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다쳐서 자판을 두드리면서 이글을 쓰는 것이 꽤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답변을 쉬엄쉬엄 쉬면서 3일동안에 걸쳐 작성하느라 상당히 늦었네요.
솔직히 말해서 사회과학적 기본소양이 없는 분을 상대로 말하다보니 무엇부터 손댈 지를 모르겠습니다.
매춘이 노동이라는 것을 앵벌이님에게 입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사회과학적 상식이 앵벌이님도 공유하고 있어야 합니다만, 앵벌이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니, 노동의 정의가 무엇이고, 노동의 종류는 어떠한 것이 있으며, 매춘은 그 중 어디에 속한다라는 기본적인 것부터 앵벌이님에게 설명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앵벌이님은 진짜로 그것도 공짜로 사회과학의 상식을 앵벌이하시는 겁니다.
매춘이 노동이라는 근거를 대보라구요?
그 근거는 바로 지금 이순간부터 앵벌이님 머릿속에 들어갈 기초적인 사회과학적 상식입니다.
1. 매춘여성과 프로매춘 운동가들이 매춘여성의 존재를 인정해달고 요구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매춘여성을 같은 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입니다.
불가촉천민으로 멸시받는 존재가 아니라, 법의 보호를 받고 노동의 댓가를 떳떳하게 받을 수 있는 존재, 즉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그들의 목소리가 모든 매춘여성이나 여성단체의 동일한 입장은 아닙니다.
매춘의 완전 금지를 요구하는 매춘여성들과 여성단체의 목소리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앵벌이님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입증하기 위해서는 매춘의 완전금지를 주장하는 쪽의 입장이 매춘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쪽보다 다수이거나 대세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앵벌이님의 주장이 설득력있고 논의의 판이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앵벌이님은 매춘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측의 목소리를 참이 아닌 거짓이라는 기준으로 간단하게 매도하면서 매춘 합법화측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게 무슨 보수진보가 서로 사람들을 모아서 싸우는 시청앞 광장입니까?
우리 편의 집회는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고 상대편의 집회는 돈주고 인력동원해서 모인 것에 불과하다고서로 헐뜯는 모습이 지금 앵벌이님으로부터 여지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매춘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조건 동원되고 포주나 매춘 사업자에게 세뇌당해서 조종당하는 바보멍청이들인 줄 아세요?
매춘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매춘의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 이 양쪽의 우열을 판가름하기 하려면 우선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은가라는 기준과 함께 현실적으로 무엇이 최선인가라는 이 두가지 기준으로 바라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양쪽다 상대방의 존재및 상대방을 있게 만드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앵벌이님의 태도는 참이냐 거짓이냐라는 기준으로 사실상 매춘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아닙니까?
매춘을 금지하자는 측은 참으로 존재하고, 매춘을 합법화시키자는 측은 거짓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상대방의 존재를 처음부터 부정하거나 의심하고 나선다면 그 순간부터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누구 힘이 더 센가라는 밀어붙이기와 세몰이만 남을 뿐이죠.
하기는 지금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습을 보니 결국 힘세고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전형적인 한국식 의사결정 과정으로 가는것 같습니다만...
앵벌이님이 사용하시는 참과 거짓이라는 기준은 보통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인식론에서 어떠한 명제의 진위여부를 가늠하는 서술적(descriptive)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동시에 단지 어떠한 명제에 동의하는가 혹은 동의하지 않은가라는 행동을 나타내는 수행적(performative)으로도 사용됩니다.
그런데, 앵벌이님의 참과 거짓이라는 표현은 바로 후자 즉, 어떤 명제에 대해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가라는 판단의 행동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앵벌이님이 참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겉으로 볼때 제가 언급한 매춘 여성들의 목소리라는 명제가 참(진리)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앵벌이님이 매춘여성의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고 있거나, 동의하고 싶지않다는 속마음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앵벌이님의 참거짓이라는 표현은 토론같은 의사소통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특정 주제와 명제에 대해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는 앵벌이님의 주관적 선택만을 담아있을 뿐이지요.
