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잘해주기'만 반복학습시키는 시대?
'야심만만'을 10분 정도 시청하다가 돌려 버렸습니다.
비'왕자님'을 중심으로 연예인들 몇몇이 나와서 여자친구를 감동시키는 법? 정도 되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사소한 부분을 놓고 세심하게 칭찬해주는 기술들, 여자친구 먼저 들어가라고 해 놓고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기, 온갖 이벤트,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
비가 신이 나서 여성의 섬세한 속마음을 다 아는 듯 감동적인 멘트를 날릴 때마다
홀린 듯이 쳐다보는 여성출연자들과
어머~ 감탄사를 연발하는 방청객들.
비가 '이건 비밀인데...'하며 아이같은 표정을 짓자 자지러지는 숙녀분들...
이글의 문체에서 아실수 있듯 이미 심사가 비틀어져버린 제 눈에는
비 군의 모습이 강아지가 '나 이뻐? 나 이뻐?'하며 꼬리를 앙증맞게 흔드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여 결국 채널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뭐 사실 요즘 저런 모습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죠.
'여자를 감동시키는 이벤트''이것이 여자의 속마음' '아내를 위해 준비한 남편의 깜짝쇼'
'내가 바라는 남자친구''이럴때 남자가 멋지게 보인다'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
좀 과장하자면 사방에 온통 이런 화제가 넘치고, 남편들은 끊임없이 최수종씨 따라 배우기를
요구당하고, 남자친구들은 드라마, CF에 나오는 왕자님들을 뱁새걸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물론,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의 순기능도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알려주듯,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족'입니다.
그런데, 평생을 같이 살아야하니 상대 종족의 본성 및 기호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은 유익합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여성에 대하여 무지한 한국 남자들에겐 말이죠.
게다가 '삼종지도'니 '칠거지악'이니 하며 반만년 동안 남자 비위 맞추는 삶을 강요해온
중범죄 전과도 있으니 요즘 풍조 정도로 투덜대면 엄살일지 모르지요.
하지만, 반론을 하고 싶어집니다.
여자들도 남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남자들은 단순한 존재라서 특별히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요? 여자분들, 남자친구나 남편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에
감동받는지, 어떤 것에 상처받는지 잘 알고 계신가요?
'남자친구를 감동시키는 법''남편이 원하는 아내가 되려면?"'남자들이 진짜 바라는 여자'...
왜 이런 주제는 잘 다루어지지 않나요? '어우~시대착오적이야~' 이런 느낌이 앞설까요?
위에서 언급했듯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족'이며, 심지어 '반대 종족'에 가까운
면이 많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에 쌍방이 진짜 원하는 것을 충족하기는 제로 섬 게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에게 깜짝 선물을 주고는 "왜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배려하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이런 것을 안해주지?"하고 속상해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남편의 속마음으로는
그런 선물도 고맙긴 한데, 솔직히 노 땡큐입니다. 선물 안 해주어도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도 피곤하고 소파에 길게 누워 프로야구라도 보고 싶은 일요일 낮에, 눈치 주지 말고 걍
'피곤하지?' 한마디 하고 내버려둬 줄 때 감동합니다. (TT)
배려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지 '자기가 받기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남자는 '걍 내버려 둬 주는 것'을 꽤 선호합니다.
이런 남자에게 여자가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라며 왜 항상 함께 하려 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해댄다면 남자는 억압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선호가 위와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은 마찬가지죠.)
이렇게 반대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타협해야죠.
그리고, 근본적으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애초에 기대하지 말고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거죠.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고, 상대를 억압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요즘의 '여성에게 감동을 주는 남성상' '매너좋은 왕자님상'의 끊임없는 유포는
자기 종족의 통상적 특징을 지닌 대다수의 남성들은 물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여성들에게
결과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인데 서서히(그야말로 제로 베이스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간격을 좁혀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또는 프렌즈에서의
'챈들러-모니카' 커플이야기 등이 현실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p.s. 아까 '야심만만' 에서는 비 옆에 이은주가 앉아 있더군요. 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방청객들과 맞은편에 앉은 엄지원이 탄성을 보내고 있을 때, 바로 옆 이은주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해 보였는데, 이건 드라마 '카이스트'에서의 쿠-울한 '구지원'의 열렬 팬이었던 제
선입견일 뿐 속마음은 이은주양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죠.
'구지원'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남자에게 사랑해달라, 감동시켜달라, 배려해달라고 요구하는
성격이 아니라, '남자도, 사랑도, 친구도 지금은 필요 없어. 힘들지만 내 힘으로 살아낼거야.'
'솔직히 나 지금 너 도와줄 여력은 없어. 하지만, 니가 이겨내길 진심으로 바래.'
라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