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dia de la bestia.- 야수의 날..
제가 영화라는 것을 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부터 라고 기억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
만, 그때 한창 EBS교육방송 열풍이 불고 있었어요. 이를 틈타 수 많은 반 친구들의 '방'에는 - 자기 방이
라는게 중요한 겁니다 - 비디오데크와 작은 티비가 한 대씩 놓여졌던 거죠. 물론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
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친구들처럼 비굴하게 노루표 비디오를 숨어서보는 짓은 하지 않았죠. 그게, 저
는 이미 잘만 킹 류의 에로영화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물론 잘만 킹 영화도 숨어서 봐야 하긴 했습니다
만..- 중학교 때부터 잘만 킹 감독은 제 성적환상을 책임지고 길러준 분이셨습니다. - 와일드오키드 시리
즈를 명작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 있을까요? - 뭐 여튼, 일주일에 한두번의 에로영화 관람을 제외하고는,
제 비디오에는 항상 집 앞에서 빌릴 수 있었던 편당 500원짜리 B급 영화들이 물려있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캐스팅에, 완벽한 준비를 통해, 완벽하고 깔끔하게 나오는 작품들
또한 멋지지만, 약간 엇나간 캐스팅에, 어느 한구석 어설픈 영화들이 제게는 더욱 매력적이니까요. 그런
제게 있어서, Alex de la iglesia 감독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는 주류감독이에요. 스페인 국내에
서, 또는 유럽 내에서 남부럽지 않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렇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주류
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왜냐고요? 그의 작품은 맛이 쓰거든요.
우리에게 있어서 이 작품이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종교에서 기인한 공포라는 것은 아주 친숙한 것
이에요. 이미 헐리우드에서도 셀 수도 없이 많이 사용된 소재니까요.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본
적으로 기독교 사회인 미국인들 치고 성경과 악마에 관심이 없는자도 없거니와, 거기서 그려지는 악이라
는 것 자체가 모호하기 그지없지 않습니까. 근 반세기동안 많은 감독들이 묵시록의 내용을 자기 마음대
로 주물럭거려서 만들어 낸 공포영화는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런데, 새삼 알렉스 감독이 이 소재를 다시 꺼
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소재가 관객을 속이기에 너무나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도 겪지 않았습니까. 1990년대 말의 휴거 사건부터, 수많은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이 외쳐온 종
말론이 결국 어떤 형태로 끝을 맺었는지 말이지요. 그들은 엄숙하게 세상의 종말을 고했지만, 세상은 여
전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현실을 종종 잊게 되요. 이런 관객의
현실과 영화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영화들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여차저차, 어떤 한
사람이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불신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비롯
한 떨거지들은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적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분골쇄신한다. 결
론은 멸망하거나 지켜내거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보아오던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실
은 세상의 종말을 막기위해 애쓰는 순교자들이었던 거에요!
그렇지만, 알렉스 감독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기본적인 플롯은 수많은 영웅들이 난무하는 기
존의 종말론 영화와 그리 다를 바가 없어요. 한 독실하고 영민한 수도사가 요한 계시록을 분석해서 세상
의 종말, 즉 적그리스도의 탄신일을 알아내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이 이야
기의 주된 줄거리죠. 그렇지만, 감독은 우리에게 기존의 것과 같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단
캐스팅부터 그래요. 반쯤 정신 나간 헤비메탈 매니아 호세 마리와 사기꾼 카반교수는 둘째치더라도, 이
순교단을 이끄는 주인공인 앙헬 신부역의 알렉스 앙굴로는 도저히 순교자다운 얼굴이 아니에요. 멍해보
이는 눈과 약간 열린채 고정되어 있는 입은 도저히 관객들로 하여금 그 사람에게 신뢰를 보낼 수 없게 만
드니까요.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이런 심증은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어떤 불길한 징조도 없이 그냥 십자가에 깔
려죽는 동료신부의 모습은, 그것으로 인해 관객들이게 사건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보다는, 앞으로 영화
의 전혀 뜬금없는 전개를 예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관객 속이기'는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강
도를 높여서 나오게 되죠.
