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다녀왔습니다
- 10월 7일부터 10월 10일까지 2박 4일의 일정(밤기차를 탔기 때문에 2박)으로 부산국
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몸이 좀 피곤하고, 여행 휴유증(일하기 싫다거나, 눈을 감으면
바다가 보인다거나 하는)이 좀 있긴 하지만 별일 없이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째 연속 출석이군요. 9회째가 되는 영화제에 고작 3년째 참석입니다만, 그래도
그 3년간의 변화는 느낄 수 있었어요. 최소한 양적으로는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영화
제의 주무대인 해운대 메가박스와 남포동 거리의 인파는 눈에 띄게 불어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예매전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 우선, 이번 여행에서의 형식적인 목표인 영화.〈호숫가 살인사건〉,〈헐리우드의 고양
이〉,〈모터사이클 다이어리〉,〈애플시드〉,〈전주곡〉 이렇게 총 다섯편을 봤습니다.
체 게바라의 젊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기대만큼 만족했고, 헐리
우드의 고양이는 제가 본 영화 중 사상 최악(영화를 보고 단 한 번도 졸아본 적이 없었는
데...), 야쿠쇼 쇼지의 호숫가 살인사건과 애니메이션인 애플시드는 그저 그랬습니다. 전
주곡은 의외의 수확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야외상영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영화가 없어서 보지 않았습니다. 헌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니 이건 딱 야외상영감인
겁니다. 아름다운 남아메리카의 풍광과 흥겨운 라틴뮤직을 배경으로 하는 체 게바라의 모
험을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보면 너무 좋았을 텐데. 아쉬웠어요.
- 언제나 영화제에 다녀오면 느끼는 것 하나. 영화제의 묘미는, 오피셜 가이드의 짤막한
시놉시스와 손톱만 한 스틸컷을 보고 영화를 고르는 도박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화
제작이 아닌 작품에 눈을 돌린다면요. 운이 좋으면 전주곡-태국의 전통악기인 대나무 실
로폰 라나드 엑의 대가인 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입니다-같이 멋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
지만, 운이 나쁘면 헐리우드의 고양이 같은 10분짜리 단편을 억지로 2시간짜리 장편으로
늘린 것 같은 영화를 보게 됩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두근두근, 그 누구도 모르는 거죠.
- 실질적인 목적이었던 음주가무. 사실 저는 부산에 영화를 보러 가기보단 먹고 마시고
놀려고 가는 것 같아요. 실은 여름휴가를 이쪽으로 돌렸거든요. 작년에는 날씨가 너무나
도 좋아서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올해는 우중충하다가, 마지막날에만 쨍쨍하더군요. 덕
분에 같이 데려간 지원이로 칼라 2롤과 흑백 반 롤만 겨우 찍고 왔네요. 해운대도 비엔날
레를 한답시고 백사장을 포크레인으로 파헤치는 바람에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맛
있는 건 많이 먹었습니다. 남포동 뒷골목에서 50년 전통의 국수도 먹고, 연례행사인 금수
복국의 복지리도 먹었습니다. 당연히 회도 먹었죠. 광안리 회타운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도미회를 사서 숙소에서 맛있게 냠냠 먹었습니다. C1소주도 형식상 한 병 마셔줬죠. 언제
가도 흥미로운 남포동 옆 국제시장을 돌고 용두산에도 두 번이나 올랐군요.
- 동행의 덕으로, 좋은 숙소에서 편안하게 묵었습니다. 부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해운
대 한화콘도에서 묵었죠. 발코니는 없지만, 커다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부산 앞바다가 참
으로 시원했습니다. 첫째 날 아침에는 잠깐 날씨가 좋아서 벌떡 일어나 떡 진 머리가 부끄
러운 줄도 모르고 바로 앞 방파제 둑에 나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방파제에 철썩이
는 바닷소리와 짠내가 가득한 바람은 저같이 내륙출신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마력
이 있는 것 같아요. 좁은 둑에 위태롭게 서서 위험한 줄도 모르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마
구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 8일 새벽에 해운대에 도착해서, 일출을 보기 위해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다가, 구름이
잔뜩 껴 있어서 실패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몸도 끈적거려서 해운대 끝에 있는
해수사우나에 갔습니다. 뜨뜻한 해수탕에 누워 통유리 밖에 보이는 수평선을 보니 마음도
누그러들고 피곤도 어느 정도 풀리더군요. 목욕을 마치고 2500원짜리 국밥을 먹으러 가
는 길에, 화들짝 놀랬습니다. 임권택감독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뒤쫓아가 싸인을 받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 여행지에서 지름신의 복음을 받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고, 빠듯한 여행비 때문에 달
가운 일은 아닙니다만, 제대로 받고 말았습니다. 좋아하지만 너무 비싸 침만 질질 흘렸던
메이커인 There's가 어쩐일인지 무려 70% 세일을 하고 있더군요.(아무래도 폐업인 듯) 저
뿐 아니라 동행들 모두가 제대로 당했습니다. 저는 마음에 쏙 드는 갈색 자켓을 하나 샀고
여자친구님께 갈색 집업 져지를 선물했어요. 홍대 There's에서 한 눈에 반했지만 엄청난
가격에 눈물 흘렸던 지갑체인도 여자친구님께서 선물해 주셨습니다. 다른 동행들도 각각
아디다스와 푸마의 스니커를 하나씩 사셨어요. (그 신발들은 50%의 할인률이긴 했지만)
역시, 지름신의 '70%' 복음은 정말로 강력합니다. 정말로.
- 내려갈 땐 무궁화호 밤차를, 올라올 땐 새마을호를 탔습니다. 한 번도 새마을호를 타 본
적이 없거든요.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좋더군요. 넓은 좌석에, 소음도 적고. 가격도 KTX덕
에 싸진 것 같아요. 신기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했습니다. 그
런데, 서울역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 KTX가 있더군요. 우와, 이건 더 좋은 겁니다. 완전 비
행기더군요. 하지만 과연 언제 KTX를 이용해 볼지. 저는 그렇게 바쁘지 않거든요. 45000
원이라는 가격도 부담스러워요.
- 이렇게 후기를 작성하며 여행휴유증을 달래봅니다만, 당연히 역부족이군요. 짧은 여행
이었지만 꿈결같습니다. 과연 내년에도 갈 수 있을지. 내년 이맘때는 학교에 다니고 있을
테니 많이 힘들 것 같지만 아마도 무리를 해서라도 갈 것 같습니다. 특히나 내년엔 10주
년을 기념에서 더욱 알찬 영화제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벌써 부터 가슴이 두근두
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