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에서 이젠 이런 주장까지...
여러분의 편의를 위하여 한자 옆에는 제가 음을 달아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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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의 평화주의자 李完用을 생각한다
국가의 가치는 민족자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지금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의 새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문제로 그 대응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교육정책을 내정간섭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령 옆집의 부잣집에 힘센 아이가 있는데 그 부모가 아이에게 힘에 센 만큼 남들을 때려주라고 교육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힘 센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는 집으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교육하지 말라고 항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지난번 우리가 잃었던 것이 과연 民族自主(민족자주) 하나뿐이었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잃은 것은 민족자주 하나뿐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 동안 쌓아올린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국가적 가치도 함께 잃은 것이다. 물론 그런 만큼 당시 우리의 국가체제가 부실하고 허약했다고도 하겠지만 그것을 다시 세우기 위해 구한말 많은 지도자와 민중들이 했던 노력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잃은 것은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2000년 세계문학포럼>이란 행사가 열렸다. 국내외의 명망 있는 작가 등 문학인들이 모여 현시대의 문학의 위상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견해를 발표하고 토의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거기서 국내 최고 명망가급이라 할 수 있는 한 원로 여류작가는 '단지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민족이 싸우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에 대하여 상당히 한탄하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물론 전쟁은 비극적인 것이며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이란 것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할 때, 그것이 과연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거쳐야 했던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서 그 전쟁의 의미와 가치를 매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역사상 의미 있는 전쟁에서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된 원인은 서로의 생각 즉 이념이 달라서가 원인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부 단지 민족이 달라서 싸웠다고 볼 수 있는 전쟁도 있지만 그것들은 상대적으로 그 가치의 평가가 덜한 것이다.
전쟁 그 자체를 애통해 한다면 몰라도 단지 이념이 달라서 싸운 것이 그렇게 잘못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단지 민족이 달라서 싸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실상 그런 전쟁들이야말로 더욱 어처구니없는 전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지금 한반도, 나아가서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해빙무드가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분위기에 들떠 '이러면 될 것을 그 동안 왜 괜히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눴는가?' 하며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마치 우리가 공기가 항상 주변에 있으니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이 우리가 어떻게 이 한반도에서 이렇게나마 살수 있는가를 모르는 것의 所致(소치)라 할 수 있다.
실로 건국이래 오십년 쌓아온 우리 국가적 가치의 상실의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무작정의 평화(?) 우선주의는 궁극적으로는 국가라는 개념 자체의 해체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애국자와 매국노의 구분도 모호해지게 된다.
백년 전 한일합방이 없었다면 우리는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李完用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 넘긴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용되어 마치 한일합방을 주도한 자처럼 비치고 있지만 실상 그런 이야기는 陰謀음모(?)에 불과한 것이고 그는 한일합방을 위하여 가장 적극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합방이든 저항이든 그에게는 어떤 所信(소신)보다는, 자기 일신의 안일과 영화를 유지하기 위한 욕심이 그의 행동에 가장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를 빚은 것이다. 한때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후원을 받아 一進會(일진회)의 합방제의를 반대하다가 결국 합방을 추진하게 된 것은 그가 한 때 합방을 반대하게 된 것도 애국심에서라기보다는 자기의 위치를 지키려 한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정부의 성격도, 꼭 '북한과 내통하여 적화통일을 하려는 좌익 정부'라는 '陰謀的(음모적)'인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허영의 추구와, 任期中(임기중) 內治(내치)에 이렇다할 성공적 업적이 없다보니 언젠가는 있어야 할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인정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결국 백년전의 양상과 비슷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백년전의 日帝는 본국에서 합병을 추진하려 해도 이토오 히로부미등 한국 여론의 사정을 잘 아는 統監(통감)들이 합방에 미온적이었다. 이미 병합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굳이 병합해서 국고부담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日帝는 합방을 한국 국민 대다수가 원해서 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소수의 무리로 된 一進會가 마치 한국의 이천만 민중을 대표하듯이 간주하고, 一進會(일진회)는 대한제국 皇帝(황제)와 統監(통감)에게 한일합방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현재에도 국민 일부의 성향을 대표하는 단체가 마치 우리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듯이 활동하는 일이 많음은 注視(주시)할 필요가 있다.
합방조건의 협상에서 李完用은 일본측에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유지해 달라고 했으나 거절되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 등 대한민국의 여러 표상들은 대책 없이 각종 행사에서 생략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한반도의 통일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있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을 것이다.
李完用의 합방 결단은 동양평화를 영구히 유지하기 위한 결단으로 데라우치 統監(후에 總督총독)으로부터 致賀(치하)를 받았다.
지금도 (이미 노벨평화상도 받았지만) 계속해서 북한에 양보하는 입장에서 통일을 이룬다면 동양평화를 이룬 위대한 결단으로 칭송할 이웃 국가들이 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단지 다른 것은, 백년 전에는 일본에서도 합병은 국고부담이 더 생긴다고 조심스러워했을 정도로, 이쪽에는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은 자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賣國奴(매국노)라는 칭호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가를 버리면서까지 돈을 받아야 할 정도로 궁한 나라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국가적 가치는 마치 폐기물처럼, 북측에 돈을 내주면서 버려질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이야기에 대해 물론 이런 의문이 있을 것이다. 다른 민족끼리의 나라의 거래와 같은 민족끼리의것은 다르지 않느냐고.
하지만 한일합방의 不當性(부당성)은 단지 우리민족국가의 소멸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한일합방은 우리민족이 그제껏 쌓아온 가치를 붕괴시켜 결과적으로 인류 전체의 順理的(순리적)인 발전에 역행했기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인 관점에서도 그 부당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자칫하면 舊韓末(구한말)처럼, 우리의 이제까지 피땀 흘려 쌓아올린 국가적 가치가 한 번에 무너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논단 2001/7>
朴京範 기자 2002-11-28
http://www.cppc.or.kr
이러한 보수언론에서 한자를 애용하는 이유는
http://www.cppc.or.kr/news/search.php?qrel=5&query1=muma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글 목록 중 '한글이 망하지 않으면 한국이 망한다'와 '사상 좌경화 유도한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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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담이지만 이 글이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조갑제가 발행하는 '징기스칸'이라는 잡지 광고가 있습니다.
표지모델이 니콜 키드만이었습니다.
이 잡지 표지는 지나가면서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이쁜 사진을 놔 두고 안 이쁜 사진을 넣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나저나 조갑제가 니콜 키드먼에게 반한 겝니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