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병도 보호받을 개성일까?
저는 본래 페미니즘을 비롯하여 어떤 '~이즘' 종류이든 솔직히 별 관심은 없고,
단지 "남한테 폐는 끼치지 않되, 한번 태어난거 자유롭고 해피하게 살자"가 인생관(?)이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어린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고보니 저도 모르게 소위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키워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증 같은 것이 나타나곤 해서 스스로에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소시적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시몬느 보봐르의 말이
진리인 줄 알았는데, 딸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 '천생 여자'라는 말이
맞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여섯살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왕자공주이야기, 바비인형, 공주옷, 인형옷입히기, 거울보기
등등입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취향을 좀 바꿔보려고 그림책을 읽어줄때도 일부러 왕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씩씩하게 용을 물리치는 공주이야기 등으로 각색해서 읽어주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 흥미를 유발시켜 보려고 애쓰고, 그래도 잘 안되자 심지어
'우상파괴"랄까, 가끔 공주동화를 제 맘대로 패러디(?)해서 이쁜 척만하고 이기적이고 게으른
공주들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내용으로 만들어 들려殮竪?하고 했는데 별 효과 무..
그냥 간편하게 '정치적으로 공정한 동화시리즈'를 애초에 사서 읽어주지 그랬느냐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솔직히 저는 그건 오버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사전검열제도 같기도 하고,
세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엊그제 방에 들어갔더니 아이가 거울을 혼자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제가 "뭐 해?" 하고 물어보니 쑥스러운 듯 얼버무리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 반성이 되었습니다. 아, 내가 내 방식으로 아이를 억압하고 있구나.
억압 많은 보수적 집안의 장남으로 크며 유소년기 내내 속으로 이를 갈면서
내가 아이를 가지면 자유롭게 키우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장미빛 인생'이나 '빌리 엘리어트'에서 보았던 거울을 보며
예쁜 옷을 입고, 예쁜 화장을 한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너무나 절실히 소망하던
소년들이 생각나네요. 그 아이들이 그렇게 소망하던 '권리'를
제가 '외모는 중요한게 아니야' 어쩌고 하면서 은연중에 억압해 온 것 같군요.
사실, 제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딸아이의 희고 작은 얼굴, 큰 눈, 오똑한 코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무슨 인형을 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제발 용서하시길..)
그런데, 그 예쁨이 딸아이가 의지 강하고, 자유롭고, 주체적이고, 겸허한 인간으로
커가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서 자꾸만 개입하게 됩니다.
저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샬롯보다 캐리가 더 매력적이고,
라네즈 에서의 이나영보다 카이스트나 네멋에서의 이나영이 더 매력적이고
하지만, 딸아이가 커서 반대쪽 캐릭터를 선호하고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고
해도 제가 반대할 권리는 없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