2.
앵벌이님은 매춘여성이 자신들의 존재과 직업적 자존심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단지
성매매 피해여성에게 쏟아지는 일방적인 사회적 모멸과 비판에 대한 반발이고 항의에 불과하다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럼 앵벌이님의 그런 단정적인 논리가 맞다면, 여성운동을 하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단지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반발과 항의 " 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고단한 여성주의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됩니까?.
저는 여성주의자들이 그렇게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가치와 목적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런 식의 논리가 맞다면 사회주의자는 단지 '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반발 '에의해서만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고, 흑인민권 지도자들은 단지 ' 백인중심사회에서 흑인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한 반발 '에 의해서만 흑인민권운동을 하는 것이겠네요.
님의 논리가 맞다면, 돈많고 권력있는 남성들이 여성주의운운하며 떠들어대는 여성은
어디까지나 타인에게 관심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심때문에 그런다는 망발을 한다면 그 망발도 옳겠네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하고 성취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행정학이나 경영학 원론에 보면 매슬로우의 동기부여이론중에서 5가지 욕구가 나오죠.
그중 4번째가 자존의 욕구이고 5번째가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자존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존경)받고 싶다는 욕구를 말합니다. 매춘여성들과 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존의 욕구입니다.
물론, 매춘으로 자아실현과 자아욕망을 추구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매춘 퍼포먼서, 포르노 배우들도 존재하겠지만 말이죠.
매춘여성은 단지 차별에 대한 반발심때문에 움직이는 그런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재의의를 찾고자 할 따름이며 사회와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가 단지 반발심으로만 움직인다고 해석하는 언어는 군림하는 지배자들의 언술로는 적합할 지는 몰라도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언술이 될 수는 없습니다.
3. 이제부터 정치경제학이나 사적 유물론 강의에 들어가겠습니다^^;;
3-1.
노동의 정의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노동의 정의
엠파스의 백과사전에 나오는 노동의 정의는
인간이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사용하여 의식적으로 바깥 자연에 작용함으로써 자연을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변화시키는 활동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이라는 것은 개개인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 다른 개인들의 노동과 사회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서로를 위해 노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노동은 협업과 노동분업이라는 형식을 띄게 되고, 내용적으로는 자연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생존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즉, 문화, 예술, 교육같은 인간의 의식세계의 영역에 속한 인간의 활동도 노동이 되는 것이며,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또한 노동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각종 서비스를 창출하는 인간의 활동또한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재화을 생산하는 것만이 노동이 아니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도 노동입니다.
그러므로,
매춘도 성적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바로 노동이 됩니다.
- '성적서비스'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해서 분노하지 마세요. 이 용어는 학계에서 사용하는 학술적 언어입니다 사용례) 조선시대 관기들은 정부 관리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소유의 노비였다 -
3-2.
한 개인의 노동은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
위의 정의에서 보면 한 개인의 노동은 사적 노동, 즉 자신이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자신의 생존과 욕망을충족시키는 노동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동시에 시장에서의 상품교환을 통해서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사회적 노동의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로빈슨크루소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면 그 사람의 노동은 오로지 사적노동에 국한될 것이며, 반대로 100%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라면 국가가 생존을 책임져주기 때문에 그 개인은 생존을 위해 사적 노동을 할 필요가 없이 오로지 타인과 사회를 위해서 (시장에서의 상품교환없는 사회주의적) 사회적 노동만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매춘은 전형적인 노동입니다.
매춘의 사적 노동으로서의 성격은 매춘을 통해서 한 개인(매춘여성)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매춘의 사회적 노동으로서의 성격은 시장에서의 상품교환 즉, 매춘을 통해서 타인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자본주의제도아래서 모든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전형성이 매춘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3-3.
사람들이 매춘에 대해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매춘이 바로 '성의 상품화'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의 상품화'라는 정의에서 상품은 무엇입니까?
