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이 낸 최저생계비 위헌소송 만장일치로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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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핀 지하단칸방, 세 식구는 절망한다  [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소장 윤영철)는 한 장애여성이 낸 최저생계비 위헌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2년 전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이승연씨가
"현재의 정부지원 최저생계비로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 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헌재 결정은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는 헌재 결정에 절망하는 이씨 가족의 고단한 삶을 현장취재했다...
편집자 주
  

ⓒ2004 오마이뉴스 장윤선
깊어 가는 가을, 제법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햇볕은 따사로운 날이었다.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에 위치한 주택가의 한 지하단칸방. 전혀 햇빛이 들지 않는 이 방에는 딸 이승연(31세, 장애 1급)씨와 어머니 박정자(59세, 장애 1급)씨, 아버지 이공열(69세, 왼쪽 검지 절단)씨가 함께 살고 있었다.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벽은 이미 여러 차례 물이 샜는지 누렇게 떠 있었고, 방바닥은 매우 차가웠다. 환자용 침대와 TV, 냉장고, 오래된 서랍장은 방문 왼쪽에 가지런히 서 있었고, 방 오른쪽은 컴퓨터와 신발, 생활도구를 담은 종이박스가 차곡차곡 쌓아올려져 있었다. 방 오른쪽 벽엔 세 식구의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서른 살을 넘긴 딸과 노부부는 커튼을 걷어도 빛이 들지 않는 컴컴한 지하 방에서 하루종일 형광등을 켜놓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 박정자씨는 99년 9월 15일 뇌출혈로 쓰러져 뇌경변을 앓고 있다. 딸 이승연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이공열씨는 반신불수 아내와 뇌성마비 딸을 돌보며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면서 작은 일거리라도 생기면 나가서 돈도 번다. 이공열씨는 1인 3역을 하는 가장이다.

하루 1끼 연명..영양상태 심각

이 가족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지하단칸방에 살고 있다. 벌써 18개월째 월세가 밀렸으니, 보증금은 이미 손을 떠난 지 오래다. 빚도 3000만원이나 된다.
이공열씨는 단 한군데도 헛돈을 쓰지 않는다. 식구끼리 모여 삼겹살 한번 굽지 않고, 외식으로 갈비집을 찾은 것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다. 이공열씨가 딱 하나 '사치'하는 게 있다면, 막걸리다. 술을 안 마시면 정신적으로 너무 지칠 것 같아 가끔 막걸리를 친구 삼는다.

박정자씨가 덜컥 병석에 눕자, 가뜩이나 빈곤하던 가정은 더욱 힘들어졌다. 아내가 투병생활을 하는 1년 반 동안 이공열씨는 무려 8000만원의 병원비를 썼다. 아내의 병이 깊어지면서 결혼한 딸과 아들은 전셋집을 월세로 옮겼고 카드빚을 막느라 분주하다. 친구와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니까 관계는 악화되고, 발길도 뜸해졌다. 이공열씨의 말이다.

"처음엔 많이 꿔서 썼지요. 친구들, 친척들 돈... 그런데 전혀 갚지 못하니까 이제 빌려주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나 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리 동네 육교 앞 음식장사들도 자주 바뀌어요. 다들 어려우니까 그런 거겠지요. 나도 힘들지만, 남도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견딥니다."

이공열씨의 마음은 풍성하지만 생활은 몹시 빈궁하다. 우선 딸의 식사가 그를 괴롭게 한다. 중증장애를 앓고있는 이승연씨는 하루 한끼만 먹는다. 위장염이라 부담스러워 잘 못 먹는 이유도 있지만, 혼자 차려먹을 수 없기 때문에 곧잘 굶는다. 미숫가루나 과자 등으로 연명 중이다. 이승연씨의 몸무게는 30kg이다.

박정자씨는 오랜 투병생활로 윗니가 모두 빠졌다. 아랫니도 듬성듬성 있어서 씹는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한다. 두유와 환자용 영양식을 섞어 마실 수 있을 뿐이다.

  

▲ 이공열씨의 점심 밥상. 명란젓갈은 큰딸이 사온 것이고, 무장아찌는 직접 만들었고, 나머지는 적십자사로부터 후원받은 반찬이다. 69세 노인의 밥상치고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2004 오마이뉴스 장윤선
이공열씨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끼를 집에서 먹는데 영양상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미로 지은 쌀밥과 무장아찌, 김치, 김무침, 오징어채무침. 69세 노인의 밥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실하다. 적십자사에서 주1회 방문해서 '반찬서비스'를 해주고 있지만 넉넉한 편은 아니다.

