신을 '창녀'와 등치시키는 걸 당연히 모욕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그 단어가 얼마나 더러운 모욕의 의미로 쓰이는지 모두들 알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대놓고 정신대는 공창이었고, 한국 사람들도 돈을 벌기 위해 이 '공창' 모집과 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일부 한국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가담했다는 얘길 했으니 분노할 수 밖에요. 이게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문제는 해석이지요. 위안부 연구자라면 한국인 공창 주인들 같은 기록들이 실은 제한적으로 남아 있는 자료의 일부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겁니다. 중요한 일제 군대/경찰/식민정부의 자료가 아직까지도 연구자들한테 접근이 불가능하다는군요. 저는 이영훈 교수가 자료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단지 이사람이 하는 말이 '일본 우익'이란 말로 다 가려지는 게 걸려요.
'공창'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만을 보인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돈 벌려고 공창을 조직했고 여자들은 자발적으로 몸을 판 `창녀`이므로 일본정부는 알 바 아니라는 일본 우익들 논리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면 일본 우익이 `사실`을 독점하고 자기 맘대로 논리를 만들어 내도록 마냥 놓아두는 결과가 나옵니다. 왜 식민지 한국에 그런 대규모로 잘 조직된 여자 트래피킹 시스템이 생겼는지, 그리고 그걸 일본군에서 어떻게 이용했는지, 겉모양이야 무엇이었든 실제로는 얼마나 끔찍한 성착취와 폭력으로 점철된 노예제였는지 따져야죠. 그러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에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에 도전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구요. 성매매가 성폭력 건수를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며 공창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은 위안부소를 설치한 일본군 입장하고 논리가 똑같거든요.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본격화 되기 전 공창제를 운영하던 일본 군대에서는 본국에서 '카라유키상' (해외 공창에서 일하던 일본 여성)들을 데려다 놓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개 일본에서도 가난한 집 딸들로 선금을 받고 유곽에 팔려간 이들이었죠. 30년대 후반 전쟁이 확대 되면서 일본군대는 성병확대 방지 내지는 민간인 강간을 줄이기 위해 군대가 통제하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라유키상'들을 확대할 생각을 합니다.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메는 가난한 여성들은 아주 좋은 타겟이었고, 지배민족으로서 피지배 민족의 여성을 성욕해소에 활용한다는 발상이 저들로서는 알맞았을 테구요. 일본군은 한국에다 자기네가 선발한 한국인 '모집원'을 풀어서 이미 널리 퍼진 여성 트래피킹 네트워크를 활용했다고 합니다. 모집원들이 주로 가난한 농촌지역의 어린 한국 여성들을 속임수로 꾀어 납치하고 전쟁터에 성노예로 보내버린 건 많은 생존자들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발'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성매매에 따라오는 갖가지 도덕적 낙인과 모욕을 떼어버리고 보면 규슈의 업소에 있다가 정신대 모집에 따라간 일본 '매춘부'들과 일자리를 준단 말에 속아서 끌려간 조선의 농촌 처녀들간에 본질적으로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란 어렵습니다. 가난하고 위치가 불안한 여성에 대한 국가의 제도화된 착취와 폭력이란 점에서요. 이 여성들이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성노예로 지속적인 폭력을 경험했다는 사실 앞에서 누가 '자발적'으로 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어요. 한국 또는 대만 등지 출신 정신대 여성들이 경험한 고문과 학대가 일본 출신 정신대 여성들의 경험과 같은 수준이었는지는 더 연구가 되어야 하겠지만요.
이 범죄의 배후이자 조직자들인 일본군 수뇌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네요. '자발'이건 강제건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 그들의 앞잡이들이, 그것도 한국인들이 나서서 겉으로는 공정한 상거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 '공창'이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었구요. 여기서 성노예로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반복적인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은 댓가를 지불한 상품이 되어버립니다. 개개인의 인생도, 개성도 사라진 그냥 물건이죠.
위안부 여성들이 '공창'의 주인들한테 제대로 댓가를 받는지 어쩐지도 사용자들한텐 중요하지 않습니다. 티켓(돈)을 지불했으므로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형식적인 합법성/정당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위안부들에게 마구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겠죠.