사회과학, 경제학에서 말하는 상품의 정의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상품의 정의
상품은 크게 두가지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타인)의 특정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유용성및 효용의 가치, 즉
사용가치입니다.
또, 하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추상적 노동이 응결된 가치이자, 상품교환관계에서 교환의 비율을 결정하는 교환가치의 형태로 나타나는 (노동생산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사용가치의 정의
가치의 정의
상품이란 이 두가지의 가치의 속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었으면 상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천연의 물, 공기같은 인간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막대한 효용을 제공하지만 천연의 물과 공기는 인간의 노동생산물이 아니라, 즉 (노동생산물로서의) 가치가 결여된, 원천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이기 때문에 상품이라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무명의 아마추어 예술가가 자기자신의 예술적 성취 욕구 충족을 위해서 쓰레기를 모아서 작품으로 만드는 경우는 그 작품은 노동생산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것또한 상품이라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상품 =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사용가치 + 노동생산물로서의
가치
매춘이 성의 상품화된 형태라면, 매춘의 행위로 시장에서 교환되는 성(性)에도 상품으로서의 사용가치와가치 양자 모두가 당연히 존재합니다.
타인의 성적욕망을 충족시켜주기때문에 당연히 매춘의 행위로 시장에서 교환되는 성에는 사용가치가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을 시장에서 교환하기 위해서 성을 팔려는 사람이 매춘이라는 구체적인 노동, 즉 수요자의 관심을 끌고, 수요자와 거래를 하고, 상품(여성의 육체와 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등의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즉, 매춘으로 시장에서 교환되는 성(性)은 천연의 물과 공기처럼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자연의 자원, 혹은은 인간의 원초적인 성이 아니라, 매춘당사자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노동생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춘에 의해 상품화되는 성은 사용가치와 노동생산물로서의 가치 이 두개의 가치가 모두 존재하므로 당연히 상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매춘의 속성중에 노동으로서의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매춘으로 시장에서 교환되는 성을 상품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성의 상품화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지요.
성의 상품화라는 말이 사회과학적으로 타당성을 얻을려면 매춘에 내재된 노동으로서의 성격을 반드시 인정해야 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매춘여성이 집단으로 매춘산업의 자본가, 즉 포주에 속해있다면, 당연히 노동력의 상품화 현상도 일어납니다. 이것은 매춘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3-4.
매춘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노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조직화된 매춘산업에 소속된 매춘여성은 성노동자로서의 성격또한 가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쉽게 설명가능합니다.
칼 맑스의 사적유물론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하의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짓는 기준은 바로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여부입니다.
생산수단의 정의
생산수단은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노동대상은 각종 천연자원은 물론, 노동으로 가공된 원자재를 말합니다.
노동수단은 이 노동대상에 행해지는 인간노동의 매개물이며 노동의 전달체로 사용됩니다.
매춘에서의 대표적인 노동대상은 바로 여성의 육체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의 일반 노동자는 생산수단 소유자인 자본가에게 인신구속되지 않습니다.
만약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노동자가 인신구속이 된다면, 즉 법적으로 예속이 된다면, 그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노예제 사회이거나 봉건제사회이며, 그 노동자는 자본주의제의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가 되거나, 농노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의 일반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 뿐이지 생산수단 소유자인 자본가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매춘에서의 여성노동자는 자본주의제의 일반 노동자들과 다르게 포주에게 채무관계를 통해 인신구속을 당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춘에서는 여성의 육체가 바로 노동대상이 되고 그 노동대상을 포주가 소유해야지만 잉여가치치가 생산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매춘노동자가 자본가인 포주에게 경제적 채무관계를 통해 인신구속되어있다고 해서 매춘산업을 노예제 생산양식 혹은 봉건적 생산양식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제의 매춘산업역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기본적으로 조응합니다.
