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멋진 징조들 & gmail

  • KuAng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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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듬뿍 입니다. 저는 경고했습니다. ^^




원제가 good omens이니 제목부터 패러디 소설티가 확 나는군요. 이 소설은 제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삐딱선을 타는 천사와 악마도 그렇고, 무능으로 아마겟돈을 망쳐버린 인간들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자기모순에 빠져버린 메타트론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천사와 악마가 주장했던대로 신의 섭리는 완벽하며, 형용할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적어도 그게 인간에게 더 유리해 보이니까요.

멋진 징조들의 상당부분은 첩보소설의 형식에 기대고 있습니다. 첩보소설에서는 정보전쟁의 일선에 서서 싸우는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들을 현실주의자들이며, 회의주의자들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들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정치가들의 미친 짓을 막기 위해 기꺼이 카운터 파트너가 되는 상대편의 스파이들과 손을 잡습니다(이를테면 노천카페라든가 다차같은 곳에서요...... 잠도 같이 자던가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전에서의 우위이지 파국이 아니거든요. 인간사회에서 제법 유능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과 악의 두 현지 파견 에이전트 역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다 그들은 인간에게 동화되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의 악덕에 물이 든 거지요. 탐식과 탐욕, 나태 같은 것 말입니다.(탐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을 전적으로 이해합니다. 저는 결코 그 대죄로부터 도망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들 이외에도 멋진 징조들에는 멋지고 괴짜인 인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강력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인이 지어준 이름에 의해 그 존재가 재정의된 케르베로스, 성실한 마녀 사냥꾼,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는 강신술사, 지옥의 천사들(종군기자인 전쟁이나, 다이어트식 회사의 사장인 기근은 정말이지 그럴듯 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예언한 100% 정확한 예지력의 마녀! 그렇습니다. 예언가들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며 으스스한 협박을 해대는 것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 겁니다. 저라면 종말론자들이나 열광할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기보다는 그 마녀처럼 후손들을 위해 예언을 해 주겠습니다. 이를테면 '색정광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을 때가 튤립이 가장 뜨거울 때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기독교인이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이 소설을 충분히 즐기지 못할 겁니다. 그것은 '악마의 시'에 분노하는 무슬림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겠지요. 모태신앙에 가까운 저는 슬금슬금 한도를 건드리며 씨익 웃는 저자의 장난기에 아슬아슬한 스릴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단순한 패러디 소설을 넘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들은 분명히 어린 시절에 교회에 얌전히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꼬마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허영만의 작품 중 인류의 종말을 그렸던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색이 짙었던 만화가 생각납니다(제목도 기억이 안 나다니, 이런!) 멋진 징조들의 감성 중 일부는 그 만화의 마지막에 "이대로 있게 하소서."라고 울부짖던 이강토의 절규와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쪽은 비장미로 오버하기 보다는 달리 유머와 패러디로 비빔밥을 만들어 버렸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겠지요. 거기다 해피앤딩. 그리고 저는 그것이 더 좋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제 취향, 비극보다는 희극이, 예술영화보다는 코메디 영화가 더 즐겁다는 제 취향때문이기도 합니다. 간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ps. gmail 초대권이 3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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