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한증
윗 시는 이글 보러 갔다가~~
------------------------------------------------------------------------------
축구를 한다고 해서 모처럼 시간 난 김에 TV를 켜다가 문득 예전에 올렸던 글 하나가 떠올라서 가지고 옵니다. 오늘은 태국하고의 경기지만, 중국과의 경기를 본 뒤에 휘갈긴 거로군요 다시 보니.....
==============================================================================
한국과 중국의 축구 경기가 있었던 몇 주전 토요일은 모처럼 기분 좋은 저녁이었습니다. 조재진과 김동진의 멋진 슛은 1주일 동안의 스트레스를 팍팍 날려 주더군요. 무엇보다 모택동 고향 경기장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 앞에서 '공한증'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것 같아 깨소금 한 바가지 입에 머금은 듯 했답니다. 이왕 본선 진출은 물 건너간지 오래지만 한국만큼은 한 번 이겨 보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던 중국팀이어서 그 깨소금은 더욱 고소한 맛을 더했겠지요.
중국 선수들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 부를 때 표정 보셨습니까? 정말로 중일전쟁 때 일본군에 맞서 싸우러 나가던 의용군 표정입디다. 경건하게 손 오른쪽 가슴에 얹고 눈 부라리면서 국가 한 소절 한 소절 부르고 입을 앙다무는 것이 감독부터 벤치 멤버까지 한 명의 예외도 없더군요.
그러나.....애석하게도 박지성은 거의 날아다니고 최성국은 맘만 먹으면 마라도나 흉내 두어 번은 거뜬히 내겠더군요. 나중에는 악에 받친 중국 선수들이 아무리 밀어부쳐도 조마조마는커녕 빙글빙글 웃음만 나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멸시(?)할 수 있는 근거가 축구 말고는 별로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서방세계의 부유층 수준으로 사는 인구가 남한 인구를 넘어섰다는 중국, 그 덩치와 머릿 수만 봐도 압도당하는 나라 중국을 시원스럽게 깔아뭉갤 수 있는 종목이 그렇게 시원스럽게 떠오르지 않는 판에, 스스로 '한국을 두려워한다'고 고백하고 어떻게 한국을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볼 수 있을까 와신상담한다는 중국 축구가 얼마나 귀엽(?)겠습니까 그래. ㅎㅎ
멋진 센터링과 헤딩, 그리고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듯한 환상의 발리슛이 작렬한 다음, 낯익은 그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수들이 하나같이 그라운드에 꿇어앉아 기도하는 모습이요. 경기 끝난 뒤에는 예닐곱명이 아예 모여서 기도를 하더군요. 중국의 호남성 TV던가요 그 방송사는 신기한 듯 그 모습을 주구리장창 비춰 주고 있습디다.
왕년에 유명했던 ‘그라운드의 전도사’ 이영무 선수를 돌이켜 보건대 우리 나라축구팀의 기도 세레모니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국내 최초의 프로축구팀 할렐루야팀은 아예 경기 시작 전에 열십자로 앉아 기도를 했었지요. 하지만 언젠가 경기에서 저는 그들의 모습에 무척이나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과 맞붙은 할렐루야팀은 각종 지저분한 축구를 총결산한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고 그래서 이겼었습니다. 그리고는 역시 열 십자로 앉아서 기도를 했지요. 그때 TV를 보며 길길이 날뛰던 저는 “기도는 왜 하냐 이 빌어먹을 예수쟁이들아.”를 물정 모르고 외치다가 아버지한테 벼락을 맞았었지요. (4대째 기독교인에 집안에 목사가 셋인 처지에 함부로 입을 놀린 죄지요)
따지고 보면 전 국민의 99%가 태어나서 세례받고 교회 가서 결혼하고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생인 나라에서도 축구 선수들이 골 넣었다고, 이겼다고 모여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골 세레모니를 펼친 뒤 성호를 긋는 모습은 여러 번 봤고 혼자 슬쩍 슬쩍 머리 숙였다 일어나는 거야 다반사입니다만 마치 시위라도 하듯이 원을 그리고 앉아 통성으로 기도하는 모습은 지극히 대~~~한민국 적인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만이 아닙니다. 종목을 망라하고 어떤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들의 입에서 으레 나왔던 ‘대통령 각하의 관심...’ 어쩌고를 빼면 가장 많이 마이크를 탄 멘트가 아마도 ‘주님께 감사한다’였을 겁니다. 물론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들을 지탱해 준 신앙의 힘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들이 그토록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세계를 펼쳐 보인 배경이랄까 이유랄까 그 내면을 캐고 들어가 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습니다.
자기의 신앙을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고 싶고, 나의 승리와 함께 해 주신 주님에게 꼭 공개적으로 영광 돌리고 싶어하는 한국적 기독교 특유의 노출 욕구, 그리고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다’는 역시나 한국적 기독교 특유의 선교방식의 영향이라고나 할까. (예수 믿은 뒤 이렇게 변했다는 간증 한 두 번 봤어야 말이죠)
프로권투가 한창 인기있을 무렵, 한국 무거울 중자 중량급 라이벌에 유병래와 이상호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유병래가 한 체급 위였지만 이상호한테 한 방 맞고 나가 떨어졌었죠. 라이벌전이란 원래 한 번 하면 재미없는 거라 또 경기가 열렸는데, 저는 그날 정말이지 기독교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유병래 선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그 소속 교인들이 그날 단체로 응원을 온 겁니다. 성가대까지 동원해서 말이죠.
