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의하지 않고 구성된 사법기관으로 하여금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의 정당성을 심사하게 하거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행위의 적법성을 살피게 하는 일은 늘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쳐 왔습니다. 위헌법률심사권이라는 이름의 이 제도가 처음 생겼고,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 다른 사람도 아닌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법률의 정당성을 아홉 명의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손에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공공연히 펼치기도 할 정도이니까요(연방제9항소법원 Noonan 판사). 조금 맥락은 다르긴 합니다만,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면서 헌법을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규정을 두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만약 헌법 개정을 하지 않으면 매사츠세츠주 대법원의 예가 보여 주는 것처럼 "진보적"(liberal) 판사들이 개인적 소신에 따라 법률을 확장하여 해석하여 동성결혼을 허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판사들이 아니라 국민이 이 문제를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게 부시 현 대통령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같지 않으신지요?
미국 헌법에 규정되지도 않았던 위헌법률심사권을 19세기 초에 해석을 통해서 "만들어낸" (혹은 요새 갑자기 시중의 유행어가 된 것으로 보이는 표현을 빌자면 "관습"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을 살려낸이라고나 할까요^^) 마셜 대법관이 죽었을 때 당시 은퇴한 상태였던 토마스 제퍼슨은, 당시 친구에게 "드디어 마셜이 죽었다"고 펄펄 뛰며 기뻐하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던 걸 보면 그 때도 정치권력은 늘 사법권력을 (특히나 그것이 자신의 반대파에 속해 있다고 느낄 때) 불편하게 느꼈던듯 싶습니다. 하긴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에 대해서도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까지 야당 시절엔 얘기하다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그 말을 180도 뒤집기도 했었지요. 다행히 말만 뒤집고 실천에까지는 옮기지 않아 아직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먼 나라 얘기를 할 것도 없이 위헌법률심사권이라는 제도가 대한민국에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지 잠시 숨을 돌리고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사권을 행사하기 전에는 대법원에 그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지요. 대법원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건국 이후 단 한 차례 그 권한을 행사합니다. 당시 문제가 된 법률 규정은 풀어서 말씀 드리면 군인이나 경찰이 작전이나 임무 수행 중에 죽거나 다쳤을 때 원호를 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따로 소송을 통해선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대법원은 (원호를 규정한 법률에 의한 보상액이 너무나 작은 것을 고려해서) 따로 소송을 거쳐도 좋다고 허용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위헌 결정을 내렸었지요.
왜 단 한 번밖에 대법원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을까요? 그 결정에 찬성한 대법관들은 물러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른바 기관이라는 곳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러야 했었다는 "상당히 근거 있는 소문"이 돌았었고, 당시 집권 중이던 박정희 장군은 헌법을 아예 뜯어 고쳐서 우선 문제가 된 법률조항을 대법원이 다시 문제 삼지 못하게 헌법에 못박아 넣었으며 (이 점에서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의 주장과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법원에서 위헌법률심사권을 빼앗아 헌법위원회라는 기관에게 그 권한을 넘겨 줍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후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져서 헌법재판소가 생길 때까지 헌법위원회가 제대로 열려서 한 건이라도 법률을 위헌이라고 선언한 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89년에 헌법재판소가 최초(!)로 금융기관이 일반 국민들보다 우대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근거에서 법률을 위헌이라고 한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도 위헌법률심사권이 비로소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유신 헌법이 통과되어서 사법기관이 실질적으로 위헌법률심사권을 박탈 당한 때로부터 27년이 흐른 다음이었지요. 사건 별로 보자면 전두환 장군이 강제로 국제그룹의 경영권을 빼앗은 것을 위헌이라고 선언하기도 하였었고, 토지초과이득세법은 아예 통째로 무효화 시키기도 했었지요. 검사가 내린 불기소 결정에 대해 같은 검찰청의 불복 절차를 밟는 것 말고는 한숨밖에 쉴 수 없었던 국민들에게 한 번 더 호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었구요.
자기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아테네의 법을 존중하여 외국으로 도망치라는 권유도 뿌리쳤던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군자가 되기를 바라기는 난망한 노릇이겠지요.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23년만에 한 차례 행사 되었다가 그 후 27년 간 한 번도 행사되지 못한 위헌법률심사권이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행사하기 시작한지 15년만에 다시 논쟁의 초점이 되는 상황을 여유롭게 보기도 힘드네요. 미국처럼 종신직 대법관들이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연임도 하지 못하는 헌법재판관들이 한 일인데 다음 헌법재판소가 구성될 때까지 몇 년 더 기다린 후 추진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급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아가 정 위헌법률심사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헌법을 고쳐서 다시 의회나 대통령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못하던 시절로 돌아 가는 방법도 있구요. 이도저도 아니고 탄핵 이야기부터 나오는 것에는 답답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