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엄의 여자들, 버버리, 기타

  • ginger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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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되는 브리짓 존스 속편의 감독이 오렌지만 과일이 아니다를 감독한 비번 키드론이라는 걸 오늘 아침 신문 보다 알았습니다. 이사람은 아직 학생 시절이었던 20살에 그린엄 카먼 - 80년대 영국 페미니스트 반전 반핵 저항 캠프에서 들어가 1년을 살면서 다큐멘타리를 만들어 데뷔한 사람이라고 하네요.  

아시는 분들이야 너무 잘 아시겠지만, 그린엄 카먼에는 공군 기지가 있었습니다. 81년에 미국이 그 기지에 단거리 핵미사일을 설치하려고 하자 거기에 반대하는 시위와 농성이 시작되었고 그게 전설적인 운동이 되었죠. 구조도 없이 무정부적이고, 평화적이고,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농성이었거든요. 83년 크루즈 미사일이 도착하면서 대규모 운동으론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90년 냉전이 끝나면서 미사일이 사라질때까지 작은 규모나마 계속되었고, 2000년에 기지가 폐쇄될때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린엄의 여자들 틈에선 온갖 정치적 입장이 공존했는데 페미니즘, 환경, 반전 평화 뿐아니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온상이기도 했대요.







그린엄의 여자들은 구질구질하고 추운 영국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와 진흙탕속에서 캐러밴과 텐트에 살면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기지 철조망과 철책에 꽃을 달면서 평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장기 야외 농성이라서 남자들은 지지 시위나 지원 방문만 가능했다고 해요. 제가 아는 남자들 중에 30대 중반 이상들은 한 번 쯤 방문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린엄 카먼에서 농성에 참가했던 지금 40대 중반 이상인 아줌마들은 세상도 많이 바뀌고, 정치 지형도 바뀌고 다들 이제 나이도 먹어서 옛날보다 덜 과격하긴 하지만 여전히 팔팔하게 페미니스트들이고 반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했던 40대를 만나면 정말 아직도 열정에 찬 정치적인 태도가 사랑스럽습니다. 잠시라도 그린엄의 여자들 중의 하나였다는 경험은 역사의 일부에 참여했다는 자부심도 주는 것 같아요.


20여년이 지난 요즘 영국에선 페미니즘하면 뭔가 촌스런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데, 젊은 세대랑 얘기해보면 페미니즘의 성과를 그냥 당연한 사회적 주류 규범 쯤으로 생각하는 것같더군요. 확실히 탈정치화했고, 훨씬 미적지근하고 개인적이긴 하지만, 저는 그게 이 세대의 특징인 것 같아서 '요즘 젊은 애들은..'이란 한탄에 동참할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저만해도 춥고 비오는 진흙 텐트에서 1년씩 살면서 평화운동을 한다거나 집단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 공동체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엔 별로 끼고 싶지 않거든요.....

하지만 요즘 영국애들이 창조적 개성이 좀 딸리는 얌전하고 길들여진 지루한 세대란 의견엔 반대하기가 어렵네요. 우리나라 80년대 세대와 달리 영국에서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다양하고 발랄하며 훨씬 리버럴한 저항 문화를 경험해서 매우 유연하고 매력적이에요. 매우 정치적이었던 펑크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도 경직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끔찍하게 부풀려지고 탐욕스럽던 80년대의 주류 스타일에 반발하던 젊은 사람들의 얼터너티브 문화는 패션도 음악도 좀 더 창조적이고 과격하고, 개성이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듀나의 '오렌지만..' 리뷰에도 나오지만 비번 키드론은 헐리우드로 가서 별로 성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사람은 비비씨로 돌아와 몇 개를 감독하기도 했어요. 몇 년 전 크리스마스 특집이었던 '신데렐라'는 시각적으로 예뻤고 현대적인 각색에 캐슬린 터너가 새엄마로, 제인 버킨이 요정대모, 아니 동굴에 사는 마녀 맵으로 나왔죠. 줄리 월터스가 나온 '머더'도 아주 좋다고는 못해도 능숙한 드라마였죠.  

브리짓 존스 속편은 상업 감독으로서 안전한 움직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이먹어 성숙했어도 여전히 불같은 페미니스트가 브리짓 존스에서 어떻게 여자들을 그렸나 약간 궁금합니다.


