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르네상스

  • 젊은 후베날 우르비노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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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습니다. 일단 추리소설 형식을 띄고 있으니까요. 추리 소설은 독자들을
끝까지 잡아 둘 수 있으므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
입니다. 비슷한 경우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들 수가 있겠죠.
([다빈치 코드]는 뭐랄까. 책이 아니라, 영화 같습니다. 예외로 치고 싶네요:-P)

새로운 분야에 다양한 형태의 서술 형식으로 자칫 산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밀 화가라는 것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은 [대장금]
덕분에 궁녀, 의녀의 생활을 알 수 있게 된 것과 유사합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살인 사건의 범인 찾기와 러브스토리의 결말은 저절로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이것도 [다빈치 코드]는 예외, [내 이름은 빨강]에 비하면 날라가는 수준이랄까;)

오스만제국의 역사와 그들의 예술과 철학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쉴새 없이 설명을 해대고, 서양 화풍을 받아들이냐 마
느냐의 문제라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지요. 번역
자조차 철학적 예술적 난해함을 접고 들어가는 마당에 2차적인 관심이 없다면,
그려려니 할 뿐이지요.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와서는 조금 지루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예술의 궁극에
치달아 자신의 눈을 찌르는 오스만 화원장의 행동이나, 하필이면 눈을 찌르며
싸우는 세밀 화가들의 행동이 잘 이해가 안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요. 외국인이
한을 심어 주기 위해 눈을 멀게 한 [서편제] 속 이야기나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취화선] 장승업을 보면 역시 이해가 잘 안될까요?

빨리 범인을 알려주고, 또 카라랑 세큐레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란 말이다!
외쳐봐도 이미 제본된 책은 말이 없지요. 물론 이 책에서는 책 혹은 그림이 말을
합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두요. 우리 나라로 치면 가전체 소설 쯤 될까요? 덕분에
아주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화자는 늘 새로운 정보를 줍니다.

그래서 작가는 때때로 오스만 화원장, 카라에게도 누명을 씌웁니다. 불쌍한 셰브켓은
카라가 에니시테를 죽였다고 믿지요. 작가는 이런 상황 뿐만 아니라, 작은 구절
하나하나로 독자들의 집중을 방해합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지요. 하지만
유능한 독자라면 종반부로 치달을수록 의혹을 황새에서 올리브로 옮겨갈껍니다.
이거 황새란 말이야... 올리브란 말이야...

나비는 애초에 범인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작가도 조금은 재껴놓은 듯 보이구요.
읽는 내내 나비의 이미지로는 웬지 브래드 피트가 떠올랐지요. 아름답지만, 재기와
자만심, 원초적인 시기심으로만 가득찬 얼굴이요. 이런 인물은 전통적으로 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사변적인 이유는 제쳐두고서라도 나비가 범인이었다면 좋았을텐데요.
삼류일지언정 독자의 허를 찌르는 결말이 될건데 말이죠 :-P

그렇게 눈이 멀어가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길게 자신의 생각과
사상적 배경을 늘어놓는 등장 인물들에 약간 질려버렸지만, 결말은 어느 것 못지 않게
잔인했습니다. 칼로 코를 후비다니요. 으윽.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약간 선정적인 상황들은 자칫 고답적으로 흐르기 쉬운 범행
동기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차도르를 쓰고 있는 여인네들이 속으로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줄이야. 아무튼 그쪽의 문화가 생소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소년에 대한 숭배나 시치미를 때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해대는 것에는
조금 놀랐습니다.

언제나 3세계 문학을 접하다 보면 그런 느낌이 있지요. 마르케스나 코엘료, 하루키가
그랬습니다. 이젠 거의 메인스트림이라 그 작가가 도리어 그 나라를 대표하고야 말았지만,
아무래도 쭉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가 속한 민족이나 나라의 고유한 느낌이 은근히
드러나지요.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 코엘료의 뜬구름 잡기, 하루키의 쿨한 척 하기는
각각의 고유한 배경 덕택을 많이 봤다고 볼 수 있지요.
(도대체가 한국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

어쩌면 그런 분위기를 한번 맛본 것만으로도 큰 성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터키의 문학
이라니요.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치정담이나 모험담도 적절히
섞인데다가 조금은 지적이니, 재미가 없다면 작가의 역량 탓이겠지요.

물론 그 지적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요. 음. 르네상스가 지나치면
사대주의가 되는 걸까요? 전 책읽기가 무르익을 수록 계속 이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얼핏 전혀 관련없는 주제들이지만, 인본주의의 기제가 다소 생소한 바깥 세상에서
들어왔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 복잡한 소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버린 것은 아닌지 :-/ 물론 주체성과
민족성을 지키면서, 그 정도를 잘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뻔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요.
터키에선 그 나라의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런 화제가 빈번한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위치도 결코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지요. 소중화사상같은 것만 봐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스캔들]처럼 설정을 그대로 옮겨 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와 중국은 지나치게 밀접했네요. 뱃길보다 육로가 우선이었으니 말이죠.
생각하다보니 허황된 생각이라 치부하기엔 조금 아까운 걸요.

어쨌든 시선이 넓어지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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