즉, 매춘산업의 속성에는 노예적인 특성이 내재되어있지만, 현대 자본주의제에서의 매춘산업의 인신구속은 고대 노예제와 중세 봉건제와는 달리 노예성의 현실존재여부와는 상관없이 법률적, 다시 말하자면 신분법적으로 허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신구속이라는 한가지 면을 제외한다면 매춘산업은 다른 자본주의생산양식아래의 다른 산업처럼자본주의 상품생산만의 유일한 특징인 '노동력의 상품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매춘산업에서의 인신구속은 경제적 채무관계를 통한 인신구속이지 과거 고대 노예제나 중세 봉건제에서의 신분법에 의한 인신구속과는 다릅니다.
자본주의 상품생산의 특징인 '노동력의 상품화'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여 생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노동력이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중요한 조건을 전제로 해야합니다.
첫째 조건은 노동자가 인격적으로(혹은 신분적으로) 자유롭게 노동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수 있어야 하며, 그 권리를 신분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합니다.
매춘노동자가 포주에게 경제적 채무관계로 예속된 현실과는 별도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법률적으로 매춘노동자역시 특정인에게 인격적으로 예속된 존재가 아닌 자유인입니다.
둘째 조건은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박탈당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게 되기때문입니다.
조직화된 매춘산업에 소속된 매춘여성들은 포주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성과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 수 밖에 없게됩니다.
노동대상과 함께 생산수단을 이루는 또 한가지의 요소인 노동수단역시 매춘산업에서의 포주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노동수단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각종 노동도구및 기계는 물론, 노동의 장소인 공장, 시설, 사업장등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심지어는 상품의 효율적인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각종 통계조사와 분석및 경영이론을 창조하는 작업역시 소위 신경적 노동수단이란 개념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춘산업의 포주들역시 일반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성을 상품화하고 거래하는 데 필요한 각종 시설과 부동산과 통신망, 물품과 성적쾌락을 위한 장치들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들역시 생산수단의 한 축인 노동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가 = 노동대상(천연자원, 원자재) + 노동수단 (노동도구, 노동장소)
포주(매춘산업자본가) = 노동대상(여성의 육체) + 노동수단 (매춘의 사업장..)
노동자 = 신분법적인 자유(중세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소외)
매춘노동자 = 신분법적인 자유(법률적으로는 보장됨) +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소외)
3-5.
이렇듯, 매춘여성의 매춘행위는 노동이며 매춘여성은 성노동자라는 사실을 사회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가능하며,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매춘여성이 성노동자라는 사실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거나, 인정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앵벌이님이 자꾸 인권침해라는 요소때문에 매춘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럼 매춘이 노동과는 별도의 개념, 즉 노동의 사전적 반대어인
휴식, 또는
자선에 속한다는 것을 앵벌이님이 입증해야 합니다.
매춘이 매춘여성의 휴식이거나 혹은 자선사업입니까?
또는 노동과 유사해보이지만 대등한 입장의 교환의 관계가 아닌 강탈의 관계를 전재로 하기때문에 절대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범죄라는 사실, 즉 매춘이 범죄에 속한다는 사실을 앵벌이님은 증명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매춘이 적어도 자유로운 신분법적인 자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임금노동이 아니라, 신분이 소유주에게 예속된 고대 노예제의 노예 노동이거나 중세 봉건제의 농노 노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셔야 합니다.
물론, 노예 노동과 농노의 노동도 엄연히 노동임에는 틀림없지만, 적어도 자본주의제도에서는 노예 노동과 농노의 노동이라는 형태가 금기시되고 있기때문에 매춘의 존재를 완전히 제거하기위해서 매춘이 고대노예제 노동및 중세 봉건제 노동이라는 것만을 증명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앵벌이님은 그것조차 증명하지 않고 무조건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으므로 노동이 아니라는 목소리만 높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자연과학적, 혹은 사회과학적 사실의 진위여부에 무분별하게 개입시키고 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 태풍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내기때문에 기후현상이 아니다 "라고 강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는 " 유영철은 많은 인명을 앗아갔기 때문에 인간도 아니다 "라고 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인간이 아니라는 욕은 욕으로서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욕이 유영철도 인간이라는 법적, 이성적, 사회적 판단까지 대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태풍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내기때문에 기후현상이 아니다
어떤 떡잎은 싹수가 노랗기 때문에 식물이 아니다
유영철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쳤기때문에 인간이 아니다
매춘은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노동이 아니다
위 네가지 언술에 차이점이 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바로 앵벌이님의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는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자연과학적 판단, 혹은 사회적인 사실에 무조건적으로 개입시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성립이 될 수 없고 이성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 목소리가 더 크고 누구의 힘이 더 센가에 의해서 문제가 해결될 뿐이겠죠.