가디언의 키드론 인터뷰

http://film.guardian.co.uk/interview/interviewpages/0,6737,1339476,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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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한복판 리전트 스트리트에 있는 버버리 매장에 가보셨나요? 저는 아는 사람들 길 안내하느라고 딱 두 번 들어가 봤습니다. 버버리는 비싼 소위 럭셔리 브랜드이고, 그런 럭셔리 브랜드에 따라오는 온갖 허위가 팩키지로 딸려있죠. 버버리의 디자인이나 품질, 이런 게 같은 종류의 다른 물건들 보다 좀 나은 건 알겠는데, 그것도 특정 취향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디자인이지 많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받을 만한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상점에 들어가 번쩍거리는 인테리어와 콧대 높은 점원을 보면서 비싼 브랜드 이미지라는 게 양질의 상품이 아니라 거기 끼워서 같이 팔아먹는 '상류층'의 후광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얼마나 실은 보잘것 없는 기만에 불과한 지 생각하게 되죠. 100만원짜리 버버리 코트를 사 입는다고 문화자본이 생기진 않잖아요.

한국 사람 단체 관광객들은 그런 와중에도 줄줄이 들어옵니다. 거기가 아예 단체 관광 코스인 모양이더라구요. 따라서 한 두 다스쯤 되는 한국인 점원들이 있었구요. 저는 한국 백화점에 들어온 줄 알았다니까요. 그리고 다들 같은 디자인의 고가 가격 제품을 권하더군요. 한국서 돈 벌기가 얼마나 팍팍한데 아주 부자도 아닌 중산층들이, 환율 덕에 구매력이 반으로 떨어진 한국 원화를 바꾼 돈을 가지고 신분의 상징 - 다 똑같은 버버리 코트와 목도리를 교복처럼 구입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흥미로왔어요. 하긴 한국사람들이 돈을 저축해서 뭔가 멋지게 쓰고 싶거나 놀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런 사람들까지 웃어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그냥 약간 슬펐지. 옛날에 한국이 나름의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었을 땐 꽤나 멋내고 놀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문화권이든 자기 나름내로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 축적된 미감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죠. 변방은 정말 여러모로 서글퍼요. 아무리 제값을 주고 '바바리 본점'에서 돈을 써도 그 돈으로 같이 구입하고 싶은 '상류층'의 상징은 역시 싸구려 복제품밖에 안되니까요.

그 와중에 '이렇게 비싼 거 샀는데 선물로 우산같은 거 안줍니까'하고 조르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 아저씨는 언론인인 모양인데 슬그머니 언론의 취재가 어쩌고 흘리면서 사치 상품 매장과 여행사와 '커미션' 계약 운운하더군요. 결론은 자기는 여행사를 통해 오지 않고 제발로 왔으니 그 커미션만큼 깎아줘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였어요.

한국사람 직원도 만만치 않아서 서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이 민망스럽기가 예술의 경지였죠. 그 한국 직원 분은 영국에 오래산 사람(본인의 주장)답지 않게 매우 한국적인 메이컵과 헤어를  고수하고 계셨는데, 즉 두터운 파운데이션과 쥐 잡아먹은 듯한 빨간 입술과 문신스런 눈썹, 금박 박힌 머리띠에 보라색이 도는 코팅한 머리를 하고 검은 정장을 입고서 약간 혀가 꼬인 한국말을 구사하시면서 쉬운 단어는 반드시 영어로 하는 걸 절대 잊지 않으시더군요. 물론 제가 들으니 영어도 한국말 만큼이나 잘 못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행색이 좀 초라해 보이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여지없이 깔보고요. 몰아부쳐서 기어이 비싼 걸 팔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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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몸살이 도져서 어디 나가기가 힘들군요. 오늘은 하루종일 감기약 먹고 뜨거운 차를 많이 마시면서 누워서 뒹굴거려야 겠습니다. 비디오나 보려고 하는데, 비디오 가게 가기도 귀찮군요. 가까운 데 사는 친구한테 엄살을 떨어서 몇가지 부탁을 하는 민폐를 끼칠까 생각 중인데, 정말 온 몸이 다 아픈 상태는 어제로 지나서 양심에 걸리네요....좀 있다 해가 중천에 떠서 따뜻해 지면 나가봐야죠. 아프고 우울할 때 볼만한, 가벼운 코미디이면서도 무뇌성이라 사람 짜증나고 열나게 하는 거 말고 좀 재치있고 기분 좋게 해주는 거 뭐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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