또, 현재로서는 먹는 데 연연할 처지도 아니다. 빚을 빨리 갚기 위해서는 적은 돈이나마 벌어야 하고, 거동하지 못하는 아내와 딸의 수발 드는 일을 먼저 해야하기 때문이다.

세 식구의 월수입은 71만7천원

이승연씨네는 일상적인 가정보다 훨씬 돈 들 일이 많다. 세 식구 중 둘이 환자다. 박정자씨와 이승연씨는 모두 병원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약만 타먹는다. 이들은 모두 재활치료나 물리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다. 그러나,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 가족에게 주는 생활비는 46만원이다. 여기에 지체장애 1급으로 등록된 박정자씨와 이승연씨는 장애수당으로 매월 10만원씩 받는다. 이 돈을 모두 합치면 66만원.

이공열씨는 여기에다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교통비 1만2천원, 경로비 4만5천원도 합한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 때문에 국가보훈처에서 지급하는 6만5천원까지 더해진다. 그래도 78만2천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중 6만5천원은 국민은행에서 빼 간다. 박정자씨의 병원비가 기하급수로 늘어나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실직가장 생계비'로 500만원을 대출 받은 걸 여태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훈처에서 매월 보내주는 돈 6만5천원은 이공열씨가 손에 쥐기도 전에 벌써 은행 빚 갚는 데로 가고 있다.

71만7000원. 이중 매월 20만원씩 월세를 내야하고, 빚도 갚아야 하며, 생활비도 써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공열씨는 "절약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헌법재판소가 제 딸이 낸 헌법소원을 기각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직접 본다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주는 최저생계비는 정말 많이 부족합니다. 물론 우리 같은 빈민들은 많고, 정부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정부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게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실제의 삶은 매우 차이가 납니다."

이승연씨도 이번 헌재의 기각결정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연씨는 "헌재가 쓴 '최저생계비 헌법소원'에 대한 기각 결정문을 읽고 기가 막혔다"며 "그들은 정말 탁상공론만 할 뿐"이라고 개탄했다.

"헌법재판관들은 곰팡이 피고 물 새는 지하단칸방에서 산 적 없을 거예요. 그들은 장애인도 아니고 부잣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모르겠지요. 그러나, 빈곤 장애가정의 삶은 도외시 한 채, 법조문에 따라 결정문을 쓸 정도로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정말 화가 납니다. 그분들은 도대체 그 높은 자리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요? 인권과 평등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건 아닌지... 정말 답답합니다."



▲ 이공열씨는 99년부터 뇌경변을 앓고 있는 아내와 뇌성마비 딸을 돌보며 살림도 한다. 턱없이 모자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돈도 번다. 1인3역의 가장이다. 아내 박정자씨가 누운 침대 뒤로 청년시절 찍은 '흑백사진'이 보인다. 젊었을 때 별명은 '제임스 딘'이었다고 한다.  

ⓒ2004 오마이뉴스 장윤선


"사법권력, 장애인이 죽어나가도 비참한 삶 자각 못할 것"

이승연씨는 지난 2002년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으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싸우다 사망한 고 최옥란씨의 죽음을 거론하면서 "사법권력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비참한 장애인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며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았다.

헌법재판소가 여름이면 방안에 곰팡이가 가득 피고, 장마철엔 비가 새는 지하방에서 24시간 내내 지내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모르고 내린 '최저생계비 헌법소원' 합헌 결정에 대해 이승연씨는 무력하다. 더 이상 싸울 법적 무기도 없기 때문이다.

이승연씨는 "도우미가 없으면 지하방 계단을 내려올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집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하거나, 어머니를 위한 이동목욕시설 욕조가 방에 들어오면 모두 방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이 현실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개탄했다.

이공열씨도 "더 늙기 전에 방 2개 정도 있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딸이 엘리베이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운도 없는지 신청해도 잘 안 된다"고 머쓱해했다.

또 이공열씨는 "빈곤 장애가정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거"라며 "정부는 80%만 주거비 보조를 하고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20%의 자부담 능력도 안 되기 때문에 지하단칸방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공열씨가 던진 말은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빈곤층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분들은 많습니다. 민간단체들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정부가 우리 같은 빈곤 장애가정을 살펴 도와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장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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