4.
도덕적,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겨지면 지금처럼 언제든지 법이 되고 범죄로 정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범죄/탈범죄 논의는 더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앵벌이
앵벌이님께서는 매춘을 범죄/ 탈범죄로 나누는 기준이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럼 모든 범죄행위및 비정상을 가늠하는 이성적 판단과 사회적 합의는 무의미하다는 말입니까?
실정법과 별도로 존재하는 자연법적인 판단도 무의미하다는 말인가요?
결국 님 말씀대로라면 법을 제정하는 세력과 그 세력이 가진 파워와 헤게모니에 의해 모든 정상과 비정상이 판단된다는 말이네요..
그럼 해방공간의 조선일보도 제정을 반대했다던 국가보안법도 그 제정의 취지와 정당성을 무조건 인정해야겠군요.
"국가안보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겨지면 지금처럼 언제든지 법이 되고 반역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역/ 사상과 양심의 자유 논의는 더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 -- 어느 독재자가 했을법직한 말
앵벌이님의 범죄와 비정상을 판가름하는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실정법이 제정되더라도 무조건 순응하고 복종하라
오호라! 그럼 탈레반이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을 점유해서 여성과 관련된 도덕적,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기때문에 이제부터는 모든 여성은 집안에만 있어야되고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되고, 밖에 외출할 때는 부르카를 써야한다라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면 그때도 그 실정법에 무조건 순응하실 것입니까?
"여성의 성적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겨지면 여성이 밥 안 짓고 자동차 모는 것도 지금처럼 언제든지 법에 의해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및 교통질서 파괴VS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논의는 더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 한국의 상당수 남성운전자들이 강력하게 원해서 만든 희대의
밥안짓는 여성의 자동차 운전금지법
매춘이 범죄인가? 혹은 범죄가 아닌가라는 입장도 각국의 실정법에 따라서 판이하게 갈라져있는 마당에, 매춘이 범죄가 아니라는 최소한의 자연법적 가정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이렇게 매춘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단지 실정법이 제정되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만 결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권위적이면서 국가주의적 혐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매춘 근절을 주장하는 쪽의 목소리는 상당부분 국가주의적 편향에 기대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공권력만 동원되면, 그리고
공권력의 의지만 있다면 매춘을 근절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국가권력의 무분별한 개입이 시민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최소한의 심사숙고라도 존재했는지 의심스럽네요.
매춘금지가 국가권력을 통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과제라고 할지라도 국가권력의 동원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상당부분 훼손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5.
매춘금지는 다른 사회적 행위에 대해서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저의 주장에 대해서는 앵벌이님은 논점일탈의 오류이거나 물타기로 비판을 하시는데, 그것은 앵벌이님이 최소한의 법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지 못한데서 생기는 무지입니다.
매춘금지는 엄연히 실정법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실정법이
법의 형평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법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최악의 경우입니다.
법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은 모는 법의 기본이자 기초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음반 매장에서 DVD를 훔치는 사람은 처벌받고 CD를 훔치는 사람은 처벌을 안받는다면 그 게 말이 됩니까?
저렇게 인터넷에 P2P공유사이트가 많으면서도 함부로 처벌할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법적 형평성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P2P를 통해서 자료를 주고받는데, 특정한 몇몇에게 처벌를 가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가 왜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가족사이에서도 불고지죄를 적용하는 국가보안법은 다른 법과 비교할 때 그 불고지죄의 범위가 너무 넓었기때문입니다.
