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있으면서 밤잠도 아껴가며 얼마나 쏘다녔는지 본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빙빙 돌 지경입니다. 역시 기억에 남는 건 미술관과 박물관들이고요. 특히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의 콜렉션은 거의 무서울 지경이더군요. 커다란 전시용 장마다 서너개의 선반이 있고 그 선반마다 도자기나 은식기가 십여개가 있는데 그 장들이 몇십 미터나 되는 복도를 꽉 매우고 있는 장관이란 . . .
다행히 제가 있는 동안은 날씨도 좋았고,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넘쳐서 신나게 돌아다녔습니다.
일단 생각나는 거로는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 <대사들>입니다. 전 이 그림 하단에 있는 일그러진 해골이미지에 사죽을 못쓰는데 이 그림이 거의 등신대 크기인줄은 직접 보고야 알았답니다.
내셔널 갤러리 바로 뒤에 있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는 시간이 다 되어서 쫓겨났는데 그래도 쫓겨나기 전에 이 동영상 비디오 작품은 보고 나왔습니다.

샘 테일러 우드가 커미션을 받고 만든 베컴 초상입니다. 저는 베컴은 커녕 축구에도 별 관심이 없는데 작가를 좋아해서 이 작품을 챙겼거든요. 근데 실제로 보니 남이 자는 모습, 특히 유명인사가 진짜로 자는 모습이라는 것이 상당히 관음증적인 매력을 풍기는군요.
샘 테일러 우드 작품은 어디나 괜찮아서 테이트 모던의 '정물'도 볼만 하더군요. 싱싱한 과일이 썩어서 문드러지는 과정을 고속으로 보여주는데, 개념만 따지면 피터 그리너웨이 단편같지만 과학적인 관찰같은 와는 달리 정물화 전통을 따르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죠.
주말에는 노팅힐에 가서 골동품 시장을 구경했습니다. 정말 어디 시골 다락방에서 모아온 것같은 온갖 잡동사니 골동품을 파는데 구경하다가 저도 하나 샀습니다. 19세기 초의 옛날 장신구들이 귀여웠는데요. 말발굽모양을 한 핀이나 마이크로 모자이크로 된 브로치를 구경하다가 특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Mourning Brooch 라고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 땋은 것을 가운데 넣은 흑옥 브로치인데요. 기이하면서도 참 아름답더라고요.

(제가 본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대충 이렇게 생겼습니다.)
주말에는 브라이튼가서 바다를 보면서 쉬었고요. 로열 파빌리온의 인테리어는 정말 죽이더군요. 친구랑 둘이서 그 어마어마한 가짜 중국풍 장식을 보고 웃느라고 정신을 못차리는데 안내하는 분이 이건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중국풍이지 진짜 중국풍은 아니다 혹시 중국인이냐 물어보더라고요.
없는 시간 쪼개어 가며 구경을 많이했지만 역시 하이게이트 묘지에 못 가본 것은 아쉽군요. 옛날 묘지들을 가 보고 싶었는데 . . . 근데 잠깐, 해골그림과 의식없는 남자 비디오, 썩어가는 과일과 죽은 사람 머리카락 . . . 왜 이런게 기억에 제일 남는거죠? 내 취향이 이렇게 음산했던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