유병래 선수도 첫 경기만큼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고 이상호도 강적이었습니다. 피가 튀기고 마우스피스가 하늘을 나는데, 갑자기 성가대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겠네”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합창으로 말입니다. 이상호가 클린 히트를 맞으면 할렐루야를 부르짖습니다. 유병래가 밀리면 ‘주여~~~~’가 터져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민족과 싸울 때 하늘을 향해 기도하던 모세가 팔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밀리고, 팔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몰아부쳤다는데, 마치 그 모세라도 된 것처럼 소리를 크게 질러야 유병래 선수가 이긴다는 듯 예수를 부르짖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쯤 됐을래나..... 결국 그 경기는 중등부 예배를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즉 난 모범적 기독교 신자로는 못 크겠다는 선언을) 아버지에게 하게 만들었던 중요한 계기가 됐었습니다.
언젠가 한국 여자 배구팀이 놀라운 성과를 이룬 적이 있었고 그 성과의 비결 중 하나가 전원이 기독교 신자가 된 일체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배구계에서 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분이 감독을 맡았고, 그 분은 “자신의 승리가 주님의 역량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인터뷰하실 정도로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죠. 그 분의 지휘 하에 든 여자 선수들은 합숙 훈련 와중에 모두 ‘전도’되었고 그녀들은 승리한 순간 모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둘러앉아 기도를 시작하더군요. 저는 그때도 절대로 감동은 아닌 묘한 감정이 스쳤던 기억이 납니다. 펄쩍펄쩍 뛰며 환호하고 기도하는 그녀들의 영상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저는 그 나이 스물 처녀들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저렇게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지요. 만약 기독교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선수가 있었다면 그는 그 팀에서 어떤 존재였을지 짐작이 가기 때문일 겁니다.
일찍이 하나님이 요나를 보내 그들을 회개시키라고 했던 ‘니느웨’에 신학교를 세우겠다고 이라크에 들어갔던 목사님들이 계셨고, 이라크 무장세력에 인질이 될 뻔 한 뒤에도 또 한 명은 꿋꿋이 다시 이라크로 들어가 그 신학교 창립식에 참여한 목사님이 계셨지요. 그 분의 눈에 대체 이라크 사람들은 어떤 존재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강퍅하고 포악했던 과거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처럼 주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탄의 종교 이슬람에 빠져 전도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양들로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치 21세기의 요나가 된 느낌으로 그토록 무리수를 두어 가며 니느웨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한국에 복음을 전파해 준 고마운 나라’를 반대하는 ‘사탄의 무리’를 저주하는 목사님도 계시고, 그 목사님의 찬송에 따라 3.1절날 남의 나라 국기를 힘차게 흔드는 기독교인들도 계시지요. 그리고 그 기독교 정신으로 정당까지 만드시겠다고 나서시더군요.
중국 축구 대표팀의 공한증과 비슷한 성격의 공포증이 홀연 생기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중국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어쩔 수 없는 한국 대표팀처럼, 도대체가 십자군 시대에서 직수입된 듯한 과도한 열정과 이교도에 대한 증오를 갑옷처럼 차려 입은, 목사에서 평신도까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진리처럼 되뇌는, 단군상 목을 잘라 버리는 것을 마귀 토벌로 착각하는 기독교,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믿는 하나님과는 조금 다른 하나님을 믿는 듯한 분들과 내가 ‘형제’라는 사실이 너무너무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이지요. (아 물론 그분들이 저를 형제로 생각할 가능성도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갈 확률보다 더 적겠지만요.)
한 미국 민간인의 목을 마치 짐승을 잡듯 베어버린 사악한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사악하며 인간임을 포기한 짓입니다.) 이라크 사람들의 뉴스를 보고 니느웨 신학교에 목숨을 걸었던 목사님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합니다. 오늘 오후 전철 안에서 제가 만난 노방전도자처럼 "우리는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해야 합니다. 무고한 사람의 목을 자르면서 환호하는 저 아랍 사람들을 주 예수의 복음으로 인도해야 합니다"라고 할까요. 아니면 그 악마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계실까요......
좋은 경기 보고 헛소리한다고 뭐랄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우리 어린 선수들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또 지하철에서 열받은 김에 여러 잔상들이 떠올라 잡설을 늘어놓게 됐네요. 그들에게는 소중한 기도였을 텐데 괜히 딴지 거는 것 같아서 자발없이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들의 기도가 배타적인 기도가 되지 않기를..... 이기적인 기도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폭력적인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죠.
그러나 저의 공한증은 단지 일부 한국적 기독교 때문에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너 예수 믿니? 안믿으면 지옥간다..의 논리는 기독교의 논리가 아니라 한국적 논리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잔말말고 북한이 좋아 안 좋아?' 'DJ가 좋아 안좋아?' '너 우리 편이야 아니야 색깔을 밝혀' 등등 Yes와 No의 두 진영을 너무나 쉽게 가르고, 우리 편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신심을, 상대 편에 대해서는 저주와 증오를 정비례시키는 모습은....저의 공한증을 더욱 늘립니다. 저도 그다지 예외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http://www.mediamob.co.kr/sanha88/postList.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