다른 형법에서는 가족을 숨겨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주는데,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는 그런 관용조차 군사독재시절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지금은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에 친족에 대한 죄경감의 조항이 있긴 합니다.)
즉, 불고지죄 자체의 인권침해도 문제지만, 다른 법과의 법적 형평성문제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매춘을 금지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공공질서와 공익을 위해 제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그 법의 적용 당사자들에게 먹고사는 중요한 문제를 법의 간섭을 받아야 할 중대한 일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그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사는데, 자신들은 그 법의 적용을 받아서 먹고사는 길이 막막해졌다면 이러한 불공평한 법의 적용에 가만히 있을 사람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가 있겠습니까?
단지, 한가하게 명분이나 이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서 하는 논쟁이라면 형평성문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실정법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세계에서는 형평성의 문제는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사람에게는 과연 이 법이 형평성을 띠고 있는가? 즉 이 법이 공평하게 대상에게 집행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다른 법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는 문제를 반드시 심사숙고해야하고 검토해야 합니다.
범죄가 개입되지 않은 매춘여성의 개개인의 자발적인 매춘이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고 여성을 성적 노예로 전락시킨다는 근본적인 이유로 불법화된다면,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역시 근본적인 속성으로 바라보아서 불법화해야하는 게 형평성에 맞습니다.
일부일처제와 결혼제도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전 글에서 언급한 시몬느 보봐르의 결혼제도를 향한 비판은 결혼및 일부일처제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보편적인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앵벌이님은 부부강간이나 데이트강간같은 결혼제도의 일부 일탈적인 요인을 제거하기만 한다면 결혼제도도 수평적이고 평등한 남녀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신다면, 그 정도의 발언은 가장 완고한 마초들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부부강간이나 부부폭력을 혐오하는 체면머리 중시하는 마초들도 즐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앵벌이님의 논리가 모순적인 것은 결혼제도는 일탈적인 요인을 없애기만 한다면 이상화될 수 있다고 하면서 결혼제도의 근본적인 억압성을 애써 무시하며 관대하게 취급합니다.
그에 반면 매춘은 최소한 탈범죄화된 매춘의 존재에 대해서도 현행 실정법에 의해 모든 매춘은 불법에 해당되기때문에 탈범죄화된 매춘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웃기면서 편파적인 논리 아닙니까?
앵벌이님의 말씀대로 이상적이고 평등한 결혼관계가 존재한다면 이미 외국에서는 탈범죄화된 매춘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강간이나 데이트강간같은 범죄행위를 근절시켜서 수평적이고 평등한 결혼관계가 존재하게 된다면, 매춘또한 포주의 착취, 인신매매, 인신구속같은 범죄행위를 근절시켜서 탈범죄화된 매춘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춘제도에 대해서는 근본주의적인 페미니즘으로 바라보고,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보수 마초들처럼 기능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게 과연 공평한 것입니까?
매춘을 근본주의적인 시각과 문제의식으로 실정법까지 동원하면서 근절시키려면 동일한 근본주의적 시각과 문제의식으로 가부장제 억압과 여성억압이 존재하는 인류의 모든 제도와 구조, 관습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근본주의적 시각으로 실정법을 동원해서 개조, 변화, 금지시켜야 합니다.
이런 제 주장이 물타기이고 논점일탈이라면, 이 정도의 형평성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사유하고 성찰할 줄 모르는 쪽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6.
앵벌이님께서도 읽으셨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매매춘과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권유해드립니다.
매매춘과 페미니즘
7.
이 글이 듀나의 게시판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같네요.
2년정도 이곳에서 놀러왔는데, 요즘은 자꾸 싸우러 오는 것같아서 여러가지로 계면쩍군요^^;;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처럼 ROM족으로 여전히 이 게시판에서 좋은 정보와 글들을 읽을테니, 영원히 헤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뭐 어디선가 인연이 닿겠지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