그것은, 바로 현대 도시에 수도없이 깔려있는 상징물로부터 비롯되는 겁니다. 과거에는 확실히 어떤 의
미를 가지고 쓰였던 수 많은 기호와 징표들이, 이제는 단순히 장식용으로 혹은 그 뜻을 잃고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의 모습은 앙헬 신부에게 있어서, 자신을 인
도하는 무수한 상징들로 읽히게 됩니다. 신부는, 헤비메탈로 악마와의 접점을 찾고, 초능력자라고 떠벌이
는 사기꾼으로부터 악마 소환 방법을 배우려고 하지만, 일견 황당해 보이는 신부의 행동은 기존의 영화에
서 엄숙한 주인공들의 행동과 기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기존 영화의 클리셰가 현실로 치환
되면, 이런식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죠. 이러한 알렉스 감독의 의도는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현실에서의
순교자라는 것이 얼마나 미련해보이는 것인지 환기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앙헬과 호세마리아가 카반교
수를 만나 악마를 소환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결론적으로, 이들은 악마를 소환해버립니다. 전통적인 악마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는 두발로 걷는 염소
의 등장으로, 관객은 그만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었나?"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의심하게
되죠. "약물에 의한 환각이었을수도.." 하지만 세명 모두 같은 모습을 보았다는 데서 긴가민가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됐든, 이제 신부의 이야기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두 명의 조력자와 함께 앙헬 신부의
여정은 끝을 향해갑니다.
과연 앙헬 신부의 묵시록 분석은 옳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는 그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을 뿐
인지, 관객은 점점 아리송해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르러서 모습을 드러내는 적그리스도와 사탄의 모
습은 결국 그런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은 관객과 감독의 관점을 적절히 섞어두었습니다. 초 중반까
지 관객들이 '이것은 현실이다' 라고 느낄 만큼의 장치를 준비해 두고, 그것을 적절히 나열해서 앙헬 일행
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만든 다음, 후반에 이르러서 감독 자신이 그 사건들을 조합해서 자신이 내고 싶
은 결말을 내 버리는 거지요. 결국 관객은 감독에게 속게 됩니다. 마치, 관객들이 앙헬 신부가 도시의 넘
쳐나는 의미없는 상징물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느꼈듯이, 관객들 또한 영화속 인물들과 사건에 있어서 자
신들이 원하는 것들만 골라서 봤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또한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 경계가 너무 모호해서 어디서부
터 환상이 시작되는 지도 관객은 인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두발로 걷는 염소가 나타나는 그 장면에서, 이
미 판타지는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영화적 현실" 이라는 현실 같은 판
타지로 인정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미 관객들은 영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장면을 경계로 관객들 또한 작품의 무대를 현실에서 판타지로 바꾸어 인식하게 된다
는 이야기입니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경계로 알렉스 감독이 공들여서 만들어두었던 "현실" 과, 앙헬 일행
이 바라보고 있는 "영화적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앞서의 사건들을 상식에 비춰 생각해보면 앙
헬 일행은 그저 미친놈들일 뿐이지만, 사건의 종합부분에서 나타나는 실제 현상들은 그들이 진정한 순교
자라는 것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관객이 영화를 영화로써 인식함으로써 비롯되는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한 것입니다. 영화
를 보는 순간, 관객중 대부분은 그것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을 "영화 안의 현실"
로 인정하고 넘어간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의 앙헬 일행의 행동을 코미디를 지켜
보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관객들도, 이 장면 하나로 그들에 대해 재평가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 아. 이
얼마나 교묘한 장치입니까.
관객들은 배신당한 기분을 안고 영화의 결말까지 보게 됩니다. 결국 강림한 사탄과, 적 그리스도, 세 명
의 영웅중에 한명은 순교를 하고, 나머지 두명은 부랑자가 되지요. 결국, 감독은 판타지를 판타지로 끝내
지 않고 스크린 밖 세상에 가까운 결말을 내어버립니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던 관객들은, 지쳤다고 중얼
거리며 욕을 할까요? 아니요. 적어도 저 같은 경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박수를 쳤습니다. 완전히 속았다
라는 후련함이 더 컸던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