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몇가지 의문이 남아서 말씀드립니다.
먼저 민족의 개념에 대한 문제인데, 이 부분은 저도 다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깊게는 안 들어가겠습니다만 일단 말씀드릴께요.
님의 말씀대로 타민족에 대한 경계/자민족 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민족의 성립을 생각한다면
서구에서도 중세 시대에 이미 민족은 성립되었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물론 민족 이데올로기에서 그런 기능은 필수적인 것임을 압니다.
문제는 거기서 민족의 형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을 건지는 것 아닐까요.)
기독교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타 세력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일이야
유럽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해온거니까요. 유럽,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주변 종족을 야만족으로 규정하는 거야 너무나 보편적인 일 아닙니까.
북미 인디언들도 알래스카의 이누이트들을 야만족이라 불렀다고 하니.
에스키모라는 뜻은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누이트를 비하하는 말이죠.
물론 중세 유럽은 봉건제 사회였으니 중국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와
유럽의 그것을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런데, 제 짧은 지식으로는 적어도 한대까지는 중앙정부의 힘이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거든요.
전한 초기에 벌어진 오초칠국의 난은 지방에 웅거한 황족들에 맞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싸움이었고, 여기서 일단 정부가 승리하긴 했죠.
하지만 한무제 이후로는 왕권도 약해지거든요.
그리고 후한은 왕권이 강하지 않은 호족국가였습니다. 한대 이후 중국사는 위를 계승한 진,
당, 송, 명을 빼면 이민족의 각축장이었죠.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할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중국이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로 일찍부터 유교 민족주의를 정치원리로 삼고 있으며
중국의 민족 개념은 서구에 앞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칼에
정리하기 보다 좀더 섬세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른 문제로, 저항적 민족주의와 권위적 민족주의의 문제인데, 님께서는 임지현 교수가 양자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저항적 민족주의가 저항할 대상이 사라졌을 때 권위적
민족주의로 전화하는 것은 너무나 자주 일어났던 현상 아닌가요. 한때 그렇게 억압받던 유대 민족이
지금은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으니.. 저항적 민족주의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
있어서는 충분히 당위성이 있지만, 그건 다른 한편으로 폐쇄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는데요.
물론 저항적 민족주의를 무기로 삼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의미없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또한 제가 보기엔 민족주의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억제해왔다는 게 님의 논리인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요?
이건 제가 잘 몰라서 묻는 거고요.
아. 그리고 님의 처음 달았던 댓글에서 말씀하셨던
"서구인들의 반파시즘적 성찰과 자유주의적 사상이 한국에서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외세영합세력을 변호하는 논리로 은근슬쩍 둔갑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아직 설명을 하지 않고 계신 것 같은데요.
임지현 교수가 쓴 <바르샤바에서 온 편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은 그 책에서 공산주의가 쇠퇴한 동구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그 책만 놓고 보면 그는 서구의 '근대주의'적 이론의 토대 안에서 민족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성찰한 것으로 보이지, 님 말씀대로 "외세영합세력을 변호"하거나 그런 거라고는 보기 힘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