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이어 딸 둔 아빠 이야기 하나 더. 창작의 고통....
언제부터인가 제가 일찍 퇴근한 날은 제가 아이들 잠재우는 담당이 되었습니다.
처는 주로 책을 읽어준 후 재우는데, 저는 처음에는 그게 귀찮아서 저도 같이 누워서
불꺼놓고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맨첨에는 손오공 등 애들이 좋아할 만한 책 이야기를 해주다가
엄마가 읽어주는 책 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실제 있는 책 이야기를 해주려 하면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사태에 이르러, 결국 고객의 흥미 유지를 위해 창작물로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는데, 그날그날 누워서 즉석에서 이야기를
꾸며내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머리를 쥐어짜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저 자신도 졸려지니까요...
더구나 어린 비평가들은(첫딸: 만 4세, 둘째딸: 만 2세) 평소 인간관계나 친분등으로 인한 호의적
비평이나 유보적 태도라고는 전혀 보일 줄 모르는
가차 없는 즉각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대충 이전 이야기 우려먹기-그거 전에 한거 잖아!!,
뭔가 대충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 재미 없잖아!! 새로 하나 해줘!!,
분량을 좀 줄여서 짧게 결말 지으면- 오늘건 짧잖아!! 짧은 얘기로 하나 더 해 줘!!
이런 과정에서 제가 터득한 요령은,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확실한 시리즈물이
가장 쉽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랄까. 기본적으로 출연진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설정되고 나면, 기본적으로 왠만큼의 스토리는 자동적으로 굴러간다고 할까요?
그동안 써먹은 시리즈물은
깨비의 모험: 일종의 롤플레잉 게임 스토리로, 도깨비 방망이를 잃어버린 도깨비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이를 찾아오는 사명을 띠고 여행을 시작한 꼬마 도깨비 이야기. 곳곳에서 수난을 당하지만
각종 기연을 통해 얻게 되는 마법 아이템으로 극복해 간다는.....^^;;
마루치아라치: 주연 남녀는 태권소년소녀인데 사람들을 괴롭히는 대마왕이 있는 탑의 13층
(원래 13층 설정이었는데 하다보니 20여층까지 올라간채 미결상태)을 찾아가며 각 층에 있는 뱀파이어,
구미호, 프랑켄쉬타인, 아나콘다, 심지어 피라니어떼^^;;, 흰개미떼, 늑대인간 등등을 주로 태권도..
가 아닌 주로 잔머리로 격퇴해 나가는 일종의 스릴러물...
바다의 소녀 나디아: 유명한 저패니메이션인데 유감스럽게도 맨 첫회밖에 못보았던 관계로
첫회는 실제 애니메이션에서 본 스토리를 우려먹은 후, 다음회부터는 바닷속 아틀란티스
나라의 여왕인 나디아와 프랑스에 사는 발명가 소년 쨍의 우정과 바닷속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각종 심해괴물 및 다른 해저 문명, 외계인 등을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물리치는 스토리..
닐스와 토마스: 원래 닐스의 모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디테일한 부분이 기억이 안나
난장이가 된 닐스와 뚱뚱한 기러기 토마스 콤비가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가 되어
가다가 급기야 꿈속 나라로까지 여행을 가서 빨간 방, 노란 방, 파란 방 등 각종 색깔로 된
방 안에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이상한 나라들-바보들만 사는나라, 모든 것이 거꾸로 된 나라,
모두 말을 천천히 하는 나라 등등...을 여행하는 스토리가 되어 버림..
각종 동화, 디즈니 만화의 패러디시리즈(주로 아름다운 공주물이 이나중 탁구부식의
엽기물이 되어버리는 폐단이...)
등인데, 고객들의 요구로 급기야 이 시리즈 주인공이 저 시리즈에 갑자기 등장하고,
인기 있는 캐릭터들은 같이 떼로 여행을 다니는 등 변형과 교배가 계속되어 이제는
저도 종잡을 수 없는 지경임...
다행히도 아직까지 고객들의 관심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 제가 전의 스토리를 잊고
헤매고 있으면 서현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지적해 줍니다. 그 괴물은 몇 층에서
이미 격퇴하였다는 둥...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린 고객들 역시 주로 뭐랄까,
슬랩스틱 코미디-디즈니 만화 인어공주의
바닷속 궁전 무도회가 진행되는데 악단이 갑자기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 음악을 연주하자
인어들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지니 춤을 추기 시작한다던지... 화난 덩치큰 병사들이
악단장을 잡으러 오는데 갑자기 백조의 호수 음악을 연주하니 병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백조 춤을 추기 시작한다던지...
피렐리 형제 식의 화장실 유머- 대충 스토리가 지루해 지는 기미가 보이면 붕~ 방귀를 뀌거나
덩을 싸서 상대를 기절시키는 수법을 쓰면 즉각 반응이 옵니다. 역시 대중은 말초적인 것에 반응을..
허무 개그-파랑새를 찾으러 다니다가 늙은 나무에게 파랑새를 보았냐고 묻자 귀에 귓밥이 너무 많아
사오정인 이 나무는 비슷한 발음의 다른 물건으로 알아들으며 끝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등
등등을 주로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개그 위주로 취향이 고정되는 것 같아 고민입니다.
요즘은 이야기 새로 지어내기도 골아파서 정통 판타지물인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영화스토리 그대로 시작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한동안 우려먹어볼까 싶습니다. 골룸 목소리 연기를 하느라
목청에 좀 무리가 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워낙 스토리가 탄탄한 이야기라
애들 듣기 쉽게 좀 각색만 하면 편한데다가 사우론과 나즈굴 등 무서운 케릭터가
많아 이야기 다 듣고도 안 자고 뻗댈때 위협용(?)으로 적당하고...
좋은 소재 있는 분들은 제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