이 빌어먹을 '상거래'란 형식은 일본군의 직접적인 관여를 감추고, 속임수로 납치된 여성들의 존재, 강제성, 성노예가 되어 거의 아무 댓가도 받지 못했다는 측면을 흐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일본의 우익이들이 악용하고 있는 중이구요. 또한 생존자들도 '창녀'란 낙인이 두려워서 증언을 못하게 막는 측면도 있었죠. 그러니 한국의 생존자 할머니들이 그 성매매란 거짓 형식을 거부하고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싸워왔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 용감한 분들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매매에는 보편적으로 성을 파는 사람의 비인간화, 대상화, 상품화란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성매매가 자유의지에 의한 직업 선택이라거나 혹은 구조의 희생자란 논의를 피한 줄리아 오코넬 데이비슨(Julia O'connell Davidson)의 정리가 꽤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비슨에 따르면 성매매는 아무리 공정한 거래처럼 보이더라도 성을 파는 순간 파는 사람의 몸 전체가 구매자의 물건이 되어버리고, 매 거래 때마다 성을 파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사회적으론 사망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사망한 인간은 아무 힘도 없고 존엄도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런 보호나 존경도 받지 못하는 매춘부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리고 구매자의 권력에 종속되고 지배된다는 점에서 성을 파는 사람은 노예와 비슷합니다.
이영훈 교수가 언급했다는, 위안부를 국가가 개입한 전후의 미군상대 성매매와 현재 한국에서 성행하는 노예적 성매매를 연결 하는 부분도 사실 제한된 토론에서 통념과 반대되는 섬세한 얘기를 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민족 감정을 빼고 여성에 대한 착취로 보면 논리적으로 말이 됩니다. 누가 왜 무슨 맥락으로 얘기했는지가 중요하겠죠. 저는 노예적 성매매와 성폭력의 유사성을 얘기하고 있으며, 종군위안부제가 보편적인 성매매와 유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이유로 일본이 이 범죄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게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 거구요.
위안부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군대가 여성의 성을 착취했고 유별나게 잔인했단 점에서 특수하며, 지배 민족이 피지배 민족의 여성들에게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장기간 비인간적인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가부장적 민족이데올로기도 건드립니다. 자기 민족에 속한 여성의 몸에 대한 가해지는 성폭력을 상징적인 자기 모국에 대한 침공과 순결성 침해로 보는 것 말입니다. 자기 민족 여자들 몸에 대한 권리 행사는 자기네만이 해야 한다는 의식도 깔려있구요. 이런 공유된 전제하에 피지배민족의 여성의 성을 착취함으로써 지배민족은 성공적으로 피지배민족을 모욕하면서 여성화시키게 됩니다.
식민지나 외국군 주둔을 반대하는 시위에 상징적으로 '순결한' 이 들어간 수사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반증이죠. 성폭력을 당했거나 성매매업에 종사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여자들은 그래서 주변부화되어 민족 범주에서 제외되거나 아니면 '순결한 피해자'의 흰옷을 입는 극단을 왔다갔다 하죠. 윤금이 사건을 보세요. 생전엔 누구나 깔보는 '양공주'였다가 미군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자 '순결한 우리 누이'가 되었죠. 여기서도 사실 피해자들의 인격과 개개인의 역사와 독특한 개성은 사라지고 '순결한 우리 딸/누이' 같은 상징으로 대체됩니다.
'서울대 교수가 정신대를 공창이라고 하고 성매매라고 했다'면서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강하게 분노하는 이유는 이영훈 교수가 위안부제의 강제성 부분을 무시한 것처럼 보여서 (실제로 어떤지 그 토론만 갖곤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순결' 부분을 건드렸다는데서 민족적 감정에 어긋나기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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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이용은 일본군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위안부를 이용한 남자들은 조직된 국가 범죄로서 성폭력과 여성학대에 적극 가담한 것이었지만, 자기네가 정당한 성매매를 했다고 생각했겠죠. 성찰과 고백과 반성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